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와 中고위층은 어떤 관계일까

조슈아 필립(Joshua Philipp)
2018년 12월 18일 오전 10:22 업데이트: 2023년 08월 26일 오후 9:51

화웨이 CFO 멍완저우가 캐나다 당국에 체포된 사건으로, 세계 최대의 이 통신회사는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됐다.

멍완저우 사태로 관심을 받고 있는 화웨이는 명목상 민간기업이지만, 세계 어느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지 않다. 각국 정부는 화웨이와 중국 공산정권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검찰은 화웨이가 홍콩 회사를 이용해 이란에 부과된 제재를 회피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는데, 앞서 미국산 장비를 이란과 북한에 판매한 중국의 또 다른 기술회사 ZTE와 같은 혐의다.

겉으로만 본다면, 화웨이는 직원 소유의 민간기업이다. 설립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공식적으로는 화웨이 주식 1.4%만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주식은 노조위원회를 통해 8만 명의 직원들에게 분산돼 있다.

하지만, 노조위원회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며, 화웨이 직원들은 퇴직하면 지분을 자동 상실한다. 회사에 대한 진정한 지배권은 경영자들과 그들이 중국 공산당과 맺고 있는 권력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회사 최고위층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웨이가 중국의 정보기관, 군부,  중국 공산당 전 주석 장쩌민 파벌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런 회장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첫 부인 멍준은 저명한 인민해방군 정치위원의 딸이다. 최근 체포됐던 멍완저우 화웨이 CFO 겸 부회장이 바로 멍준과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런 회장의 가족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문화혁명기에 박해를 당했기 때문에, 런 회장은 아내와 결혼하면서 처가에 들어갔다. 그래서 멍완저우는 어머니 성을 따르게 됐다.

런 회장의 장인 멍둥보는 인민해방군 정치위원으로부터 쓰촨성 어느 시의 공산당 당비서로 근무하게 됐고, 나중에는 쓰촨성 부성장(副省長)까지 지냈다. 그는 1980년대에 쓰촨성인민회의 대표 및 전국인민대표회의 대표로도 활동했다.

런 회장은 장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의 정치적 인맥을 통해 지원을 받게 됐다.

1999년부터 화웨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쑨야팡(孫亞芳)은 런 회장과 함께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CIA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는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国家安全部, MSS)에 막강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화웨이, 첩보기관 그리고 파벌 투쟁

화웨이에서 쑨야팡의 영향력은 런 회장을 압도했다. 2010년 런 회장은 쑨야팡의 압력으로 화웨이의 후계를 자신의 아들 런핑에게 물려주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이 사실은 화웨이가 대체로 중국의 정보기관 통제하에 있음을 시사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현 시진핑 중국 주석에 의한 부패척결이 시작되기 전까지, 국가안전부는 확고히 장쩌민 파벌의 수중에 있었다.

국가안전부의 수장은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자춘왕(賈春旺)이었고, 그 뒤를 이어 2007년까지는 쉬융웨(許永躍)가 역임했으며, 나중에 겅후이창(耿惠昌)으로 교체됐다.

자춘왕은 공산당 전 지도자 장쩌민 및 그 측근들과 강한 유대 관계가 있었다. 자춘왕의 사위 류러페이는 CITIC 사모펀드 회장인데, 공산당 전 고위간부 류윈산(劉雲山)의 아들이다. 류윈산은 장쩌민과 깊은 관계였고 당 고위 간부를  역임했는데, 올해 초 퇴임하기 전 공산당을 이끄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한 명이었다.

쉬융웨는 공산당 간부의 아들이며, 역시 장쩌민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장쩌민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국가안전부 수장을 지냈다.

겅후이창은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과 긴밀히 협력했다. 현재 저우융캉은 부패와 시진핑에 대해 정변을 일으킨 혐의로 수감돼 있는데, 그는 장쩌민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저우융캉은 2014년에 숙청됐는데 다음 해에 사형선고를 받았고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겅은 2016년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그 해 11월 천원칭(陳文清)으로 국가안전부 수장이 교체됐는데 그는 과거 푸젠성 공산당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시진핑의 측근으로 파악되는 인물이다.

중국 검열 인프라 구축에 화웨이 참여 

장쩌민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공산당 총서기를 지냈다. 장쩌민은 퇴임 후에도,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한 자신의 많은 측근들을 통해, 후진타오 주석의 두 번 임기 10년 내내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상호 간의 비호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사들에 대한 숙청은 시진핑이 2013년 집권 후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부패척결 운동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1993년부터 2002년까지 공산당 기율위원회에서 근무한 왕요우췬은 본지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잘 아는 전직 화웨이 직원의 제보를 근거로, 화웨이는 정보기관에 이용된 기업이며, 과거 정권 즉 장쩌민파와 밀착돼 있다고 밝혔다.

족벌주의와 부패는 차치하더라도, 장쩌민은 중국 공산당 치하의 인권유린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특히 1999년 파룬궁에 대한 전국적인 탄압을 주도했다.

온라인을 감시하고 검열하기 위해, 장쩌민 정권은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the Great Firewall of China)’으로 널리 알려진 방대한 인터넷 통제시스템을 도입했다.

화웨이는 장쩌민 통치하의 중국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만리장성 방화벽 구축 및 업그레이드에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방화벽 구축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부분은 전국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한 감시를 확립한 ‘금순공정’이었다.

‘만리장성 방화벽’과 ‘금순공정’은 장쩌민의 장남 장몐헝(江綿恆)의 관리 감독 하에 구축됐는데, 과거 보도들에 의하면 장몐헝은 화웨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03년 국영 중앙TV 보도에 따르면, 2001년에 시작된 금순공정의 첫 단계에는 2002년 말까지 64억 위안(약 8624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 이후 단계에서 지출된 프로젝트 비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만리장성 방화벽’과 관련된 규모, 비용과 중요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화웨이의 정치적 배경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장몐헝은 프로젝트의 핵심업무를 화웨이에 위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시사평론가 탕징위안은 12월 10일 본지 중문판과 인터뷰에서 “화웨이 이사장 쑨야팡은 장쩌민 파벌의 명령에 따라 임명된 것으로 알려지며, 그리하여 화웨이는 정치적 신임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탕은 또 “그 후 그들(장쩌민 파벌)은 화웨이를 자신들의 기업으로 생각해 왔다. 장몐헝이 화웨이에 프로젝트를 맡긴 이유가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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