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상)

2007년 03월 5일 오전 12:09 업데이트: 2019년 11월 6일 오후 9:07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당문화 해체】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상) 


< 목 차 >

1.악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악당이 가르쳐준 언어로 말해 

오늘날 누가 아직도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가?
피동적으로 주입받던 데로부터 주동적으로 사고한 후의 자율—욕하면서도 공산당을 옹호
오늘날 과거에 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던 사람들을 조소하지만 내일은 똑같이 오늘날의 자신을 조소
중공에 대한 기대 패러독스 : 기대는 희망이 없는 것과 같다

■ 전형적인 일부 사례

1)표면적인 경제번영이 초래한 시각적 충격:일단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자
2)안정이 일체를 압도
3)다른 사람도 똑같다
4)나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나 잘해
5)공산당에 대해서도 변증법적으로 보아야
6)생존권(溫飽權)이 인권보다 높아

2.神을 믿지 않으니 일을 할 때 후과를 따지지 않고 어떤 나쁜 일도 다 저질러 

1)생명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인
2)천지와 투쟁하며 자연을 파괴
3) 사회 풍조가 날로 나빠져 도덕을 무시
4)性 범람이 사회에 조성한 위기
5)섹스, 도박, 마약의 산업화와 관방의 보호


미래의 기점에서 오늘날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사람들은 진실로 공산사령(共産邪靈)이 중국 땅에서 멋대로 자행한 놀랍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우며 피비린내 나는 것들 볼 수 있을 것이다. 짧디 짧은 몇 십 년 동안 공산당은 신주(神州)의 땅 중국에서 끊임없이 살인하고, 비판하고, 주입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당문화(黨文化)”를 세웠다.

여기서 공산당은 무신론과 유물론을 선전하고 神이 전한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위대함을 선전하면서 이것으로 전통문화를 대체하였다. 공산당은 또한 유불도를 비판하고 전통관념을 비판하면서 투쟁사상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이단 사설(邪說)들을 주입했으며 그것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하면서 체계적인 사상개조를 진행했다.

공산당은 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는 주입수단을 이용하여 선전기구에서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견유(犬儒)문인에서 각종 문예형식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철저하게 세뇌시켰다. 오호라! 신주(神州)가 피로 물들어 강산의 색이 변해버렸구나. 5천년 신전문화(神傳文化)의 뿌리가 끊어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화하(華夏)의 시조(始祖)를 믿지 않고 자신을 마르크스 레닌의 자손으로 자처했으며 짧디 짧은 시간 내에 공산당은 정말로 사람들의 사상을 철저히 개조했다.

중공 사교(邪敎)의 명령 : 사회주의의 길로 가라! | 에포크타임스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학입학시험에 “세계 일부 나라에서 식량이 부족한 것에 대해 개인의 견해를 말해보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학생은 “부족”이 무엇인지 몰랐고, 북한 학생은 “식량”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중국 학생은 “개인의 견해”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농담은 우리 중국 민중들이 몇 십 년 동안 중공의 선전과 고압적인 운동 실천 중에서 “개인사상”이 매우 희소한 것으로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사상은 사람의 언어와 행위, 재사상(再思想)을 통제한다.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은 당연히 원래의 본성(本性)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사람들은 악당(惡黨)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는데 습관이 되었으며 악당이 가르쳐준 언어로 말한다. 신을 믿지 않기에 무슨 일을 하던지 후과(後果)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어떠한 나쁜 일이든 서슴없이 한다.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기에 입으로는 온통 사람을 욕하는 더러운 말이며 행위는 저질이다. 현재 중국 사람들은 당문화를 제거할 경우 모두 이미 정상인의 말을 하거나 정상인의 사유를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닌가? 최소한 공산당 자신도 과거를 비웃고 있으며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1979년이 분수령이었다. 그전 30년의 역사를 사람들은 정말로 황당하고 가소롭다고 느낄 것이며 지금은 매우 정상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산주의를 믿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손에는 못이 박히고 온몸에 진흙투성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심지어 “전통문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그러나 당문화 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더욱 성숙되어 가고 있다. 당문화의 이론 체계인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과 투쟁철학은 여전히 중공의 초석이며 사상이 개조된 후에 사람들은 “과학적인 공동 인식”이다. 당문화에 의지한 주입수단은 여전히 수렴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의 보급에 따라 보다 용이하게 목청을 높여 사람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에 직면하여 중공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인터넷 봉쇄와 검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공의 소위 “전통문화” 회복은 전통문화의 내포를 뽑아낸 후의 것이다. 지금은 또 당문화의 무신론, 유물론 등의 사유방식에 따라 전통을 도용하면서 완전히 현재 사람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이런 근본 목적을 위해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회복은 당연히 우리의 진정한 전통문화가 아니며 정반대로 전통문화의 신운(神韻)에 대해 첫 번째 거세를 진행한 후 전통문화의 표면적 내용에 대해 진행된 두 번째 거세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감시, 전화 도청, 단파 방송 교란, 호구제도 | 에포크타임스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사상이 개조된 후에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표현을 나타낸다.

1.악당(惡黨)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악당이 가르쳐준 언어로 말해 

비록 전통문화를 대체하고 사람들의 사상을 개조하는 것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중공의 일관적인 정책이었지만 중공의 사상과 언어는 시기에 따라 변화가 무상(無常)하다. “계급투쟁만 틀어쥐면 만사형통”에서 부터 부득불 “돌을 더듬어 가며 강을 건너는(역주: 아주 세심하게 일을 처리함을 의미)” 데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풀이 원할지언정 자본주의의 새싹은 원하지 않는다”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아주 좋다”에서부터 “선명한 기치로 “동란(動亂)”을 저지하자”에 이르기까지, “가난할수록 영광스럽다”에서부터 “일부분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져야한다”와 “가난은 비웃어도 매춘은 비웃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장톄성(張鐵生)의 백지 답안 제출”을 찬송하던 데로부터 지금의 학술계에서 명리를 위해 “학술부패(縱欲主義)”를 크게 행함에 이르기까지, 예전에는 “금욕주의”를 부르짖다가 오늘날에는 “욕망을 방임”하는데 이르기까지…. 중공의 정책은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정말로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상이 당문화에 의해 개조된 후의 표현을 보면 당의 사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사람들은 늘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악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고 악당이 가르친 언어로 말하면서 이를 통해 늘 악당의 통치를 수호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한 마디는 만 마디에 해당한다” 던 시대에 악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었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친하다 해도 마오(毛) 주석만은 못하다”, “사람의 담이 클수록 생산량이 높다”, “인민공사(人民公社)는 좋다”, “저래도 계급투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이기심과 투쟁, 수정주의 비판”, “모든 잡귀신을 쓸어버리자”, ”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하자”, ”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은 사나이이며 아버지가 반동이면 아들은 개자식이다”, “전 세계 인민들이 단결하여 미 제국주의와 그 졸개들을 쳐부수자” 등. 그 시기의 목소리는 당연히 사람들로 하여금 악당의 사상과 언어에 따라 사고하고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했다.

지금은 정보 전달이 매우 빠르고 매우 많으며 언론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느슨해졌고 사람들도 공산당을 몇 마디씩 욕하고 있으며 모두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있는데 어째서 아직도 악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날 누가 아직도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공산당이 없다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중국은 민주를 할 수 없으며 한다면 단번에 혼란해질 것이다.”, “공산당의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연연하지 말고 일체를 전향적으로 보아야한다.”, “공산당에 시간을 주면 민주와 자유는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 “인권이란 곧바로 따뜻하고 배불리 먹는 문제이며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데 무슨 인권을 말하는가?”, “무슨 종교 신앙인가? 神이 어디 있는가?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을 숭상해야 한다.”, “나쁜 일은 모두 일부 사람들의 소질문제이며 당 자체는 좋다”, “나라가 이렇게 큰데 누구를 바꾼들 마찬가지가 아닌가?”, “누가 공산당을 반대하면 바로 정치를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 “경제발전이 우선이다” 등에 대해 사람들은 이런 관점이 자신의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며 중공의 일방적인 주입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독립적이며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라, 위에 제기된 관점들 중에서 공산당이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선전하고 주입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다만 “반란에 도리가 있다”고 하던 것이 “(당의)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것으로 변했을 따름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스스로 맹목적인 숭배에서 벗어났다고 하고 또 공산당의 사상통제에 면역력이 생겨났다고 느낄 때가 바로 당문화가 사람들의 사유방식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난 30년 동안에는 사람들의 사상이 당에서 직접 주입한 것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더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시달린 후에 더 이상 “맹목”이 아니라 “독립적”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피동적으로 주입받던 데로부터 주동적으로 사고한 후의 자율-욕하면서도 공산당을 옹호 

불행한 것은 이런 사고 과정에서 사고하는 이론 체계는 여전히 공산당이 준 것이며 사고하는 정보의 출처도 여전히 공산당이 통제하는 것으로, 소위 “독립”이라고 하는 것은 당문화 틀 속의 “독립”에 지나지 않으며 소위 “이성”이라는 것도 당문화 이론 체계중의 “이성”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를 통해 얻은 결과도 마찬가지로 공산당이 기대하고 바라는 결과가 된다.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이유에는 아래의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1)”독립사고” 중에서 당이 엄마라는 정서 

“당은 바로 일체이며 당이 바로 모친이다”, “생명(命)은 당이 준 것이다”, “밥은 당이 준 것이다”와 같은 이런 “모자 정(母子情)”은 수십 년에 걸쳐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버렸다. 비록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당이여, 사랑하는 어머니여”라고 하진 않지만 당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지고무상(至高無上)한 권위로 사람들의 의식주를 통제하며 사람들에게 여전히 “국가가 바로 당”이며 “밥은 당이 주는 것”, ” 공산당은 중화 민족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하면서 당, 국가, 민족의 개념을 혼동시키며 전반 생활환경이 마치 당이 건설하고 부여하고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중국문제를 사고할 때의 최저선이 바로 공산당을 초월할 수 없고 당이 없는 나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외부 사람들은 중국인들의 이런 심태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이가 자라면 멀리 떠나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당문화의 봉폐된 고압식 환경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사상만은 자라지 못하게 하는데 그럼 아이가 모친을 떠날 수 있겠는가?

