[드라마 뒤집어보기] 화제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허구와 사실의 경계는?

삼성그룹, 현대그룹 등 실제 재벌 가문 모티프로 현실과 허구 넘나들어

최창근
2022년 12월 17일 오후 1:55 업데이트: 2022년 12월 17일 오후 1:55

2022년 올해 최고 화제 드라마는 종합편성채널 JTBC가 방영 중인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실제 한국 ‘재벌(대기업 집단)’을 모티프로 한 작품은 주연 배우 송중기, 이성민의 열연 등에 힘입어 연일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진양철(이성민 분) 회장은 한국 굴지 대기업집단 순양(SY)그룹 총수이다. 인천에서 정미소 사업을 성공한 후 이를 기반으로 종합상사, 전자, 반도체, 중공업, 보험, 자동차, 백화점, 유통 등을 아우르는 재계 서열 2위 대기업 집단을 일궜다.

극 중 순양그룹은 삼성그룹, 진양철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을 모델로 했다. 또한 순양그룹의 최대 라이벌이자 자동차, 건설 등을 주력으로 하는 대영(大營)그룹은 현대그룹을 상징화했다. 재벌 가문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암투, 사업 확장 비사 등과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사태 등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사실성’ 면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드라마 속 허구와 실제의 차이는 어떠할까?

이성민이 분한 ‘재벌집 막내아들’ 속 진양철 순양그룹 회장(좌)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오늘날 재계 1위 대기업 집단 삼성그룹의 모체는 1938년 대구에서 창립한 주식회사 삼성상회이다. 당시 밀가루, 청과 등 작물들을 팔았다. 삼성상회은 삼성그룹 종합무역상사인 삼성물산과 현재는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CJ제일제당의 전신이다. 작품 속에서는 인천 소재 정미소(순양그룹 역사관)로 묘사된다. 드라마에서 국내 1위 전자기업 순양전자를 보유한 진양철 회장은 차세대 먹거리로 반도체를 지목한다. 미국, 일본 등 ‘고래’와의 싸움에서 후발주자 순양전자는 ‘등 터지는 새우’ 신세이다. 이를 면하기 위해 경영난으로 매물로 나온 국내 반도체 업체를 인수하여 덩치를 키운다.

오늘날 재계 1위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이는 실화와 일치한다.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의 미래 가치에 주목하여 삼성전자에 반도체 사업부를 신설했다. 반도체 사업 진출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기술력에서 미국, 일본 기업에 열세였고 투자금도 문제였다.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가 필요하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반도체 사업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회의적이었다. 이에 이병철 회장의 3남 고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사재까지 출연하여 1977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고 이는 오늘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전신이 된다. 초기 삼성반도체는 선두 업체들과 벌인 치킨 게임 속에서 막대한 적자 행진을 이어갔지만 과감한 투자로 미국, 일본 등의 선두 업체를 따라잡았고 1990년대 들어 메모리 분야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오늘날까지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캐시 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병철-이건희 부자 회장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모체 구 한국반도체.

극 중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은 ‘자동차 매니아’로 묘사된다. 해외 명품 자동차를 수집하고 직접 수리까지 한다. 취향은 사업으로도 이어져 순양자동차를 설립하고 막대한 적자 속에서도 사업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세계 정상의 자동차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이건희 회장을 연상시킨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124대 총 477억 원 상당의 자동차를 수집했다. 자동차에 빠진 그는 관련 전문가로부터 자동차 원리, 수리 등을 직접 배우고 카레이싱을 할 정도였다. 그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사업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오랜 기간 동안 자동차 사업 진출을 꿈꿨지만 정부의 불허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2년 7월 자동차(상용차) 제조 허가를 받아 트럭 등 상용차 부문에 진출했다. 1996년 출범한 삼성상용차이다.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 승용차 사업 진출도 허가받아 1995년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로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르노삼성자동차 첫 승용차 모델 SM5 광고.

삼성자동차는 일본 닛산의 중형차 세피로를 기반으로 1998년 첫 모델 SM5를 출시했다. 1세대 SM5는 성능, 품질 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1997년 IMF 관리체제로 인하여 타격을 받았다. 또한 삼성그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기아자동차 인수에도 실패하였고 김대중 정부에서 시행한 ‘빅딜(대기업 사업 맞교환)’ 정책에 의하여 적자 상태이던 삼성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넘기고 대우전자를 인수하기로 하였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를 거쳐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지분과 경영권을 매각하여 2000년 르노삼성자동차로 재탄생한다. 이후 르노는 2022년부터 ‘삼성’ 브랜드 사용을 중지하여 사명을 르노코리아자동차로 바꾸었다. 반면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업계 꼴찌이던 순양자동차가 경영난으로 도산한 업계 2위 아진자동차(기아자동차) 인수에 성공하여 업계 1위 대영자동차(현대자동차)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에게는 3남 1녀가 있다. 그중 첫째 아들 진영기는 그룹 후계자이지만 아버지 진양철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둘째 아들 진동기는 장자 계승 원칙에 의하여 그룹 계승권에서 소외된 존재이다. ‘혼외자’로 등장하는 셋째 아들 진윤기는 그룹과 분리되어 영화제작·수입업에 종사한다. 이 밖에 고명딸 진화영은 순양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된 순양유통그룹 대표로 나온다. 이들 3남 1녀는 치열한 그룹 경영권 승계 경쟁을 치르지만 진양철 회장은 자신을 빼닮고 남다른 사업 수완을 보여주는 3남 진윤기의 차남 진도준을 차기 그룹 회장으로 낙점한다. 이는 실제 삼성그룹 승계 과정과 유사하다.

