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봉황TV, ‘민영’ 가면 벗었다…본토 당 간부로 임원진 교체

하석원
2021년 02월 10일 오후 7:00 업데이트: 2021년 02월 10일 오후 7:10

중국 공산당(중공) 군부와 밀접한 홍콩 봉황TV 핵심 임원진이 교체됐다. 후임에는 중국 본토 당 간부들이 임명됐다.

봉황TV는 그동안 중공 대변인 언론으로 지적을 받아왔으나, 형식적으로는 민영방송 형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중공의 지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더 이상 홍콩 민영방송으로 ‘연출’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독립언론인 ‘홍콩01’은 9일 위성채널인 봉황TV 설립자 류장락(劉長樂·류창러) 회장과 가족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신임 이사장에는 상하이 사회과학원 공산당 위원회 당서기 서위(徐威·쉬웨이), 사장에는 중공 관영 CCTV 뉴스 부문 부사장인 손옥승(孫玉勝·쑨위성)이 임명됐다.

홍콩01은 봉황TV 내부직원에게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서위와 손옥성이 각각 베이징과 홍콩에서 지난 1일 봉황TV 내부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봉황TV 내부직원이 임원진 교체사실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아직 이 사실은 회사 내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다.

봉황TV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관련 규정에 따라 이사회 개편 시 이를 공지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난 9일까지 회사등기 서류에는 이번 인사개편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아시아방송(RFA) 역시 봉황TV 관계자로부터 “인사 개편은 사실이다. 류장락 회장 일가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 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류 회장은 이사회 명예회장으로 남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홍콩 봉황TV 류장락(劉長樂·류창러) 회장(사진)과 가족들이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다. | 화면 캡처

봉황TV, 홍콩서 중공 선전기구 노릇

1996년 홍콩에 설립된 봉황TV는 2001년 미국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 출입기자를 두고 정보수집 활동을 벌여왔다.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인 류장락 회장은 중공군 장교 출신으로 중공 정치협상회의 상임위 소속으로 중공 CCTV에 재직하기도 했다.

한 중국 언론계 내부인사에 따르면, 류 회장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중공 국가안전부가 자금을 지원해 방송국을 설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류 회장은 중공군에서 성 스캔들을 일으켜 퇴역한 뒤, 군과 국가안전부 인맥을 바탕으로 석유사업을 시작했다가 홍콩에 당 선전 언론이 필요했던 중공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언론사 사주로 변신하게 됐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추적하는 국제인권단체 WOIPFG는 봉황TV가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1999년 말 당시 중공 총서기 장쩌민의 주된 홍콩 내 선전선동 채널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홍콩인들 “봉황TV, 외신 시늉 그만둔 것” 조소

봉황TV는 중국 방송이 아니라 홍콩에 기반을 둔 외신이라는 정체성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경영진을 당 간부들을 교체하자 홍콩에서는 “이제 외신 시늉을 그만두기로 했나 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30년 동안 정체를 숨기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당 매체임을 인정했다”는 신랄한 글을 남겼다. “더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기로 했나”라는 뉴스 댓글도 있었다.

“이전에 트럼프 기자회견에서 눈 부릅뜨고 봉황TV가 홍콩 민영방송이라고 말하던 여기자가 생각난다”는 누리꾼도 있었다.

작년 4월 6일 봉황TV 워싱턴 특파원 왕우우(王又又·왕요요)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질의응답 시간에 주고받은 대화로 불명예스러운 주목을 받았다.

왕 기자는 질문 차례가 되자 “화웨이, 알리바바 같은 중국기업들이 미국에 의료물자를 기증했으며, 주미 중공대사가 미중 방역협력을 호소했다”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가 마지막에 “중국과 개인적으로 협력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질문이 아닌 성명처럼 들린다”며 왕 기자에게 “누구를 위해 일하냐, 중국이냐”고 물었다.

왕 기자가 봉황TV에서 일한다고 답하자 트럼프는 “누구 소유인가, 중국? 관영언론인가?” 재차 물었고 왕 기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홍콩에서 설립됐다. 아니다, 민영기업이다”라고 부인했다.

해당 장면을 담은 영상은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봉황TV가 중공의 지시를 받는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왕 기자의 발언을 꼬집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봉황TV가 미국에서 정보전을 시작한 지 이미 몇 년”이라며 “그들은 대외적으로 사기업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관영언론”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봉황TV는 자회사 ‘봉황금융’의 1조원대의 금융사기 논란에도 휘말려 있다.

봉황금융은 작년 9월 “일부 금융상품의 대금 회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터넷 대출을 중단해 플랫폼 가입자 7만400명의 대출잔금 98억 위안(약 1조7천억)이 동결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으나 피해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류장락 회장의 사위가 이사장 겸 CEO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