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운명은?

박상후 /국제관계,역사문화평론가
2021년 04월 15일 오전 9:24 업데이트: 2022년 05월 28일 오전 11:44

화교거부 궈허녠(郭鶴年 ·Robert Kuok)의 거대한 커넥션

4월 10일 중공시장감독총국은 마윈의 알리바바가 시장을 농단했다고 해서 182억 인민폐의 벌금에 처했습니다.

2019년 알리바바의 중공 내 매출의 4%에 달하는 기록적인 벌금이지만, 알리바바는 오히려 자신만만해했습니다. 그동안 당국의 건전한 규제 없이 성장해 왔다면서 관리감독기관에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마치 ‘이제 맞을 매는 다 맞았다, 또 무슨 제재가 있겠는가’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다음 타깃이 알리바바 산하의 미디어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란 얘기입니다.

3월 중순 월스트리트 저널 역시 베이징 당국이 원하는 것은 알리바바가 SCMP의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알리바바의 진정한 위력은 미디어입니다. 알리바바와 마윈이 지배하고 있는 미디어 자산은 광범위합니다. 인터넷 논단과 매체, 영화사, 소셜미디어에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알리바바 영화사, 인터넷 영상 플랫폼 요쿠(youku) 등입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징 당국은 알리바바의 SCMP 매각을 거론했고 중공 기업이 살 가능성도 있습니다.

SCMP는 1903년 홍콩의 영국 식민지 시절 창립된 오래된 영어 신문입니다. 외교관이나 은행가, 홍콩의 외국인을 독자로 거느린, 언론 자유의 전통적 보루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원래는 호주의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 소유였는데 1993년 말레이시아의 화교 거부 궈허녠이 29억2천만 홍콩달러를 들여 73.99%의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궈허녠은 리카싱과 비견할 만한 아시아의 거부입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제당 시장의 80%, 세계 설탕 시장의 20%를 장악하고 있어 아시아의 설탕왕이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궈허녠은 아시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거물입니다. 그가 소유한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은 아시아 안보 서밋도 유치했고 결정적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도 여기서 열렸습니다.

당시 중화권에서는 정치 경제를 관통하는 설탕왕 궈허녠의 실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말레이시아 3대 총리를 지낸 뚠 후세인 온과 학창 시절 클래스메이트였습니다.

또 싱가포르 래플스 칼리지도 다니면서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과도 상당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총리, 싱가포르 총리가 모두 그의 친구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최대 화교 거부로 마하티르 총리의 내각 고문도 지냈습니다. 전체 화교 거부 가운데는 세계 4위입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그의 집안은 중화권에서 현대판 강희왕조라고 부를 정도의 위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공에 가장 먼저 뛰어든 말레이시아 화교 거부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궈허녠은 아주 대단한 투자 스타일을 가진 인물입니다. 6.25 사변 이후 미국과 중공이 적대국이 됐을 때 설탕을 중공에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중공의 최고 지도자와는 두루 친합니다. 홍콩 특구의 덩졘화, 캐리 람은 물론이고 장쩌민, 시진핑과도 밀접합니다.

또 리카싱과는 투자 스타일이 확연히 다릅니다. 리카싱이 재산을 빼앗길까 두려워 중공 대륙의 부동산을 처분할 때 그는 오히려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궈허녠은 미디어산업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SCMP를 사들인 것은 베이징 당국, 정확하게는 장쩌민의 상하이방이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궈허녠은 장쩌민과 각별했습니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 이후 서방 각국이 중공 시장을 일시적으로 떠났지만, 궈허녠은 오히려 대중공 투자를 늘렸습니다.

중국경제주간에 따르면 1989년 8월 중공 총서기 장쩌민은 궈허녠 가족 전체를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초대해 식사하고 감사를 표할 정도였습니다. 장쩌민은 그에게 ‘서방의 제재가 언제 끝나겠느냐, 2년 정도면 되겠느냐’고 물으며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알리바바 집단은 SCMP 집단과 협의를 맺고 지분을 자기네들이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때부터 SCMP는 중공 내부 권력투쟁을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문인지 2016년 9월 SCMP의 중문판 난화자오바오(南華早報)는 차단됩니다. 영문판인 SCMP는 무사했습니다.