이병철 회장에게는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 삼남 이건희 등 세 아들이 있었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그룹 회장으로는 삼남 이건희가 취임했다. 장남 이맹희는 1966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공업(현 롯데정밀화학)의 ‘사카린 밀수’ 사건 여파로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 그룹 경영을 맡았지만 경영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후 이병철 회장이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이맹희와 불화가 깊어졌다. 또한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차남 이창희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여 삼성그룹 경영권은 장남, 차남을 제치고 삼남 이건희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이후 장남 이맹희와 직계 일가는 삼성그룹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제일제당을 1993년 계열 분리하였고 오늘날 CJ(제일제당)그룹의 모체가 됐다. 차남 이창희도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조하던 새한미디어를 주축으로 새한그룹으로 독립했다.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명희는 전주제지를 기반으로 한솔그룹을 일궜고 5녀 이명희도 분가하여 오늘날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명희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어머니이다.

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재벌집 막내아들’의 다른 등장 인물도 실제 범삼성과 실존 인물과 유사성이 있다. 극 중 진양철 회장의 장남 진영기의 독자(獨子)로 등장하는 진성준은 이재현 현 CJ그룹 회장을 연상케 한다. 이병철 회장은 장남 이맹희와는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지만 ‘장손’ 이재현 회장은 애지중지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에서 순양그룹 일가의 장손 진성준은 ‘현성일보’ 사주의 무남독녀 모현민과 결혼한다. 이는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를 모티프로 했다. 극 중 ‘현성일보’는 국내 굴지 신문사이지만 순양그룹과 별개인 회사로 묘사 된다. 실제와는 사뭇 다르다. 홍라희 여사는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이다. 홍진기 회장은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 합격 후 판사로 재직했고 이승만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삼성그룹에 합류하여 이병철 회장의 사업 파트너가 됐고 이후 ‘중앙일보’ 대표이사, TBC 동양방송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병철 회장은 홍진기 회장을 총애했고 삼남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를 결혼시켜 사돈을 맺기도 했다. ‘중앙일보’와 계열 미디어 기업들은 홍진기 회장 사후 장남 홍석현(현 중앙그룹 회장)이 계열 분리하여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구 중앙일보 사옥.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군사정권에 순양운수를 헌납한 것으로 나오지만, 현실에서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시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후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삼성그룹은 TBC 동양방송 소유권을 국가에 헌납하여 오늘날 KBS 2 채널이 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종전의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철폐하여 신문사도 방송에 진출할 수 있게 됐고 종합편성채널 사업에 진출한 ‘중앙일보’는 방송사명으로 TBC 동양방송을 승계했다는 의미를 담아 ‘JTBC’로 정했다. 오늘날 ‘중앙일보’, JTBC 등을 소유·경영하는 ‘중앙그룹’ 자산 총액 약 6조 원 규모로 CJ그룹 계열사 CJ ENM에 이은 국내 2위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삼성그룹과 언론사 간 인연은 또 있다.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다. 이서진 이사장의 남편은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구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전략실장(사장), 고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이다.

진양철 회장의 막냇손자로 차기 회장으로 유력시되는 진도준은 작품 속에서 서울대 법과대학에 수석 합격하여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을 기쁘게 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겹쳐진다. 다만 이재용 회장은 서울대 법학과가 아닌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진도준의 또 다른 모티프는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6남인 정몽준 회장은 서울대 법과대학과 더불어 인문사회계열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서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던 정주영 회장은 ‘서울대생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여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몽준 회장은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학, 존스홉킨스대학 등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정계에 투신하여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기업 경영 면에서는 아버지 정주영 회장 사후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독립했다. 2022년 기준 자산 총액 75조 3020억 원의 현대중공업그룹은 재계 서열 9위의 대기업집단이다. 정몽준 회장은 국내 1위 종합병원 아산의료원을 경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민간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명예 이사장 등으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사주 가문은 아니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항재 순양그룹 비서실장이다. 이항재의 모티프가 된 인물은 고 소병해 전 그룹 비서실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다. 두 사람 다 삼성그룹 공채 사원 출신으로 그룹 ‘2인자’인 비서실장 자리에 올라 10년 이상 재임한 샐러리맨의 전설로 꼽힌다. 소병해 전 비서실장은 이병철 회장의 참모로서 활약했고 이학수 전 본부장은 이건희 회장의 신임에 힘입어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오늘날 글로벌 대기업 삼성그룹의 발판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은 기업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다 현재는 해체됐다.

다음 주 종영을 앞둔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처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드라마 인기에 아울러 삼성그룹, 현대그룹, CJ그룹 등 극의 모티프가 되는 한국 재벌가 이야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