2) “독립사고”의 이론적 기초 

사람들이 문제를 사고하는 이론적 기초는 여전히 무신론, 변증법적 유물주의, 진화론, 투쟁철학과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당 이외에는 “신(神)과 하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이 사고하는데 필요한 단어나 혹은 언어 계통은 여전히 당문화의 함의가 부여된 것으로 모두가 중공이 가르친 언어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오직 당문화 속에서만 맴돌게 된다. 심지어 “공산당이 없다면”이라는 이런 한계선을 초월하는 사유방식에 대해서는 이름 모를 공포를 느끼게 된다. 동시에 정치운동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반(反) 자유화, 6.4 천안문 사건 탄압, 파룬궁(法輪功) 박해 등 이런 전국적인 정치운동은 모두 당문화 이론을 또 한 차례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복습하는 과정이었다.

3)사고 과정에 영향을 주는 “불완전한 정보” 

사람들이 문제를 사고하는 정보의 출처는 여전히 공산당의 엄밀한 통제를 받고 있다. 심지어 공산당에 부정적인 소식조차도 당의 세심한 통제 하에 효과적으로 당을 수호하는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속담에 “양쪽 말을 다 들어야 분명하다(兼聽則明)”고 하여 한 사람이 서로 상반되는 두 관점을 얻고 또 모두 도리가 있는 말이라고 인정한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진정하게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만 중공의 일언당과 정보 봉쇄, 여과는 “정보가 몹시 불완전”하게 만들었으며 사실 이것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필요조건을 단절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총명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려고하는 염원이 있어도 “쌀이 없어 밥을 짓지 못하는” 난처한 처지와 같으며 이런 사고는 또한 진정으로 자신의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4)”강권론(?權論)”은 사람을 사고할 수 없게 해 

“공산당은 강권이며 잔혹하기 때문에 당과 맞서면 절대 좋은 끝장이 없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몇 십 년 동안 진행된 운동과정에 얻은 공동 인식이다. 공산당을 몹시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강권(强權) 정치에 두려움을 느끼며 때문에 또한 심리적인 사고방식도 공산당을 뛰어넘지 못하며 “당신이 공산당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도리어 마치 크게 깨달은 것처럼 중공에 따라가게 되며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공산당을 몇 마디씩 욕할 수 있는 것을 언론이 느슨해진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모두가 당문화 속에서 욕하고 있으며 욕을 하면서 당을 이해하고 마지막에는 현재 상황을 수호하는 것으로 변칙적인 방식으로 공산당을 옹호하고 있다.

사람들의 독립 사고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매우 많다. “사고”를 거친 후에도 여전히 당과 일치하는 이런 현상은 과거의 직접적인 주입보다 더욱 해롭다. 일단 이런 사상을 자신의 독립적인 “사상”이라고 여기게 되면 더욱더 이런 관점을 믿게 되며 객관적으로 더욱 능동적으로 당과 일치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중공이 인민들을 통치하는데 편리하다. 만약 과거에는 피동적으로 조각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에 와서는 바로 당문화가 발효하고 성숙되어 사람들이 능동적 자율적으로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강제 주입에서 부터 오늘의 능동적인 자율로 당의 정책에 협력하고 당을 이해하며 “욕을 하면서 공산당을 옹호한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이 인민들의 사상을 개조한 전형적인 결과이다.

오늘날 과거에 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던 사람들을 조소하지만 내일은 똑같이 오늘날의 자신을 조소 

하나의 풍자적인 현상을 말한다면 만약 중공의 역사를 시기를 나누어 본다면 사람들은 늘 “현재”라는 기점에서 당의 정책을 옹호하며 “과거”에 발생한 많은 일들을 비웃거나 또 매우 황당하다고 여긴다. 만약 시간 좌표를 과거로 옮겨놓고 오늘의 기점에서 과거에 악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던 사람들을 비웃던 사람들이 과거의 위치에 서게 되면 모두 매우 정상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이 그 시기 당의 정책을 옹호하고 있으며 아마 또 그 이전의 행위를 비웃을 것이다. 오늘날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공산당은 마땅히 문화대혁명을 발동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며 더 앞으로 나간다면 대약진도 너무나 영명(英明)하고 정확하다고 여길 것이다.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커진다.”는 말에 대해 사람들은 그때의 황당함을 비웃는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이 이런 논리로 문제를 사고하고 있다. 다만 그 표현 형식이 다르고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연속 몇 년 간 농업 발전을 이룬 뒤 《인민일보》에서는 1958년 8월 27일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문장을 발표했다. 이것은 중공 중앙 판공청에서 산둥(山東)성 서우장(壽張)현에 파견한 사람이 상황을 알아본 후 쓴 편지내용이다. 문장에서는 한 무(畝)에 만 근을 생산하는 것이 “하나도 신비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했다. 오직 물과 비료를 충분히 주고 깊이 갈고 빽빽이 밀식(密植)하면 “한 무당 만 근 생산”이 현실로 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과학자가 나서 밀식이 태양 에너지 이용으로 무당 생산량이 5만 8500근까지 가능하다는 논증까지 했다. 오늘날 당시의 언론과 행위들을 돌이켜 보면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중공의 절름발이 개혁은 경제적으로 약간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렇게 되자 중공의 선전과 주입으로 사람들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직선적인 사유 방식이 생겼다. 지금은 완구를 수출하지만 나중에는 비행기를 수출할 것이며, 지금은 빈부차이가 크지만 장래에는 공동으로 부유해질 것이며, 지금는 사회가 부패하고 불공평하며 교육, 의료, 복지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이 있지만 장래에는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지금은 환경이 오염되고 있으나 장래에는 자연히 다스려질 것이며, 지금은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지만 장래에는 충분할 것이며, 지금은 단체로 항쟁하지만 앞으로는 화해사회가 될 것이며, 지금은 도덕이 날로 타락하고 있지만 장래에는 좋아질 것이며, 지금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장래에는 민주 자유의 제도가 발전될 것이라는 등.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다”, “중국은 장차 금세기 세계 최강국이 될 것이다.”??사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커진다.”는 것의 새로운 재현이다.

그 시대에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커진다.”고 한 구호는 “공산풍(共?風)”, “허풍”, “눈먼 지휘풍(?指揮風)”을 초래했으며 대약진(大躍進)을 큰 퇴보로 만들었고 인민공사(人民公社)를 인민의 텅 빈 회사(人民空社)로 만들었다. 오늘날 이런 사상의 해악은 절대 당시에 비해 작지 않으며 또한 더욱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사리 발견하지 못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의 사상들은 주입된 것이었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이런 사상은 자신의 “사고”를 통해 얻은 것이기 때문에 그 해악이 더욱 크다.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커진다.”는 이 한 마디는 이 자체가 바로 “유심주의(唯心主義)”이며 단지 일종의 기백과 결심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일반적인 철학 내포에 당문화가 주입되면 극히 훼멸적인 것으로 변한다. 극단적인 유물주의로 말한다면 이것은 더 이상 결심의 표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아주 확실한 것으로 변해버렸으며 요구하는 것은 무당 생산량 표준이고 층층이 지표를 과장하여 높은 생산량을 요구했다. 神을 믿지 않는 공산당으로 말하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일월(日月)을 휘어잡아 새 하늘을 바꾸는” 아무런 두려움 없는 정신이다. 조건이 있어도 하고 조건이 없으면 창조해서 해야 하며 이름 모를 그 어떤 것이 사람들의 머리를 뜨겁게 했다. 당문화의 인성(人性)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제 “공산주의로 달려 들어가자”던 구호는 사람들더러 객관 법칙과 현실을 무시하고 무당 만 근, 10만 근을 생산하도록 요구했다. 오늘 또 “전면적으로 굴기(?起)하자”고 떠들어 대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보고도 못 본 척 만들었으며 맹목적으로 중공을 믿게 하고 있다. 지난 20여년의 절름발이 개혁은 중국에 거대한 위기를 가져다주었지만 사람들은 중공을 감독하거나 비평하지 않으며 중공을 반성하지 않으며 중공을 해체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모든 희망을 일체의 위기를 조성한 중공에게 맹목적으로 기탁하고 있으며 중공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고 또 해결할 능력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담이 클수록 토지 생산량도 커진다.”라는 구호의 21세기 버전이 아닐 수 없다. 즉, “사람들의 기대가 클수록 중공은 그만큼 큰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중공에 대한 기대 패러독스 : 기대는 희망이 없는 것과 같다 

중공은 역사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중대한 정책 조절을 했다. 이들은 모두 당 내외로부터 거대한 압력을 받았을 때이며 “망당(亡黨)”의 위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개혁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공은 오직 압력을 가해야만 비로소 개량한다. 기대만 하고 중공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으며 중공이 현재 하고 있는 악행을 폭로하지 않고 방임하거나 따르면서 부추긴다면 중공은 절대 개량하지 않는다. 때문에 중공에 기대한다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맹목적인 “기대” 중에서, 소위 중공에게 준 30여 년 동안의 환상 속에서 사회적인 위기는 이미 여러 차례 중국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개량(改良)”이란 오늘날의 중공에 대해 말하자면 너무나 사치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공이 누적한 원죄(原罪)은 그것으로 하여금 아예 개량을 원하지도 못하게 하고 개량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통치 권력을 수호하는 것은 중공이 단체와 개인의 이익을 유지하는 최저선이다. 중국 경찰사이트에서 눈에 확 띄는 구호가 있는데 바로 “당의 집정(執政) 직위를 수호하자”는 것이다. 경찰은 이렇게 공공연하게 자신을 당의 노예로 자처하고 있으며 공산당은 “개량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기대는 중공이 역사의 조류에 순응하지 않게 하는 에너지를 증가시켜 주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중공은 이미 중국 문제를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해결하는데 기본적인 장애가 되었다. 오직 중공을 해체해야만 중국 인민들이 아무런 근심 없이 모든 총명과 재간을 발휘하여 국가의 방향과 전도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으며, 민족은 비로소 진정한 희망이 있게 된다.