2017년 7월 21일 중화권 전문가 청샤오눙 박사는 VOA에 출연해 내막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출자를 하긴 했어도 이 신문의 편집 경영권은 홍콩·마카오의 공산당 손아귀, 그러니까 베이징의 누군가에게 있다는 거였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SCMP는 시진핑과 그 측근들에 관한 내밀한 사안을 건드렸습니다.

특히 2017년 7월 19일 중공 19대의 격전이 활발한 시기에 이 신문은 시진핑의 집사라고 할 수 있는 리잔수가 부정 축재를 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거부 차이화보(蔡華波)가 홍콩에 주소지를 가지고 있는데 같은 주소에 리쳰신(栗潛心)도 거주했습니다. 바로 리잔수의 딸이었습니다.

다음 날 SCMP는 이 보도를 내렸습니다. 외부 기고자가 쓴 글이라면서 은근슬쩍 기사를 철회했습니다.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시진핑을 떠본 겁니다.

청샤오눙 박사는 이와 관련해 SCMP의 배후에는 장쩌민의 심복 쩡칭훙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청샤오눙 박사는 반시진핑 세력인 상하이방이 장악한 홍콩 마카오에서 시진핑에 칼끝을 겨눴다고 말했습니다.

SCMP의 정보력은 아주 대단합니다. 중공 19대가 끝나기 며칠 전인 2017년 10월 21일 이 신문의 전 총편집 왕샹웨이(王向偉)는 확정되지도 않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을 예측했습니다.

시진핑, 리커창, 왕양, 왕후닝, 자오러지, 한정, 리잔수였는데 며칠 뒤 공식발표 명단과 오차가 없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왕샹웨이는 또 같은 해 12월 2일 보도에서 왕치산이 2선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가 실질적인 중공 권력의 2인자라고도 말했습니다.

그의 말 그대로 왕치산은 2018년 3월 국가부주석에 올랐습니다. 사우스차이나의 중공 권부 관련 보도는 예언자 수준입니다. 2017년 12월 5일 SCMP는 시진핑이 역사를 창조한 게 아니라 역사가 그를 만들었다는 사설을 게재했습니다. 그리고 시진핑이 용 꼬리 위에 앉아 득의양양해하는 삽화까지 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8년 3월 24일에는 왕샹웨이의 사설이 실렸습니다. 제목은 ‘우려를 더 하는 시진핑의 개인숭배: 중국은 마땅히 관제 매체의 선전을 줄여야 한다’였습니다.

중공군 내에서는 시진핑의 ‘주석어록’을 내고 있는데 이는 문혁시기 마오쩌둥 주석 어록과 흡사하다고 했습니다. 시진핑 개인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이었습니다.

왕샹웨이는 SCMP 총편집장을 지내기 전 중공의 영문판 대외선전 매체인 차이나데일리에서 일했습니다.

또 지린성 정협위원을 지내고 지금은 전국정협위원입니다. 1993년에 홍콩으로 이민을 간뒤 96년에 SCMP에 입사해 2012년 총편집장이 됐다가 2015년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왕샹웨이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사설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SCMP 베이징 지국장을 지냈던 제스퍼 베커(Jasper Becker)에 따르면 왕샹웨이는 홍콩 주재 중공 관리에 늘 연락을 취하며 신문 지면에 무엇을 쓸지 그들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중공과 관련된 기업가와 정치 권력 커넥션, 그리고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와 술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 복잡다단한 스토리는 중공뿐 아니라 홍콩, 그리고 동남아시아와도 얽혀 있습니다.

이상으로 중공 권력투쟁의 맥을 나름 짚어봤습니다.

* 이 기사는 박상후의 문명개화에도 게재됐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