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미중 무역전쟁에 민족주의 정서 부추긴 문건 유출

프랭크 팡
2018년 08월 23일 오전 2:57 업데이트: 2019년 10월 27일 오후 1:12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심상치 않은 민족주의적 수사법을 구사한 화웨이 내부 문건이 회사 관계자로 알려진 인물을 통해 유출됨에 따라 갖가지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중국의 저명한 금융계 인사이자 논평가인 차오산스(曹山石)는 문제의 유출 문건은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이 자사 직원들에게 보낸 것이라 주장하며 문건의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차오가 공개한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미국과의 긴장 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으니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항복한다면 헤어날 길은 없다. 나라 없는 사람은 노예와도 같다. 우리는 노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줄을 남의 손에 맡기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핵심 영역에 대한 투자는 늘리면서 다양한 영역의 부차적인 투자건들은 삭감해야 한다.”

런 회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의 어조는 중국의 또 다른 통신기업 ZTE가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과의 거래 금지 제재를 당해 한동안 영업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ZTE는 자사 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미국 기술 기업 부품 구입이 중단됐다. 제재 해제 합의의 일환으로 벌금 10억 달러(약 1조 1100억 원)를 부과받고 엄격한 규제 조치를 따르기로 약속한 뒤에야 지난 6월 거래 금지 조치가 해제돼 다시 영업활동을 재개했다.

유출문건의 수사법은 중국 당국이 보여준 전략과 유사하다. 중국 국영 언론은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반미 감정을 북돋우기 위한 기사를 수없이 써왔다.

베이징 당국은 2017년 롯데 그룹이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위한 부지 제공을 결정한 이후 시민들에게 롯데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부추긴 바 있다.

베이다이허에서 열린 중국 지도부의 비밀회의 결과가 최근 발표된 이후로는, 이달 말 치러질 미중 실무진 회담을 제외하곤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해 중국 정부가 취할 앞으로의 행보는 전연 알려진 바가 없다.

결국 런 회장은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그의 관점은 의미를 갖는다. 그는 중국의 최고 입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1982년 당시 대표이자 인민해방군 소속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화웨이가 중국군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2012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HPSCI) 보고서를 통해 상세히 공개되면서 미 정부의 우려는 한층 커졌다.

캐나다와 호주, 영국 등 다른 국가들도 화웨이 제품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 작전에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안보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이동통신사 AT&T가 안보 문제를 이유로 화웨이 스마트폰의 판매 계약을 철회했다.

중국의 트위터라 할 수 있는 시나 웨이보에서는 수많은 누리꾼이 런 회장의 말  이면에 숨어있는 논리를 비판하고 나섰다.

저장성의 한 누리꾼은 “무역 전쟁이 어떻게 한 국가의 몰락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매우 이상하다. 중국은 몰락한 적이 없다. 몰락할 수 있는 건 부패한 정부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베이징의 한 누리꾼은 “이것은 내부 문건이 아니라 대중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화웨이, 소비자를 조롱하는 그런 수사는 멈춰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