아래에 우리는 일부 전형적인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람들이 어떻게 악당의 사상과 악당이 가르친 언어로 문제를 사고하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현재 공산당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정서는 바로 20여 년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 하에서 사람들은 공산당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공산당은 과연 변했는가, 희망이 있는가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1)표면적인 경제번영이 시각에 가져다준 충격:”일단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자” 

사람에게 있어 시각과 감각이 주는 충격은 거대하다. 공산당에 겁을 먹었으며 가난을 두려워하던 중국 민중들은 생활이 조금만 개선돼도 쉽사리 만족을 느낀다. 여기에 공산당이 매년 반복해서 “좋은 세월”이요, “태평성세 갈라”를 선전하여 마치 금방이라도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뛰어넘을” 것처럼 떠들며 사람들을 둥둥 뜨게 만들었다. 중공은 기회를 틈타 물을 흐려 고기를 잡는 식으로 경제 발전을 통해 자신의 집권이 합법적이라는 근거를 찾았다. 사실 경제 발전은 중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중국 경제가 발전한 공로는 근면한 중국 인민들에게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오직 외국 기업의 투자유치가 있고, 지혜로운 과학자, 엔지니어가 있으며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동자와 큰일을 위해 치욕을 참을 수 있는 농민들이 있다면 설령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20여 년이면 풍요로운 물질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그러나 이런 절름발이 발전이 과연 민족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가? 발전의 순서문제, 어느 것을 앞세우고 어느 것을 뒤에 할 것인가, 상호 의지하는 관계 등은 현대 경영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 하나다.

중국의 표면적인 경제 번영 배후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보자. 정치 개혁은 정체되고, 경제 체제는 기형적이며, 사회의 불공평, 관료들의 부패, 빈부 격차, 도덕의 타락, 환경 파괴, 자원 결핍, 인권과 신앙 종교단체에 대한 엄격한 압제, 민주 자유에 대한 적대시, 언론과 매체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견제, 은행의 부실장부, 금융위기, 폭력조직, 매매춘,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약소 군체(群體)들이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것, 얼기설기 엉킨 사회모순, 날로 증가하는 민간의 인권수호운동과 급속히 증가하는 민중들의 집단 항쟁(2005년에만 약 8만여 차례) 등과 여기에 예측하기 어려운 대자연의 징벌과 보복도 있다. 표면적인 번영 아래 중공 정권은 마치 화산꼭대기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 소위 고속 경제성장은 사실 환경파괴와 에너지 낭비를 대가로 해서 얻어온 것이다. 환경의 대가를 계산한다면 중국의 최근 실제 GDP성장은 마이너스로 볼 수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경제의 기형적인 발전이 초래한 잠재위기와 민족 재난의 가능성에 대해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는 중공의 강권에 굴복하여 아무 소용이 없고 스스로 번거로움만 찾을 뿐이라고 여긴다. 둘째로 생활이 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느끼면서 이런 발전이 지속가능한지 여부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골몰한다.” 또한 오직 돈만 벌려는 그런 외국 기업인들과 정치인들도 어떻게 세계 최후의 이 시장에서 자기 몫을 더 챙길 것인가만 관심을 갖는다. 비록 외부 세계에서는 중국의 경제 발전이 민주와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여겼지만 이것은 지난 20여 년 간의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외국 기업은 중국에 민주와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중공의 부패 먹이사슬에 첨가제를 더한 격이었다.

어떤 학자는 중국이 3개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았다. 제1세계는 별장에서 향수하는 사람들이고, 제2세계는 주택, 의료비, 자녀교육 때문에 감히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제3세계는 먹고 살기위해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 과학원 “중국 현대화 전략연구 과제 팀”에서 작성한《2005년 중국 현대화 보고》에서는 중국 경제가 미국에 비해 100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만약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9%정도 유지한다면 100년이 지나야 세계 10대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9%의 경제 성장률을 100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다음 세기는 더 이상 “중국의 세기”가 아니라고 평론했다. 그러나 대도시의 쇼윈도 식 번영 아래 진정한 중국이 가려져 있다. 표면적인 경제번영이 초래한 시각적인 충격은 한 가지 “뛰어난 것”으로 수많은 더러운 것들을 덮어 중공을 도와 사람을 미혹시키는 면사포를 씌워놓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과 맹목적인 발전은 상당 정도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전면적인 인식을 저해하고 있으며 “여산(廬山)의 진면목를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에 대해 역사적으로 반성하거나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시인이 시 말고 다른 곳에 공력을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자면 신앙, 도덕, 법률, 언론자유, 매체 감독 등 이런 비경제적인 요소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자”는 것은 공산당이 체제개혁을 지연시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또 정말로 진리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당문화 사유에 빠져 들어간 것이며 중공의 사상에 따라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 인민들은 지금 많은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두 사생활이나 체육과 오락방면이며 다른 방면은 여전히 금지구역이다. 다른 국가들은 발전과정 중에 인민들이 정치와 제도 개량에 적극 참가하여 자신의 각종 권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중국 인민들은 지금 이렇지 않다. 과감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중공의 박해를 반대하는 그런 민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권리 쟁취를 반대한다. 그들은 또 모든 것을 공산당에 바치기를 원하며 공산당이 저절로 개량하고 은혜를 베풀기를 바란다.

2003년 중국 대륙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텔레비전 연속극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공화를 향해》였다. 나중에 방송이 금지되었다. 이 드라마는 청 왕조의 개혁개방이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 운명을 진실하게 그려냈다. 중공에게 있어 바로 이 점이 정말로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청나라는 개혁개방 이전에 전기, 전보, 전화나 기차, 자동차도 없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만에 상해탄(上海灘)은 세계 4대 진주의 하나로 되었고 제국주의 모험가들의 낙원이 되었으며 3개의 큰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선 양옥들과 황포강변의 고층건물들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한 초기의 창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이 청 왕조가 멸망될 운명을 구할 수 있었는가? 하지 못했다. 1905년 손중산(孫中山)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단지 철도, 기차, 전화, 전보나 이런 서방의 물질문명을 들여오고 정치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국내의 부정부패, 사기, 약탈 등 이런 것들에 더 넓은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이 여러 방면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는 발전의 기본 상식을 모르는 것이 아니며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고치기가 더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관건은 바로 당문화에 젖어 중공의 세력에 굴종하고 중공의 이익에 비위를 맞춰 가면서 경제발전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유리하다고 여겨 중공을 따라 “일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보자”라고 하면서 중공의 살인방화에 대해 수수방관 하고 있다는 것이다.

2)”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는 구호 아래 인민들 위에 군림하는 중공. | 에포크타임스

정치 운동을 겪은 중국인들은 “안정”에 대해 더욱 갈망한다. 때문에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는 것이 민중들 속에서 매우 큰 공감을 갖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시기에 중공통치를 수호하는 주요한 구호로 되었다.

공산당을 말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폭력혁명과 정치 동란(動亂)을 연상하게 되는데 중공은 왜 갑자기 “안정”이라는 깃발을 치켜들었는가? 이것은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중공은 인민들을 “동란(動亂)”할 수 있지만 인민들이 중공을 “동란”하려 하면 중공은 곧 “안정”을 외친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중공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러 차례 운동을 일으키면서 인민들을 괴롭혔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민주 자유의 열조와 인민들이 각성하여 중공을 “동란”하려 하자 이때 중공은 “안정”을 소리 높여 외쳤다.

주지하다시피 중공이 말하는 안정이란 단지 중공 정권의 안정일 뿐 국가나 사회의 안정이 아니다. 중공의 절름발이 개혁 과정에 이미 이득을 얻은 기득권자들, 특히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권세가들이 “안정”을 가장 필요로 하며 안정된 환경에서 보다 많은 이득을 챙기려 한다. 그들은 기존 질서를 가장 수호하고자 하기 때문에 가장 견정한 “안정” 역량이 되었고 가장 믿음직한 “안정”의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안정”은 양지(良知)와 도의(道義)보다 위에 있기에 백성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돌보지 않는다. 탄광에서 갱부들이 사망하면 중공은 “안정”을 구실로 죽은 자의 억울함을 묻어버리며, 도시에서 집을 빼앗긴 철거민들이 핍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무릅쓰고 상방을 통해 정의를 되찾으려 하면 중공은 또 “안정”을 구실로 가로막아 나서며 심지어 “안정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박해한다. 이러한 “안정”은 거짓 안정으로 사회의 불공평과 여러 가지 모순이 쌓이게 되면 화산처럼 폭발하게 될 것이다. 공산당이 선전하는 “(당의)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는 것은 바로 사회 모순이 누적되어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과정이며 일단 위기가 폭발하게 되면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재산이 다 사라질 것이며 중국 민족은 다시 도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경제의 운행에는 자신의 주기가 있기 때문에 “안정”할 수 없으며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럴수록 더욱 합리적인 제도를 기초로 사회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진정한 안정은 자유로운 질서가 필요하며 법치(法治)의 질서와 공정한 질서가 필요하다. 영국은 가장 일찍 헌정(憲政)을 실행한 국가로서 3백여 년간 지속적인 안정을 유지하고 인민의 자유와 경제 번영을 가져왔다. 모순이 생기면 제때에 잘 다스려 나갔으며 강제로 탄압하지 않았다. 중공은 사람들이 빈번한 정치 운동을 겪는 과정에서 두려워하며 안정을 원하는 심리를 이용해 기둥을 바꾸어 넣는 술책으로 자신의 통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안정을 외치는데 이러한 안정은 진정한 안정이라고 할 수 없다.

중공의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가 초래한 대가로 현재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며 비용이 더욱 높아졌고 위험도 더욱 커졌다. 사회 모순이 갈수록 첨예해진 오늘 중공은 지속적인 탄압으로 권리를 수호하거나 견해가 다른 인사들을 박해하고 신앙단체를 탄압하고 소식을 봉쇄하고 여과하고 있다. 중공은 집단 이익과 개인 이익을 수호하는 과정에서 그 원죄(原罪)가 갈수록 커져, 중공이 갑자기 태도가 변해 자비를 베풀어 정치 개혁을 하거나 자유 민주를 실행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졌다. 그러므로 중공이야말로 가장 불안정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체 불안정 요소를 소멸해버려!” | 에포크타임스

3)다른 사람도 똑같다 

중공은 ‘국정(國情)’이란 단어를 구실로 삼는 것을 즐긴다. 다른 사람은 민주가 있어도 중국은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언론 자유가 있어도 되지만 중국에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는 신앙의 권리가 있어도 중국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런가? 중공의 말대로 한다면 바로 국정(國情)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나쁜 일이 있게 되면 중공은 이때는 ‘국정’을 말하지 않으며 ‘보편적인 가치’를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아 원래 “세상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중공이 한 악행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서해 주길 바란다.

