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버려지는 1회용 비누 재활용…개발도상국 빈곤층 돕는 ‘클린 더 월드’

로버트 제이 왓슨
2019년 09월 7일 오후 9:13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59

숀 사이플러(Shawn Seipler) 씨는 미국 플로리다의 한 기술개발 업체 직원이었다.

업무상 출장이 잦았던 그는 호텔을 떠날 때마다 투숙했던 객실 욕실에 남겨지는 비누에 신경이 쓰였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어느 날 그는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남겨진 비누에 대해 물었고 “그냥 버려진다”라는 대답을 듣게 됐다.

순간 싸이플러 씨는 그동안 자신이 투숙했던 수많은 호텔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됐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국제 비영리 NGO ‘클린 더 월드(Clean The World)’의 시작이었다. 클린 더 월드는 버려지는 비누를 재활용해 환경을 보호하며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돕는 단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18억 명이 화장실과 세면대 등 기본적인 위생 시설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지역의 어린이들은 노상 배변으로 인해 오염된 땅에서 뛰어놀거나, 오염된 식수를 마시다가 병원균에 감염되기 쉽다.

WHO는 적절한 비누 사용과 위생 교육만으로도 어린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이플러 씨는 고통받는 어린이들은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고.

그러나 미국 호텔에서 쓰다만 비누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어린이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처음 사이플러 씨의 구상은 미국 내 호텔에서 매일 버려지는 2백만개 이상의 비누를 활용하는 영세사업체였다.

그가 ‘클린 월드’라고 이름 붙인 회사는 차고에 가족과 자원봉사자 몇 명이 둘러앉아 감자 껍질 벗기는 칼로 비누 표면을 평평하게 긁어내는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우리는 고기 분쇄기로 잘게 부순 비누를 조리도구로 반죽처럼 만든 뒤 성형 틀에 부었다”고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회사는 설립 초창기였던 2009년부터 나날이 성장했다. 전 세계 빈곤층에 기초 위생용품을 공급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호텔이 하나둘씩 파트너로 참여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도 적잖은 자산이 됐다. 디즈니 같은 지역 내 대기업으로부터 쓰고 남은 비누를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클린 월드는 클린 더 월드라는 비영리 단체로 탈바꿈했다. 홍콩, 몬트리올, 라스베이거스, 암스테르담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도 재활용 센터를 둘 정도로 성장했다.

그 사이 사업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호텔업계에서는 자체적으로 재활용 설비를 갖추고 비누를 재활용하거나 액상세제를 용기형태로 채워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버려지는 비누가 많다는 게 클린 더 월드 측의 설명이다.

이제 클린 더 월드는 기증받은 비누와 위생용품을 자동화 공정을 통해 재활용·재포장해 전 세계 빈곤층에 제공한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까지 127개 이상 국가에 5천만 개 이상의 비누를 배포했으며, 지역단체들과 손잡고 위생용품 사용법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 빈곤층을 위한 깨끗한 물 공급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식수오염은 위생용품 부족과 함께 빈곤층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이다.

호텔 욕실에 남겨진 비누에 대한 의문을 계기로 세계적 호텔 체인의 파트너가 된 사이플러 씨는 “아직 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 위생 혁명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