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안전법은 ‘절대반지’…시민사회 “전면 통제하겠다는 의도”

이윤정
2020년 06월 24일 오후 7:54 업데이트: 2020년 07월 4일 오후 6:27

중국 공산당의 직접적인 홍콩 지배력 강화를 명문화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초안 내용을 두고 홍콩 시민사회가 심각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일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제출된 홍콩 보안법 초안이 공개된 이후 각 조항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뤄지면서 어두운 미래상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 초안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홍콩 내에 ‘국가안전공서’를 설치해 홍콩에서 직접 법 집행을 할 수 있다. 국가안보에 관련된 사건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지만 별다른 제약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행정장관에는 ‘국가안보사무 고문’이라는 형태로 사법에 관여할 수 있는 특권을 쥐여준다. 홍콩 보안법 사건에서 사건을 심리할 판사를 직접 지정할 수 있다. 사실상 판결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한 중국 공산당 산하 공안기관은 홍콩에서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책무를 수행하고,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권력을 행사해, 국가안보를 해치는 ‘4대 범죄’를 처벌하게 된다.

‘4대 범죄’란 분리독립·체제전복·테러행위·외세결탁 등이다. 체제전복 혐의는 그간 중국 공산당이 본토에서 언론인과 인권운동가를 탄압하는 도구로 주로 사용됐다. 홍콩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특이한 조항도 들어갔다. 홍콩 시민이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에 취임할 경우, 중국 공산당의 홍콩 기본법을 옹호하고 중국 공산당에 충성한다는 문서에 서명 및 선서를 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지난 2012년 변호사 자격증 신규 신청이나 갱신 시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당에 대한 충성 맹세는 자유의지를 지닌 시민을 정신적으로 굴복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충성맹세를 거부하거나 위반할 경우에 따른 처벌 규정은 없지만, 구체적인 혐의 입증 없이 ‘엄중한 기율 위반’으로 문책당할 가능성이 있다.

홍콩시티대학교 조지프 청(鄭宇碩) 전 교수는 “당국이 홍콩에 국가안전 기관을 세울 수 있고, 이 기관에 관할권이 있다는 점이 가장 핵심”이라고 말했다.

청 전 교수는 “중국 정부는 앞으로 특별한 상황에, 아주 중요한 사건들을 홍콩 내에서 직접 법 집행을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는 물론 현행 법제까지 무용지물이 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홍콩 내 자체 여론조사 결과 현재 홍콩인의 37%가 이민을 고려하고 있으며, 50%가 넘는 사람들이 중국 정부의 홍콩 정책에 대한 신뢰는 ‘제로’(0)라고 전했다.

홍콩 민주당 국제사무위원회 부주석 신충카이(單仲偕) 의원은 “중국 공산당이 기존의 홍콩 사법 제도를 파괴하는 이유는 통제를 강화하고, 의견이 다른 인사들을 공격하고, 이색분자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충카이 의원은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본토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가 되기 때문에, 홍콩보안법 카드를 이용해 홍콩을 대비하려는 것”이라며 “중국 정부는 홍콩보안법을 통해 홍콩을 전면 통제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중국계 작가 성쉐(盛雪)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전면 통제 하려는 움직임은 199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성쉐는 “지금 홍콩보안법 제정을 서두르는 이유는 지난해 여름 이후 홍콩인들의 완강한 저항이 중국 공산당을 예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며 “중공은 홍콩에서 탄압을 감행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보안법 강행의지에 맞선 국제사회의 반응은 뜨겁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코펜하겐 민주주의 정상회담 화상 연설에서 “중국 정부가 홍콩을 선전과 상하이처럼 대할 경우, 미국은 더 이상 홍콩이 자치권을 가진 도시로 보지 않을 것이며 홍콩과 맺은 모든 협정을 포기하고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유럽의회(EU)는 찬성 565표, 반대 34표, 기권 62의 압도적인 다수로 홍콩보안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노골적인 시도”라며 “법안이 홍콩의 자유와 자치, 그리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또 홍콩보안법이 1984년 체결된 홍콩반환협정에 규정된 일국양제 원칙에 위배된다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홍콩 민주당 국제사무위원회 부주석 신충카이 의원은 “국제적인 도시이자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서 활동하는 유럽인이 적지 않고, 미국인 또한 마찬가지”라며 “홍콩의 법 제도가 완전히 파괴되면, 그들의 이익에도 손해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가 성쉐는 “국제사회가 그동안 중국 공산당에 계속 관용을 베풀었다”고 지적했다.

성쉐는 “많은 이들이 중국 공산당이 시장을 개방하면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해 국제사회로 진입하게 하려 했다”며 “하지만 홍콩 사태를 지켜보며 이제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 최고입법기관인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20일 폐막한 회의에서 홍콩 국가법 초안의 심의를 마친 지 일주일 만인 오는 28∼30일 제20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