부패를 언급하면 중공은 “부패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말하며, 민중을 탄압한다고 하면 “미국도 공개적으로 민중에게 총을 쏜다.”고 하며, 민주를 말하면 “인도에서 민주를 해봤지만 별 볼일 없었다”고 한다. 평화적인 체제변화를 말하면 중공은 “러시아가 체제를 변경한 후 나라를 망쳤다.”고 하며, 선거를 말하면 “타이완 선거가 어떻게 혼란하다”고 하며, 중국이 지금 자원을 많이 낭비하고 빈부 차이가 크다고 하면 “이것은 자본의 시초축적으로 발달한 국가들 중에 이런 길을 걷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반문하며, 언론 자유를 말하면 “서방의 어는 매체가 재단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있는가?”라고 하며, 천안문에서 상방하는 민중들을 왜 체포하는가 말하면 “당신이 백악관에 가서 항의해도 체포하지 않는가?”라고 하며, 중공의 인권이 나쁘다고 하면 미군이 포로를 학대한 사건을 크게 떠들어대며 “미국은 자기도 잘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중공을 말하는가?”라고 한다.

이런 사이비 언론들이 때로는 엄숙한 설교보다도 사람을 더 미혹시킨다. 그러나 이렇게 비유하는 것은 착오적이며 기만으로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이다.

우선 사람들은 모두 약점이 있다. 때문에 어느 나라든 모두 탐오, 인권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행위를 변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중공이 “남들도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 이런 시비(是非)가 전도된 논리를 지적할 따름이다. 사실 중공은 선전을 보도할 때 사건이 발생한 배경, 경과와 처리방식을 편집하여 중공에게 불리한 면은 의도적으로 감춘다. 우리는 문제가 발생한 것과 발생한 문제에 대한 반응과 처리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중공은 문제의 발생에 비중을 두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매체 그리고 민중들의 문제에 대한 반응과 처리에 대해서는 회피한다.

미군의 포로 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중공은 크게 떠들어댔다. 말하자면 미국도 인권이 좋다고 할 수 없으니 중공의 인권이 좋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정부와 중공의 이런 사건에 대한 처리 태도를 비교해보면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에서는 이미 전국적으로 파문이 크게 일어나 온 나라를 진동시켰다. 단지 언론에서 크게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한 반응을 보여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중공이 보도한 자료들은 대부분 미국 매체들에서 공개적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그러나 중공은 자신의 인권 악행에 대해서는 줄곧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덮어 감추고 또 다른 사람들이 폭로하지도 못하게 한다.

중공이 천안문에서 상방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심지어 ‘6.4’ 대학살에 대해서도 구실이 있다. 당신이 미국 백악관 앞에 가서 항의해봐라, 마찬가지로 잡아넣지 않는가? 중공은 여기서 매우 근본적인 구별을 혼동하고 있다. 중공은 집회와 시위 신청을 받는다고 하지만 전혀 비준하지 않으며 심지어 신청한 사람에 대해 공격하고 보복한다. 천안문에 가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민중들이 백악관 앞에 가서도 항의 시위를 할 수 있으며 일부 항의 인사들은 언론보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경찰에게 체포되기도 한다. 경찰도 늘 항의 시위자들에게 체포될 것인지 묻는다. 중공이 선전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공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를 못하게 하며 중공처럼 체포한다고 사람들을 기만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설령 항의자들이 과격한 행위가 있다 해도 법률에 따라 처리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도 민중에게 총을 쏜다고 말한다. 맞다. 그것은 바로 1932년 미국 제1차 세계대전에서 퇴역 군인들의 보조금 사건이다. 실직한 만여 명의 퇴역 군인들이 미국 의회 회관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당시 후버 대통령은 연방군대를 워싱턴에 진주하게 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2명의 퇴역 군인이 사망하고 여러 사람이 부상당했다.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출판된 백과사전, 다큐멘터리, 역사서, 회고록 등의 기재에 따르면 사실 그들은 미국 군대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워싱턴 경찰에 의한 오발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의 시비를 제쳐놓고 우리는 우선 이 사건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반응을 보도록 하자. 미국 정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들의 혹독한 질책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1면 기사로 장편 보도를 했으며 대통령도 미국 인민들에 향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 해에 있었던 미국 대선에서 미국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후버 대통령을 사임시켰다. 군대를 움직인 교훈은 정말로 컸으며 이후 미국 대통령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1971년 백악관 부근에서 대규모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있었고 닉슨 대통령은 보좌관들에게, “그들이 거기에 있게 그냥 두시오.”라고 말했다. 이것과 대비해 보자면 중공은 지금까지도 6.4 당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없으며 중국 입법기구에서도 민중들을 탄압한 교훈을 받아들였는가에 대해 제출한 것이 없고 또 앞으로 이와 유사한 착오를 범하지 않게 할 아무런 조치도 없다.

서양의 언론 자유를 조소하는 또 한 가지 예가 유행하고 있는데 바로 당신이 문장을 한 편 써서 서양 언론매체에 보내면 이것을 발표하는 가이다. 만약 발표하지 않으면 언론 자유가 거짓이라고 한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 한 가지 예로 거의 모두 서양의 언론 자유는 허위적이라고 하면서 또 중공의 언론통제에 대해 묵인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중공이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조작한 억지이다. 신문에서 어찌 모든 원고를 다 발표할 수 있겠는가? 가능하다고 해도 몇 사람만 가능한데 왜냐하면 지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 자유란 모든 매체가 다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각 매체는 모두 자신들의 이념이 있으며 배후에는 당연히 자신들의 정치경제 세력이 있다. 언론 매체는 개체로서 말하자면 직업윤리를 제외하고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것이 있으며 원고나 보도에 대한 시각도 모두 스스로 선택하는데 이것은 사실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언론 자유는 두 가지 방면에서 체현되는데 하나는 매체 자신이 스스로 발표하려는 내용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나친 경우 법률적인 수단으로 해결). 다른 하나는 독자 입장에서 어떤 의견을 가진 매체든지 그 내용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정반(正反) 양방면의 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공산당에 반대하는 신문이 있으면, 찬성하는 신문도 있고, 심지어 중공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신문도 있으며 또 스스로 자유롭게 매체를 꾸려 의견을 발표할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자유의 진실한 체현이다.

언론 자유의 가장 관건적인 척도는 권력자가 정보를 통제하는 권력이 얼마나 큰가에 달렸다. 미국에서 정부는 늘 언론 매체들의 비평을 받지만 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해 저지하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만약 공산당이 민중들이 매체에서 비평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매체를 봉폐시킨다. 모든 매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언론을 발표한다는 것은 아예 실현될 수 없다. 서양의 신문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장으로 언론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중공이 매체를 통제하기 위한 구실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 중공은 서양 언론자유의 오묘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침투하고, 통제하여 친공(親共) 매체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해외의 민주 선거 과정에 나타나는 폐단들도 중공이 민주 자유를 비웃고 사람들더러 중공의 독재를 옹호하라고 권고하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중공의 이런 설을 믿으며 또 중공이 일당 독재를 수호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민주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러나 중공의 서로 이전투구하면서 동란을 초래하는 것에 비해 민주적인 투명함과 언론 매체의 감독기능, 군대의 독립성은 참고할 만하다. 민주 국가에서 선거의 폐단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국가가 동란과 전쟁 상태로 빠져 들어가진 않으며 이것은 민주가 사회에 제압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중공에서 말하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러시아가 평화적으로 체제를 변화시킨 후 중공은 줄곧 러시아가 좋아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때문에 늘 러시아가 어떻게 나쁘다고 했다. 러시아도 당연히 자신의 ‘국정(國情)’이 있으며 문제도 많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민주화된 후에 중공이 반대 선전을 하는 것은 확실히 민중들을 오도하고 있다. 일부 중국인들은 해외에서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세계 3위(2006년 7월보도)를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아니, 러시아는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한다.

인도의 민주 역시 중공이 비웃는 대상이다. 그러나 인도는 1991년 라올 정부가 정식으로 경제 개혁에 착수한 후 매년 7% 정도 성장하고 있으며 이것은 거의 중국에 근접한 수치이다. 인도는 금융업과 자본시장이 비교적 발달했고 경영 효율이 높으며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0% 이하이다. 인도의 경제구조는 일부 선진국과 비슷하며 또한 인도에는 대량의 우수하고 저렴한 기술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인도는 ‘세계의 사무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인도는 이미 세계 주요 연구개발 센터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일부러 러시아나 인도에 대해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들도 모두 각자 심각한 문제와 발전변수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공이 기득이익을 지키고 전면적인 개혁을 하지 않기 위해 단편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오도되지 말아야 하며, 아무런 분석도 없이 맹목적으로 중공의 논조에 따르거나 중공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사고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공산당은 러시아에서 여전히 합법 조직이며 만약 러시아 인민들이 공산당을 좋아한다면 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다시 집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은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중국에서 사회적 재산을 약탈하고 분할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자본의 원시 축적’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서양에서도 현대화 과정 중에 이런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이것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시 축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서양에서는 적어도 원시 축적된 자본이 즉시 재생산에 투입되었으며 또한 유산계급(有産階級)이 정치적으로 명확한 추구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며, 매체를 꾸리고 교육과 자선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그러나 중공의 통치하에서 원시축적은 바로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며 끊임없이 돈을 긁어모아 외국으로 도망가 향수하는 것으로 정부나 공산당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 서양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어찌 ‘원시축적’이후 양성순환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는가?

