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퇴직자에 ‘회사 협박’ 혐의 씌웠다가 ‘녹음파일’ 증거에 역풍

차이나뉴스팀
2019년 12월 6일 오후 5:30 업데이트: 2019년 12월 6일 오후 5:30

‘애국 기업’ 화웨이(華爲)에 대한 중국 민심 이탈이 심상치 않다.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에 맞서는 기업’으로 칭송을 받던 화웨이다. 그러나 퇴직한 직원에 대한 횡포로 한순간에 ‘악덕 기업’으로 명성이 곤두박질했다.

중화권 온라인에서는 “화웨이에 대들면 공안이 찾아와 응징한다”는 조소도 나온다. 공안의 무리한 수사와 뒤이은 중국 당국의 관련 게시물 삭제 조치로 인해, 중국 정부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던 화웨이의 변명이 궁색해졌다.

거대기업 화웨이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은 화웨이 퇴직자 리훙위안(李洪元‧42) 씨. 그가 한 일은 그저 중국 노동법에 따라 정당한 퇴직금을 요구한 게 전부다. 한 가지 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측과의 퇴직금 협상 현장을 녹음해뒀다는 점이다.

리씨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지난 2005년 화웨이에 입사해 연구개발 및 판매 분야에서 일하다가 2018년 1월 퇴직하며 회사 담당자와 퇴직금 협상을 벌였다. 두 달 뒤인 3월 38만 위안(6천400만원)을 입금받았다. 하지만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9개월이 흐른 그해 12월 16일 새벽, 광둥성 선전(深圳)시 공안국 소속 공안들이 리씨의 집에 들이닥쳐 그를 ‘체포한 것. 협박 혐의였다. 리씨가 퇴직금 협상 과정에서 회사기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화웨이 측이 고소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온라인에서 삭제된 리훙위안(李洪元) 기사 | 웨이보

리씨는 251일(약 8개월)간 구금됐다가 2019년 8월 기소중지로 풀려났다.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던 데에는 퇴직금 협상 현장을 녹음했던 파일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이미 공안이 녹음기를 압수해 가고도 시치미 뚝 떼고 검찰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리씨가 친구의 컴퓨터에 백업 파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떠올려 변호사에게 알리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결국 선전시 검찰은 녹음 파일의 내용으로 봤을 때 리씨가 협박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공안이 죄목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리씨의 혐의 입증에 비정상적인 노력을 기울인 정황도 드러났다. 공안은 당초 기밀유출 혐의로 기소하려 했다가 별 증거가 나오지 않자 공갈죄로 죄목을 바꿔가며 장기수사를 벌였다.

리씨는 풀려난 후에도 3개월가량 잠자코 있다가, 검찰이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올해 11월 구금에 대한 배상금 10만 위안(1천7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형사배상결정서’를 보내자, 그제야 결정서를 중국 메신저 ‘위챗’에 올려 그간의 억울한 사연을 공개했다.

리훙위안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의 멍완저우 체포에 대해 찬성의 뜻을 나타낸 중국 온라인 댓글 | 중국 온라인 화면 캡처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달 1일 중국 포탈과 인터넷 신문 등에 실린 리씨의 인터뷰 게시물은 하루 만에 무려 총 조회 수가 5억을 넘었고 댓글 1만 7천 개가 달렸다. 리씨에 공감하면서 화웨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자, 즉각 중국 당국의 대응이 이어졌다. 관련 댓글 수천 건이 삭제되고 인기 검색어에서도 관련 키워드가 사라졌다.

하지만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화웨이가 합법적으로 퇴직금을 받아 간 리씨를 공안·검찰·법원을 동원해 공격해 다른 퇴직자들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리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또다른 인물도 나타났다. 화웨이 퇴직자라는 쩡멍(曾夢)이라는 인물이 퇴직금을 받는 과정에서 화웨이 측에 고소를 당해 90일간 감옥에 갇혔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법원 출석 위해 집에서 나서는 멍완저우 | AP=연합뉴스

화웨이에 대한 분노가 들끓으면서,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된 지 1년을 맞아 동정여론 조성에 나섰던 화웨이의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온라인 공간에서는 “멍완저우 체포는 잘된 일”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 1일 CNN에 따르면, 멍완저우의 아버지이자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최고경영자는 인터뷰에서 “멍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 놓인 걸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두 나라(미국과 중국)의 싸움에서 멍 부회장은 협상카드가 됐다”라며 “고난과 역경은 멍 부회장에게, 그리고 멍 부회장의 성장에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법무부는 멍 부회장에게 금융 송금 사기, 이란 제재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멍 회장이 사실상 화웨이의 미국 지적재산 절도에 깊게 연루된 산업 스파이라는 시각도 있다.

멍 부회장은 188억 원 호화 저택에 연금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이 캐나다 주재 중국대사가 방문해 위로하기도 했다. 런 회장이 말한 멍 부회장의 ‘고난과 역경’은 그런 식이다. 반면 새벽에 공안에게 끌려갔던 리훙위안의 251일은 화웨이에는 단순한 권리침해였다. 화웨이에 대한 중국 대중의 비난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권리를 침해된 것 같다면 회사를 고소하라”고 했던 화웨이 자신의 부적절한 대처였다.

“애국심에 화웨이를 샀지만, 앞으로 오만한 화웨이를 사지 않을 것”이라는 한 네티즌의 댓글이 그동안 ‘애국 기업’이라며 화웨이를 지지했던 중국 대중이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