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가까운 광둥성 화장장 건설 반대 시위, 中 공산당 당국은 왜 물러섰나

관영언론 흑색선전 맞서 홍콩의 진상 퍼 나른 중국인들의 활약 있었다

FANG TIANLIANG
2019년 12월 7일 오후 2:32 업데이트: 2019년 12월 7일 오후 4:51

최근 중국 광둥성에서는 화장장 건설을 둘러싸고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강행하려는 당국이 충돌했다. 주민 수백명이 거리를 행진해 지방정부 청사로 향했고, 당국은 폭동 진압 경찰을 투입해 마구잡이 폭력으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부상자가 속출했다.

엄밀한 통제국가인 중국에서도 시위 초반부터 폭동 진압 경찰이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당국의 초강경 대응에 외신에서는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의 본토 확산을 우려해 초반부터 강하게 나섰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시위 개시 이틀 뒤인 12월 1일 해당지역 당 서기(공산당 지부 수장)와 공안국장이 사과하며 한발 물러선 것.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에 겁을 먹고 물러서기는커녕 홍콩 시위대와 비슷한 ‘5대 요구’를 내세우고,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으며,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공안 병력 증원을 차단하는 등 홍콩 시위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처를 보이자 당국이 강경 진압 대신 요구 수용으로 대처방향을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화장장 같은 ‘기피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건설 반대는 자유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엄밀한 주민통제와 인권유린이 일상화된 사회주의 중국에서 억압에 무릎 꿇리던 주민들이 당국의 부당한 행정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지역의 주권을 되찾는 일은 흔치 않다. 주민들 사이에서 “광복 마오밍(茂名·지명), 시대혁명”이라는 구호까지 나온 이유다.

주민들의 이러한 용기와 실천 뒤에는 그간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묘사하는 친 공산당 성향 언론들의 흑색선전 공세 속에서도 당국에 붙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검열을 피해 홍콩 시위대의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경찰의 폭력), 사진, 글을 꾸준히 본토 인터넷으로 옮긴 익명의 중국인들의 노고가 있었다. 홍콩에서 촉발된 반공의 불씨가 본토로 상륙했다.

지난달 28일 홍콩과 가까운 중국 광둥(廣東)성 마오밍(茂名)시 화저우(化州)현 원러우(文樓)진에서는 화장장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가 평화행진을 벌이다, 현지 공안 당국의 폭력 진압에 강제 해산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광저우 마오밍 원러우진 주민이 시위에 나서 당국이 화장터 건설을 강행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 인터넷 사진

이번 시위는 전날 화저우현 정부가 지역에 건설하기로 한 생태공원 내에 화장장을 설치하겠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당초 예정에 없던 화장장이 추가되자 지역 주민 수백 명은 환경오염과 재산권 침해 등을 우려하며 마스크를 쓰고 지방정부 청사로 행진해 화장장 설치 계획 취소를 요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 당국은 즉각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경찰은 장갑차와 물대포를 앞세워 최루탄을 쏘고 경찰봉으로 시위대를 구타하며 총기, 방패 등을 총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 100여 명이 체포됐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부상자 중에는 어린아이와 노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홍콩 시위대처럼 ‘5대 요구’ 제시

이날 경찰과 주민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모습은 홍콩 시위를 연상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탄을 피하면서 도로에서 나뭇가지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력 증원을 막았다. 시위자들은 경찰을 포위하고 장갑차를 향해 화염병과 벽돌을 던져 경찰차량 여러 대가 파손됐다.

시위대는 경찰과의 격투도 불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무 막대기를 든 주민들이 경찰들을 뒤쫓아 가 격퇴하고 경찰이 검문소로 사용하던 초소를 불태우기도 했다.

시위가 시작된 후 이틀 동안 약 200명이 체포된 것으로 집계됐지만, 주민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공안과 대치했다.

광둥성 마오밍 원러우진 주민이 화장장 설치에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 인터넷 사진
원러우진 주민 한 명이 경찰의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다. | @TuCaoNews의 트윗에서 캡처
경찰이 주민을 골목으로 끌고가 때리는 모습 | @TuCaoNews의 트윗에서 캡처
경찰이 최루탄을 쐈다. | @TuCaoNews의 트윗에서 캡처

원러우진 주민들은 “광복 마오밍, 시대 혁명”을 외치는가 하면 홍콩 시위대처럼 ‘5대 요구’를 수용하라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5대 요구에는 화장장 건설 중단을 비롯해 28일 시위에 대한 경찰의 권력 남용 조사, 체포자 석방, 재산 침해에 대한 정부 출자 보상, 공사장 녹지 환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뒤늦게 화장장 건립 계획이 추가된 것은 홍콩 시위 도중 사망한 다수의 사람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리자차오(李家超) 보안국장은 지난 6월 9일 경찰이 접수한 자살은 256건, 병원 이송 전 혹은 이송 도중 사망은 2537건이라고 발표했다. 홍콩인들은 이 집계에 시위 도중 실종, 체포, 사망한 사람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이번 홍콩 사태에서 사망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화저우시 인민 정부는 지난달 29일 인터넷에서 인문 생태공원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공고에 공문서 일련번호가 없어 진위를 알 수 없는 데다 당국이 화장장 건립을 완전하게 철회하지 않고 ‘중단’한 것은 추후 재개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주민들이 지난달 30일에도 시위를 이어갔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당국이 4일 만에 주민 요구 수락

사태가 격화되자 중국 공산당은 다급하게 민심 수습에 나섰다. 지난 1일 원러우진 정부 청사 앞에 천여 명의 시위자가 모인 가운데 원러우진 당서기 리웨이화(李偉華)가 관리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와 “주민들의 요구를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원러우진에서 인문 생태공원과 장례식장 건립 계획을 완전히 철회하며, 이 일로 향후 원러우진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리웨이화는 또 현장 변호사와 관련 실무자들이 체포자 가족들을 위해 사면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저우시 공안국장 역시 모든 피체포자를 석방할 것이며 부상자 전원에게 의료복지혜택과 손해 배상을 제공하고 추후 재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마오밍 시위는 4일 만에 끝이 났다.

원러우진 주민들이 경찰의 강경 진압에 두려움 없이 맞선 것은 홍콩인을 모방한 것으로 평가됐다. 과거에도 민중이 폭정에 항거해 시위에 나선 적은 있지만, 경찰에 반격하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중국 본토에 거주하며 홍콩을 자주 오가는 천(陳) 씨는 “이는 70년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처음으로 당이 민중에게 머리 숙이고 양보한 것”이라며 원러우진 주민은 홍콩을 본받았고 이는 중국 공산당을 공포에 떨게 했다! 지금 본토인을 홍콩에 못 가게 막는 이유는 홍콩인의 용기가 본토에 전파될까 두려워서다”라고 말했다.

시위가 발생한 원러우진은 홍콩에서 불과 39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가 6개월간 이어지면서 인근 광둥성 등 본토 지역으로 번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I)은 “당신들은 이제 모(某) 국제도시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겠나?”라며 홍콩 시위를 암시하는 SNS 게시물까지 등장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