듣기에는 아주 그럴싸한 또 한 가지 비유가 있는데 바로 “만약 당신이 국가와 정부를 전복하려 하면 어느 국가가 당신을 탄압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교묘하게’개념을 바꿔치는 문제로서 그 미혹성이 매우 크다. 사실 이런 말 자체가 이미 중공이 반복적인 선전으로 사람들에게 주입한 개념 혼동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선동과 국가전복죄’는 중공이 과거의 ‘반혁명 죄’를 대신한 죄명으로 이 죄명은 일반적인 인권과 언론자유에 관련된 활동들을 포함하며 이 자체가 인권에 대한 침범이다. ‘선동과 국가전복’, ‘ 국가기밀누설’ 등의 수많은 행동들이 서양 민주국가에서는 헌법의 보장을 받는 기본 권리인데 민주 정부에서 어찌 탄압할 수 있겠는가? 신문을 꾸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중국에서는 국가를 전복하는 ‘큰 사건’이지만 서양에서는 매우 정상이며 국가를 전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하거나 테러를 일으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소수 일부 극단적인 종교조직이 세계적으로 테러를 일으키고 마구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들은 또 중공이 종교 자유를 부정하고 무신론을 주장하는 반면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류적인 그런 많은 바른 종교와 신앙들이 사회도덕과 인성에 대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중공은 극력 회피한다. 이 때문에 이치를 똑똑히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신앙에 대한 중공의 일률적인 비판에 따라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신앙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배척하고 있다.

이렇게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아직도 매우 많다. 더욱 풍자적 의미가 있는 것은 중공은 자신들의 이익에 불리한 사례들은 비교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중국의 특색과 상황을 강조한다. ‘국정’은 중공이 세계의 조류에 거슬러 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보검(寶劍)이 되었다. 사실 이러저러한 것을 모두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중공 자신의 기득이익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4)나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나 잘해

“나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나 잘해”라는 말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반박할 때 늘 쓰는 말이다.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늘 인기 스타나 축구 선수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상대방보다 연기를 더 잘하거나 축구를 더 잘할 것을 요구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중공은 이 한마다 말을 가지고 매우 교활하게 자신의 악행을 변호한다. 미국이 중공의 인권을 말할 때면 중공은 “당신네 미국도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미국을 질책하는 인권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중공이 제출한 인권보고서의 내용은 모두 미국 언론매체에 공개된 것으로 미국 정부에서도 중시하는 문제들이다. 사실 중공이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미국 정부를 도와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사실 중공은 미국의 인권 상황이 악화될수록 그것을 역이용할 뿐이다) 화풀이 하려는 것이며 중국 인민의 인권에 대한 자신의 죄행을 덮어 감추려는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 회사의 비행기를 구매하면서 중공이 하는 말 : “우리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나라에게만 줄 거야!” | 에포크타임스

중공의 교활함과 나쁜 정도는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기에 그들이 궤변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문제는 적지 않은 백성들이 중공의 궤변에 속고 있으며 심지어 중공의 이런 이유들이 “나라를 영광스럽게 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흐리멍덩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먼저 미국의 인권이 어떤가를 제쳐놓더라도, 미국이 중공의 인권을 비판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중국 인민을 도와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공의 인권박해 하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중국 인민 자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중공에게 인권을 개선하라고 호소하는 것은 중국 인민 자신이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닌가?

유감스러운 것은 당 문화의 영향 하에 중국인들은 중공을 비판하면 중국을 비판하고 전체 중국 인민을 비판한다고 여기고, 중공에게 주입당한 협애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자존심이 건드려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맹목적으로 중공의 체면을 수호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또 중공을 두둔하면서, 다른 사람이 중공을 비판하는 데는 배후에 ‘남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이는 인권 문제로 중국을 협박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사 이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약 중공의 핑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공에게 자신의 인민을 박해하는 것을 중지하라는 요구를 견지하여, 중공이 자신의 행위를 개선한다면 그 후에 다른 사람이 협박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중국 인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고 또 ‘남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도 공격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때문에 정상적인 사유라면 상대가 어떻게 하던지 막론하고, 오직 지적한 것이 사실이기만 하면 반드시 받아들이고 고쳐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을 바로 잡으려면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正人要先正己)”라고 말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오해이다. 이 말의 의미는 마땅히 비평하는 사람이 자신을 고무 격려하는 말로서 비평자의 경지가 높아야 더욱 설득력이 있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한다는 표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비평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저촉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노력한다(有則改之,無則加勉)”는 말이 있지 않는가?

외국 국가 원수들이 중공과 인권 문제를 담론할 때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인정받는 전형적인 대답이 나온다. 바로 “당신들은 중국과 인권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100여 년 전에 당신들이 우리 중국 인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범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중공은 천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논리가 있다. “서양에서도 강대국들이 공해산업이나 심지어 폐기물을 다른 나라로 실어가지 않았는가?”라고 한다. 이 뜻은 서양 나라들이 과거에 중국 인민의 인권을 침범했으니 공산당이라고 중국 인민의 인권을 침범하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또 서양 나라들에서 중국을 오염시켰으니 공산당이라고 해서 왜 중국을 오염시키지 못한단 말인가? 라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와 접촉하려고 하며 세계적인 조류를 따르자면 국제 사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선진 기술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선진적인 제도도 연구해야 한다. 인권, 민주, 자유 등의 방면에서 국제사회의 압력을 해결하기 위해 중공은 “나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나 잘해”라면서 무리한 억지를 쓰면서 민중들을 호도하고 있는데 피해를 받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장기적인 이익이다.

5)공산당에 대해서도 변증법적으로 보아야

공산당은 자신이 너무나 많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에게 자신도 하나를 둘로 나누어 변증법적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백성들도 덩달아 “공산당이 좋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잖아?”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얼핏 보기에는 도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경우와 목적을 살펴보아야한다.

한 살인범이 살인을 했다면 명을 갚아야 하며 법률에 의해서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만약 법정에서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보면서 어릴 때 노인을 도와 차를 밀어주었다든가, 나무를 심었다는 등의 이유로 살인죄를 모면할 수는 없다.

국가와 정당을 비교해서 말한다면 2차 대전 전의 독일을 예로 들 수 있다. 1933년 히틀러는 독일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그의 경제 정책은 독일 경제로 하여금 연속 몇 년 간 100%의 성장률을 가져왔고 실업률은 30%에서 0%로 내려갔다. 당시 독일의 국제적 지위는 대단히 높았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패전국이었기에, 영국 프랑스 등 열강들은 독일을 매우 무시했으며 전쟁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러나 히틀러가 원수가 된 후 독일은 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주최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독일을 다시 보게 했다.

당시 독일이 만든 고속도로는 모두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많은 지하철도 히틀러 당시에 완공된 것이다. 또한 히틀러는 당시 독일의 집집마다 자가용을 보유할 수 있게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 독일에서 ‘폴크스바겐’이란 차가 나오게 된 유래이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든지, 군사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든지 상관없으며, 어떤 사람들이 그를 경제학자 혹은 군사전문가라고 부르는 이런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2차 대전에서 전 세계적으로 9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4천 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했으며 또한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는데 약 600만 명의 유태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생명을 잃었다. 이런 것들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에 족하다. 때문에 당신이 오늘 독일에 간다면 누구도 히틀러에 대해 변증법적으로 보지 않는다. 또 현재 독일에서는 나치 표기나 혹은 히틀러에 대한 숭배조차 불법으로 되어있다.

일본을 또 예로 들어보자.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살인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산업을 일으켰다. 특히 동북 삼성 지역에서는 중공이 정권을 탈취할 때까지 줄곧 공장을 설립하고 광산을 개척했다. 당시 동북삼성이 공업기지가 된 것은 대부분 일본 사람들이 남겨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발달한 철도망도 포함하는데 모두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심지어 난징(南京) 대학살 후에도 일본은 중국에서 매우 많은 문화 활동을 펼쳤다. 예를 들어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말하면 난징에서 진회하(秦淮河) 양안이 온통 번화하고 부유한 곳이었다. 상하이 역시 날마다 잔치가 열렸고 밤마다 공연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중국 경제 발전에 공헌을 했으니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역시 하나를 둘러 나누어 변증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사람들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했고 731부대에서 잔인한 인체 실험을 했으며, 삼광정책(三光政策 역주: 전쟁 중에는 민간인 및 비무장인에 대해서도 죽이고, 태우고, 강탈할 수 있다는 일종의 폭력정책을 말한다.)으로 2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을 살상했으며, 이 자체만으로도 침략전쟁을 단죄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시 공산당을 말하자면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8천만 명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으며 그 중 4천만 명은 학살되었고, 4천만 명은 굶어죽었다. 이 숫자는 나치 독일이 살해한 숫자의 10여 배, 일본의 4배에 이른다. 다른 한편 공산당은 또 100만 평방킬로미터 이상의 영토를 팔아먹었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공산당을 충분히 단죄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공산당 자신이 일을 할 때 하나가 둘로 나뉘는 관점에서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반혁명을 탄압할 때는 왜 국민당 관리와 군인들에게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관점으로 대하지 않았는가? 류사오치, 린뱌오, 덩샤오핑을 박해할 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파룬궁을 박해할 때도 한 마디 좋은 말도 없었으며 전부 파룬궁을 비방하는 말뿐이다. 때문에 중공의 표현을 통해 볼 때 소위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관점을 취한다는 것은 사실 자신들의 통치를 수호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중공에 대해 일정 정도 묵인하게 하는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眞善忍을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파룬궁. | 에포크타임스

만약 정말로 ‘하나를 둘로 나누어 본다면’ 중공은 반드시 지난 과거를 마주하고 잘못을 마주해야 한다. 중공이 말하는 “하나가 둘로 나뉜다”는 것은 사실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이란 좋고 나쁨이 있지 않느냐 는 식으로 슬쩍 말을 비쳐 사람들에게 매우 ‘객관적인’느낌을 주고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나쁜 것’은 말하지 못하게 하고 ‘좋은 것’만 말하게 한다. 때문에 중공은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게 하며 자신들이 해온 나쁜 일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설령 말하더라도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하게 하는데 이러한 결과는 도리어 중공에 분칠해주는 작용을 일으킨다.

독일의 전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바르샤바에서 유태인들에 대한 나치 독일의 잘못을 깊이 반성했지만 중공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자국민에게 참회한 적이 없다. 만약 독일의 격언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다면 중공은 도리어 “절대 기억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망각한 사회가 어찌 자신을 구할 수 있겠는가?

6)생존권(溫飽權)이 인권보다 높아

세계적인 민주화 추세에 직면하여 인권 방면에서 자행한 중공의 악행은 큰 짐이 되고 있다. 이에 중공의 어용 문인들은 인권에 관한 한 가지 억지를 내놓았는데 바로 ‘생존권이 인권보다 높다’는 것이다. “당신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농민들을 찾아가 물어보라, 그들이 밥을 원하는가 아니면 민주 자유를 원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국제사회에서 중공의 인권을 비판할 때 중공의 이런 억지 주장으로 반박한다. 중공의 정치 교과서와 매년 정치 시험 중에는 이 문제에 대한 표준 답안이 있다. 중공은 각기 다른 외교 장소에서 늘 당당하게 매우 엄숙하고 떳떳하고 당당하며 정의로운 척 한다. 사람들에게 이런 구호를 반복하게 하는 것은 중공의 선전, 주입과 갈라놓을 수 없다.

▲ 좌 : 우주선 선우(神五)를 발사하면서 중국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라고 보도. 우 : 외국에서 중국의 인권을 지적하면 경제가 발달하지 못해서 생존권이 인권보다 중요하다고 발표. | 에포크타임스

사실 이렇게 논리를 뒤섞는 궤변은 민주 자유를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만들어 놓고 또 이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먹는 음식’과 비교하는 것이다. 중공은 이것을 이용해 농민들의 교육 수준이 낮아서 단지 먹는 것만 알뿐 추상적인 개념은 모른다고 하면서 민주 자유의 중요성을 부정하는데, 결론은 바로 “생존권이 인권보다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 자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농민들은 절대 중공의 문자 유희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과중한 부담은 농민들로 하여금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중공 자신도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국가적인 대사라고 인정한다. 굶주림에 시달린 농민들에게 ‘민주 인권’의 추상적인 글자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농민들이 정말 고생이 심한데 사람을 내세워 당신들의 이런 상황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렇게 하길 원하는가?” “관리들이 농민을 압박하고 여러 가지 세금을 가혹하게 걷어 들이는데 저 썩은 향 지부 당서기를 없애고 진정으로 우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거하려 하는데 당신들은 원하는가?” 이런 제안에 대해 농민들이 거절하겠는가?

사람이 배가 고파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우선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해야만 남들은 당신의 배가 고픈 지 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권’이며 배불리 먹는 ‘생존권’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중공이 순서를 뒤집어놓은 궤변에 기쁘게 받아들이며 방임하는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권리가 없다면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왜 그들더러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혹은 배불리 먹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사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생존권’은 중공에 대해 말하자면 중요하지 않으며 중공이 관심을 갖는 것은 외부에 언론 자유를 저촉하는 구실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예들은 매우 많다. 당문화가 사람들의 사상을 개조한 후에는 확실히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당의 사상으로 문제를 사고하고 당이 가르쳐준 언어로 말을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당과 갈라놓고, 당이 어머니라는 정서를 극복하며, ‘당과 떠날 수 없다’는 한계선을 돌파하여, 무신론, 유물론과 투쟁철학, 증오철학을 자신의 사상적 기초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이비 관점들에 대해 도대체 누구에게 유리한가 보아야 하며 당이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저지해야 한다. 중공은 자신을 위해 변호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백성들은 그것을 따라 소란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중공을 비판할 때 중국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중공의 체면을 깍는 것은 중국 인민들의 체면을 깍는 것이 아니다. 독재에 도전하여 나설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용사(勇士)이며 세인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존경은 바로 중국 인민에 대한 존중이다.

2.神을 믿지 않으니 일을 할 때 후과를 따지지 않고 어떤 나쁜 일도 다 저질러

무신론은 당문화의 핵심중 하나다. 중공이 사람들의 사상을 개조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전통문화를 단절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외래문화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반신(半神)문화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무신론’이 중국 대륙을 주재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두려워하며(敬天畏神),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은 봉건 미신과 우매하고 무지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인류의 역사로 말하자면 신에 대한 신앙과 종교는 인류의 도덕을 유지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해왔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면서 도덕의 단속이 없어졌고 도덕의 단속이 사라지자 법률적인 단속 역시 유명무실해졌다. 이렇게 되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게 되었다. 내세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나쁜 일을 하면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기에 무슨 일을 하든 후과(後果)를 고려하지 않으며 어떠한 나쁜 일이든 서슴없이 저지른다.

1)생명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인

1949년 이후 ‘진반(鎭反)’, ‘토지개혁’, ‘3반’, ‘5반’, ‘반 우파’, 문화혁명 등 중공의 여러 차례 정치운동에서 수천만 명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역대 운동에서 작용을 일으킨 것은 중공뿐만이 아니었다. 중공이 일으킨 운동에서 역대로 민중과 민중이 싸우도록 선동했다. 많은 피해자들에게 중공은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웠고 그런 다음 사람들, 특히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까지 동원하여 그들을 산채로 때려 죽였다. 때리는 사람이 중공의 기만에 속아 넘어가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당문화의 세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천리(天理)를 믿고 인륜, 인성을 믿는 사회에서는 이렇게 큰 면적으로 천리를 위배하거나 인성을 멸하는 사건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산채로 밟아 죽이다. | 에포크타임스

‘대약진’후에 나타난 대 기근으로 굶어죽은 사람은 약 4천만에 달하며,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근이다. 이 대기근에 대해 중공은 무슨 ‘3년간의 자연 재해’라고 하지만 사실상 ‘대약진’ 3년 동안 홍수, 태풍, 지진, 가뭄 등 단 한 차례도 큰 자연 재해가 없었으며 완전히 철저한 ‘인재(人災)’였다. 사실 대기근 때 만약 식량 창고를 개방했었더라면 기근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굶어서 숨이 거의 넘어가는 촌민들에 대해 중공 간부들은 도로를 봉쇄하고 굶어죽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에포크타임스

문화대혁명 중에 ‘때리고, 부수고 ,빼앗는’중에서 학생들이 감히 교사를 때려죽였고 아들이 아빠를 쳐서 죽였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을 때려죽인 후 장기를 꺼내 먹기조차 했다.

중국 고대에는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人命關天)”,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7층 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당국에 의해 숙청대상이 된 사람은 자체만으로도 이미 몹시 가련하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죽는 사람을 보고도 구원해주기는커녕 도리어 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거나 심지어 살인을 즐긴다. 오직 중공이 무엇을 하라고 하기만 하면 그것을 하면서 이것은 당성(黨性)이 원하는 것이고 당의 정책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후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중공이 사상을 개조한 후과가 얼마나 두려운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인명을 초개처럼 여기는 이런 당문화 사유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과거의 역사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공의 부패와 폭정은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는 수많은 단체들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고위 관료들과 부자들은 특권을 이용해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지만 실업당한 노동자들은 심지어 병을 치료할 돈조차 없어 분신자살하기도 한다. 자녀들의 무거운 학비로 인해 엄마가 목을 매달기도 한다. 하지만 하층 민중들의 처참한 생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으며 개의치 않는다. 가련한 상방(上訪) 민중들에 대해 소위 법을 집행한다는 자들은 사람을 마구 구타하며 살고 죽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광산사고에 대해 건달과학자 허쭤슈는 “누가 당신더러 중국에서 태어나라고 했는가?”라고 말한다.

중공군 장성 주청후(朱成虎)는 시안(西安)의 동쪽 지역을 포함한 중국 땅의 절반을 잃더라도 한 차례의 핵전쟁을 벌이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마오쩌둥이 “중국은 3억이 죽어도 나머지 3억이 있다”고 한 말과 같은 말이다. ‘임시 거주증(暫住證)’이 없다는 이유로 쑨즈강(孫志剛)이란 대학생이 수용소에서 맞아죽었다. 파룬궁 박해 과정에서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참혹하게 시달리다 사망했으며 2006년에는 중공이 2001년부터 파룬궁 수련자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얻고 있다는 만행이 국제 사회에 폭로되기도 했다. 인성을 말살하는 이런 일들은 듣기만 해도 사람을 몸서리치게 한다.

2006년 3월 중공이 중국내 노교소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감금한 후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 에포크타임스

생명을 무시하는 것은 정치운동 중에서나 또는 백성에 대한 권력자들의 태도에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싸울 듯한 태세로 마음대로 참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젊은이들은 걸핏하면 칼을 휘두르고 폭력을 숭상한다. 수단이 아주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학교 내에서도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 관리나 부자들이 사람을 고용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심지어 자기 아내마저 서슴없이 살해하기도 한다.

사람의 도덕이 이 지경까지 타락될 때면 이 사회는 극히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2)천지와 투쟁하며 자연을 파괴

지난 몇 십 년 동안 당문화는 중국 인민들을 ‘무법천지’, ‘천지와 투쟁’하는 종족으로 만들어버렸다. 애초에 강철을 제련하고‘, ’호수를 막아 밭을 만들고‘, ’미친 듯이 새를 잡고‘, ’산림을 마구 파괴하던 데서부터 오늘날 환경을 대가로 고속경제성장을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눈앞의 이익만 추구해왔으며 후손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무시한 결과 심각한 자연 파괴를 초래하였다. 중국 국가 환경보호국에서 밝힌 데 따르면 중국에서 현재 1만 달러의 상품을 생산하는데 소모하는 원자재는 일본의 7배, 미국의 6배이며 인도에 비해서도 2배나 높다고 한다. 만약 환경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중국의 경제기적은 곧 과거의 일로 될 것이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이 가장 심각한 10개 도시 중 중국이 6개를 차지한다.

에포크타임스

전국의 토양 유실 면적은 국토의 38%를 차지하며 18개 성(구)의 471개 현, 약 4억에 가까운 인구의 경지가 사막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장차 약 1억 5천만 명의 인구가 생태난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6년 8월 26일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보고에서 “물은 모두 오염되었고”, “비가 오기만 하면 산성비”이고 “오염이 심각해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 진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구절로 중국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표현했다. CCTV 2채널에서 일찍이 중국 GDP 성장의 18%가 생태환경과 자원에서 얻은 것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위성 사진을 보면 많은 국가들은 녹색으로 덮여 있지만 중국은 누런 황토만 보인다고 한다. 많은 네티즌들은 중국의 강산이 이렇듯 파괴되었음에도 중공이 여전히 ‘굴기(崛起)’를 크게 외치는 것을 보고는 상심한 나머지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자연자원을 파괴하면서까지 고속경제성장에만 몰두해온 중공. | 에포크타임스

“큰 강에는 물결이 넘실대고 바람은 벼꽃 향기를 양쪽 강변에 몰아오네(一條大河波浪寬,風吹稻花香兩岸)”라는 이 노래는 중공이 일찍이 애국주의를 선양하던 주제곡이다. 고증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 강은 바로 중국 전체 인구의 6분의 1을 거느린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강인 회하(淮河)이다. “천 리를 가도 만 리를 가도 회하 양안만 못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던 곳이다. 그러나 겨우 몇 십 년 만에 회하의 오염은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질 정도이며 이 한 구절의 아름다운 민요를 과거의 역사로 만들었다. 공장에서는 오수들을 마구 배출하고, 농촌의 농업오염, 도시의 생활하수까지 가세해 회하 유역 60%의 수질을 5등급으로 떨어뜨렸다. 이 물이 땅을 오염시켜 약 1억 3천만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중공은 회하의 수질을 다스리겠다고 외쳐대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2004년 7월 20일부터 27일까지 회하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오염이 발생했다. 상류에서 거대한 흙 물결이 터져 회하를 휩쓸었으며 133킬로미터가 오염되었고 5억 톤에 달하는 검은 색 오수가 훙쩌호(洪鸅湖)를 덮쳐 그야말로 천리 사방에 죽은 어류, 새우가 널렸다. 이렇게 되어 “10년 치수가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600억 위안이 물결에 따라 쓸려가 버렸다.”

당문화는 중국인들에게 ‘후과를 돌보지 않는’ 심태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모든 것을 대대적으로 떠벌려 크게 운동을 하고 큰 항목을 하면서 사람을 수고롭게 하고 물자를 낭비하며 자연 법칙을 무시하는 것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큰 공정은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심태로 일을 하는데 후과를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려는 변태적인 심리, 대충대충 일 하기, 사고가 나면 ‘수업료를 냈다’는 식으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아이들 장난으로 여긴다.

‘싼샤공정(三峽工程)’, ‘남수북조(南水北調)’처럼 크고 중대한 항목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은 의연히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한다. ‘6.4’이후 중국의 민심이 나빠지자 싼샤공정은 사람들을 흥분시킬만한 공정이 되었다. 싼샤댐을 건설해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긍정적인 말만 들었으며 설령 부정적인 소식이 들릴지라도 이미 ‘대책’이 있는 것으로 안다.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이론에 대해 백성들은 알 길이 없으며 일종 금지된 구역이었다.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물의 흐름에는 경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댐 저수고의 양 끝에 낙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몰지역은 반드시 사선으로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싼샤공정 ‘이주대책팀’은 이주비용을 줄이라는 당국의 요구에 따라 침몰선을 수평이 되게 했다. 말하자면 저수지의 높이가 175미터라면 다른 한끝인 충칭(重慶)의 침몰선도 역시 175미터라는 것이다. 그러나 싼샤 공정 콘크리트 팀에서 발표한 만분의 0.7 오차의 수력 경사도 측정에 따르면 싼샤 댐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충칭의 수위 고도는 지금의 175미터가 아니라 해발 217미터를 초과하게 되며 그때가 되면 충칭은 “뒷일을 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충칭을 보존하려면 수위를 175미터까지 올릴 수 없으며 이렇게 되면 애초 설정한 홍수 방지 효과도 크게 감소한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엘리트 관리들과 과학자들이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것을 모두 알면서도 이렇게 심각한 후과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있다. 또 싼샤공정의 목표와 조치 사이에서도 서로 많은 모순이 있다. 홍수방지와 발전간의 모순, 홍수 방지와 항운(航運)의 모순, 홍수 방지와 침전물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의 모순 등인데 수위를 낮추면 발전능력과 항운능력이 내려간다. 2000년 5월 17일 장광더우(張光斗) 교수는 싼샤공정의 실제 홍수방지 용량이 설계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착오를 발견한 후 싼샤건설위원회 사무실 주임에게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즉 홍수 수위를 10미터 아래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위가 낮아지면 항운에 영향을 주게 되며 발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장광더우는 화력 발전소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또 “이 사건을 절대 사회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다. (《싼샤탐구》237기)

또 모래가 쌓이는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도 댐건설에서 관건적인 요소이며 200킬로미터 길이의 싼샤는 돌과 모래가 쌓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이다. 싼샤댐은 “맑은 물은 가두고 흐린 물은 내보내는” 운행 방식을 시도했다. 해외의 어떤 학자들은 “흐린 물을 내보내”는 것이 단기간 내에는 효과가 있다고 했으며 칭화대학의 유명한 수리전문가 황완리(黄萬里) 교수는 돌 한개도 빠져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황교수는 1957년에 황화(黃河)의 싼먼샤(三門峽)댐 건설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당시 마오쩌둥에 의해 우파로 몰린 적이 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후 싼먼샤(三門峽)댐의 실패는 그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싼샤댐 공정에 관해 황 교수는 3차례나 편지를 썼으며 “싼샤공정은 영원히 건설할 수 없다”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중앙지도자에게 단 30분만이라도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제출하려 했으나 그에게는 이 30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남수북조(南水北調)란 ’싼샤공정‘에 뒤이은 또 하나의 세계적인 공정으로 주요 목표는 장강(長江)의 물을 동부, 중부, 서부 방면으로 나눠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는 화북(華北)과 서북(西北) 지역으로 보내는 공정이다. 동부와 중부는 이미 착공에 들어갔고, 서부 공정은 2010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애초 ’싼샤공정‘은 그나마 상징적으로 인민대표대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거쳤으나 현재는 그러한 형식조차 사람들에게 귀찮아졌다. 남수북조 공정의 설계자들은 중앙에서 동, 중부선 착공 선포했고 이것은 서부공정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찍이 2001년 7월 수리부(水利部) 전문가위원회에서는 “서부선 공정개요”를 심사 통과시켰으며 2005년 3월에야 비로소 장기간 조수지역(調水區)에서 일하던 자연 과학자, 공정 기술 전문가, 경제학자, 인문학자들이 처음으로 “여산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이는 제1선에 있던 전문가들로 하여금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서부 공정은 장강을 황하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황하는 장강보다 해발 200미터나 높으며 싼샤공정에 비해 얼마나 더 어려운지 모르며 위험도 얼마나 더 큰지 모른다. 어떤 전문가들은 “서부 공정은 정말로 사람을 우려하게 만든다. 황하를 구하려다 장강을 훼멸하는 것이 아닌가? 또는 황하도 구하지 못하면서 장강까지 훼멸하지 않겠는가?”라고 탄식하면서 중공에게 “개조와 고별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환상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과연 정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중공에게 얼마나 먹히겠는가? 서부 공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설계 책임자, 엔지니어 책임자들은 외부의 질의에 대해 “항목이 추진됨에 따라 모든 것이 자연히 명백해 질것이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중공의 “천지와 투쟁”하는데 세뇌당한 사람들은 중화 민족의 어머니인 강에도 함부로 손을 대고 있으며 그 태도마저 “돌을 만져보며 강을 건너는 식”이다.

노자는“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을 말했으며 종래로 사람들에게 땅과 싸우고 자연을 파괴하라고 하지 않았다. 전통 관념에서 보자면 사람과 자연은 서로 대립되어 대항하는 것이 아니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주장하는 것은 자연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현재의 지속 가능한 발전관은 무슨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며 중국에는 일찍부터 자연 자원을 보호하고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이론이 있었다. 그것은 중국에 발달한 전통 농업이 존재할 수 있게 했으며 찬란한 전통문화를 뒷받침해왔다. 그런데 왜 현재는 생태와 인문 환경이 엄중하게 파괴되는 상황이 나타났는가? 바로 아무런 후과도 고려하지 않고 일을 하는 방식과 자연 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청산(靑山)이 줄어들고 녹수(綠水)가 끊어지고 있다. 특히 금전이익의 유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잃게 했으며 더욱 발광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떤 짓이든 하게 만들었다. 자연의 보복이 시작될 때 과연 누가 우리 민족을 구원해줄 것인가?

중국 전통문화를 대변하는 노자와 공자 | 에포크타임스

3) 사회 풍조가 날로 나빠져 도덕을 무시

공무원 및 다른 각종 업종에서 직업윤리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자 해도 의사에게 촌지를 건네야 하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해도, 소송을 하려 해도,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등 하여튼 모든 일에 돈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고 모든 직업과 도덕을 오염시키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의 운행방식이 파괴되고 오래된 업종의 직업 도덕이 나쁘게 변했으며, 새로 생긴 업종의 직업 도덕은 아예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 태어나자마자 오염 속에 포위되어있다.

짝퉁을 만드는 정도를 보더라도 가짜담배, 가짜 술, 가짜 소시지, 독이 든 쌀, 독 우유, 독이 든 분유 등 무엇이든 가짜가 있다. 2003년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에서 아기들을 해친 ‘독 분유’ 사건이 발생했다. 장기적으로 이런 분유를 먹은 아기들은 머리가 커지고 몸이 작아지며 신체가 허약해지고 반응이 둔하게 된다. 피부가 큰 면적으로 썩어가고 내장이 종양처럼 부풀어 오른다. 푸양 시에서만 영양불량 증후군을 보인인 아기가 171명이나 되었고 이주 13명이 사망했다. ‘아기 머리가 커지는 병(大頭娃娃病)’에 걸린 수많은 농민들의 가정에서는 아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저금을 써버렸으며 심지어 가산을 다 탕진한 집도 있었다.

적지 않은 가정에서는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부득불 치료를 포기했으며 아기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했다. 2006년 베이징 시 식량국에서는 2300여 톤에 달하는 오래된 독미(毒米)를 시장에 내보냈는데 그 속에는 현재 가장 강한 화학적 발암물질인 곰팡이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생사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국 이런 독미가 전국에 퍼졌다. 후난, 후베이, 상하이, 베이징, 광둥, 랴오닝, 쓰촨에 모두 수십 톤에 달하는 독미가 나타났다. 더욱 한심한 자들은 독미에 좋은 쌀을 섞어 분간하지 못하게 했다.

중국의 심각한 환경오염과 짝퉁 피해. | 에포크타임스

과거에는 도둑에게도 도가 있다고 했으며 거짓으로 속이더라도 그저 돈만 사기 쳤을 뿐이며 아무리 덕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독약을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없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전통 도덕을 존중하는 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까짓 도덕이나 양심 따위가 몇 푼이나 되는가?” 라고 한다. 중공의 무신론, 유물론은 천리를 말하지 않고 도덕을 논하지 않으며 교육하는 것이란 바로 모두 돈과 이익이며 그 어떤 나쁜 일이든 서슴없이 한다.

2001년 4월 16일,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상하이 국가회계원을 시찰할 때 학교에 “허위 장부를 만들지 않는다”는 교훈을 썼다. 2003년 3월 24일《삼상도시보(三湘都市報)》는 현지 일부 교육국에서 교육의 ‘3가지 어지러움’과 ‘8가지 금지’를 다스리는 것에 관해 “여학생에 대한 간음과 외설을 엄금하자”라는 규정이 들어있다고 보도했다. 과연 이러한 교훈과 규칙들이 과연 사람들을 안심시킬지 아니면 더욱 근심하게 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회에 이미 게임의 규칙이 확립되고 사회민주제도, 법률체계, 언론의 감독과 자유, 종교 신앙이 이미 비교적 완벽하게 설립되어 있고, 민중들의 도덕이 일정한 정도로 유지되고 국민의 심태가 비교적 안정적일 때면 아무리 어지러운 일이라도 법칙 안에 있기에 원칙적으로 도덕과 법률이 단속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규칙이 확립되지 못했으며 먼저 나쁜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지나치면 지나쳤지 모자라진 않는다. 도덕적, 제도적, 종교적으로 최저의 단속마저 없기에 후과는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4)性 범람이 사회에 조성한 위기

오늘날의 중국은 “가난은 비웃어도 매춘은 비웃지 않는” 시대이다. 중공은 정치개혁을 금지구역으로 만든 외에 ‘성생활’에 대해서는 가장 철저하게 개방했다. 혼외정사, 축첩, 하룻밤의 정, 화이트칼라 계층의 아내 바꾸기, 혼전 동거, 인터넷혼인, 번개혼인, 성인용품 가게, 매춘, 퇴폐안마, 음란 공연, 누드 춤, 텔레비전과 영화의 에로틱한 표현, 섹시한 여성 등 사회 모든 구석까지 미쳤다. 정치를 말하기만 하면 안색이 변하는 중국사회에서 사람들은 지금 전대미문의 ‘성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공안부의 조사에 따르면 1984년 매매춘 사건은 6천 건이었으나 1999년에는 45만 건으로, 적발된 숫자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를 통해 드러난 숫자는 실제의 1%에서 10%에 불과하다. 정확한 수치는 누구도 모르지만 절대 조사된 숫자가 실제의 10%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전 국민을 휩쓸고 있는 이 한 차례의 ‘음란물 열조(黃潮)’중에는 물론 청년 세대가 앞장서고 있지만 중장년들도 뒤쳐지지 않으면서 과거에 ‘지체한’시간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영화 《휴대폰》과 전 안후이(安徽)성 부성장 왕화이중(王懷忠)은 “매춘을 적발하는 것은 투자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했다. 이것이 바로 이런 사회현상의 굴절이다. 옛날에는 “전국이 위아래로 온통 홍색”이었지만 지금 “전국은 위아래가 온통 황색”으로 변했다.

첩을 두고, 정부(情婦)를 두며, 성상납을 하는 것은 이미 관리들이 추구하는 일종 ‘시대적인 유행’이 되었으며 이것을 치욕으로 생각는 것이 아니라 자랑으로 여긴다. 조사 자료에 의하면 부정부패로 적발된 탐관들 중 95%는 정부가 있었다. 1999년 광저우, 선전, 주하이에서 발표한 102건의 공무원 뇌물수수사건 중 관련 공무원 100%가 첩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톈먼(天門)시 시위원회 당서기 장얼장(張二江) 한 사람만 해도 무려 107명의 정부를 두고 있었다.

관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도덕의 단속이 없어졌고 오직 조건만 생기면 성적인 만족을 노린다. 직장 상사와 부하, 사장과 직원, 교수와 학생, 감독과 배우, 강자와 약자 사이의 성범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천리며 인륜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에서까지도 짐승 같은 교사들이 나타났다. 어떤 학생은 교사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했고 어떤 학생은 강간당한 후 첩이 되었으며 어떤 교사는 학생을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했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다. 중국 매체에서 2003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충칭(重慶) 다쭈(大足)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2002년부터 2003년 사이에 모두 10명의 미성년 여학생을 강간 또는 간음했다. 간쑤(甘肅)성 룽시(隴西)현의 한 체육교사는 뒷거래로 학생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킨다는 명목으로 이 학교에서 12명의 중3 학생을 강간했으며 그중 두 명은 강간당한 후 임신까지 했다.

구이저우(貴州)성 진빙(錦屏)현 허커우(河口)향 중양(中仰) 초등학교의 51세 교사는 1년 반 사이에 12명의 여학생을 42차례 강간했으며, 16명의 여학생에게는 35차례에 걸쳐 음란한 짓을 했으며 겨우 3명만이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2004년 6월 린샤(臨夏)현 제1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1년 반 사이에 3학년 여학생 9명을 여러 차례 강간하고 음란한 짓을 했으며 이중 가장 많은 피해를 본 학생은 수십 차례에 달했다. 이 학생들은 나이가 가장 많은 학생이 15살이 안 되었고 대개 9, 10살이었다. 잔장(湛江)시에 속해 있는 레이저우(雷州)시 난싱(南興)진의 모 초등학교 교장인 린덩핑(林登平)은 3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미성년 여학생11명을 강간했으며 이중 가장 어린 학생은 10살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현상과 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악행들을 오늘날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고로 모두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게 대했으며 정조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남녀 간에 결혼을 한 후에만 비로소 동거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할 때는 부모님께 절을 하고 천지에 절을 하며 천지신명이 자신의 결혼을 증명한다고 여겨왔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사통(私通)하거나 음란한 행위가 있다면 이것을 큰 죄로 여겼다. 강간은 살인이나 방화범과 같이 용서할 수 없는 죄로 취급했다. “온갖 악(萬惡) 중에서 음란이 첫째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선배들의 이 교훈을 거의 잊어버렸다.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중공이 전통적인 도덕 가치를 파괴하고 무신론을 선전하고 유물론을 선전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공의 당문화에서는 권력이야말로 도덕에 대한 가장 큰 해석이다. 때문에 오직 권력이 있고 조건이 있다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공산당은 애초에 ‘공산공처(共產共妻 역주: 재산을 공동 소유하고 아내를 공동 소유한다는 의미)’로부터 마오쩌둥의 음란과 현재 중공관리들의 부패타락에 이르기까지, 관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통가치는 전복되었으며 가정의 모든 인륜관념이 팽개쳐졌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성이 문란해지는 것은 흔히 한 민족이 멸망으로 나아가는 징조이다. 더 발전해 나간다면 우리가 과연 어떠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5)섹스, 도박, 마약의 산업화와 관방의 보호

중국에서 매춘은 줄곧 불법으로 여겨져 왔기에 섹스(性)사업은 반드시 군대, 경찰과 결합해야만 비로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일부 섹스사업은 직접 군대, 경찰과 합작하고 있으며 또 이것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만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대 혹은 공안에서 꾸린 여관들은 장사가 잘된다. 섹스 산업의 경제적인 이익은 갈수록 방대해 지고 있으며 취업인원은 약 1000만 명이며 여기에 소비되는 금액이 매년 1조 위안에 이른다.

중국 경제학자 양판(楊帆)의 추산에 따르면, 2000년 경찰 행동으로 인해 실직된 여성들의 소비가 하락했고 이 때문에 중국 GDP가 1% 감소되었다고 한다. 베이징대학 중국공익채권사업 연구소 겸임 연구원 왕쩡셴(王增先)이 연구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보수적으로 추산해서” 매년 약 6000억 위안의 도박자금이 국외 및 홍콩, 마카오지역으로 유실된다고 한다. 마약시장은 약 3000억 위안이 넘고 마약 흡입자들의 숫자는 1천만을 넘는다고 한다.

선양(瀋陽)시 마약단속 지대 지대장인 천신(陳鑫), 선허(瀋河)분국 전 국장 취웨푸(曲月福), 와 현 국장 장바오화(張保華) 및 그 외 100여 명의 경찰들이 마약업자들과 결탁해서 하나의 마약판매 ‘시스템’을 이뤘다. 음란물, 도박, 마약이란 3개의 큰 시장은 서로 협조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이 3대 산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특수한 직위와 배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 군대, 경찰 및 정부 요원들이 3대 산업의 가장 중요한 수혜자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 및 군경을 배경으로 하는 이런 힘이 없으면 3대 산업은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관청이 음란물, 도박, 마약에 참여하여 위아래가 서로 결탁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직접 참여하면서도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현대 생활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절실한 고통은 바로 사회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조성된 일련의 사회문제들이다. 어떤 사람은 공산당이 옛날에 교과서에서 선전하던 “덕육(德育), 지육(智育), 체육(體育)”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던 말이 오늘날에 와서는 실천 중에서 “권력욕, 금전욕, 성욕”으로 전면에 떨쳐나섰다고 한다. 위폐가 성행하고 색정물이 범람하며 조직 폭력배들이 판을 치고, 정경유착으로 경찰과 도적이 한 집안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민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으며 사회의 공정한 펼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내재적인 도덕의 단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언론의 감시와 법률적인 단속이 없기에 매 사람마다 모두 피해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