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항미원조’도 억누르지 못한 중국인들의 아이폰12 사랑…30분만에 매진

장위제(張玉潔)
2020년 10월 26일 오후 4:00 업데이트: 2020년 10월 26일 오후 4:24

지난 23일 중국 공산당(중공)은 베이징에서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미국에 대한 항쟁 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는 중공이 한국전쟁을 부르는 용어다.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한국전쟁이 구소련과 중공의 사주로 벌어진 북한의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흐리는 표현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중국에서는 미국기업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12와 아이폰12프로가 정식 출시됐다.

중공이 “미국에 맞서라”며 항미를 부르짖었지만, 아이폰 12는 판매개시 30분만에 매진됐다. 베이징 등 중국 내 여러 지역 애플 매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구매를 위해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섰다.

앞서 지난 16일 아이폰12와 아이폰12프로 사전예약일에는 접속량이 몰려 사전예약 사이트가 다운됐고, 중국 쇼핑몰인 티몰과 징둥에 입점한 애플 프래그십 스토어 물량도 순식간에 동났다.

3천위안(약 51만원)의 웃돈을 줄테니 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사실 다들 속으로는 잘 알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들 몸은 솔직해” “항미를 외치는 윗분들, 가족과 재산은 다 미국에 있잖아…위로부터의 자아분열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애플 매장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발에 의한 투표(voting by foot)”라고 묘사했다. 이동의 제한이 없을 때, 사람들이 더 나은 쪽으로 찾아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중공을 따르지만 발로는 그렇지 않음을 꼬집은 것이다.

중국 아이폰12 정식 출시 첫날 베이징의 애플 매장 앞에서 구매를 기다리는 중국인들 | EPA=연합뉴스

누리꾼, 아이폰 구매 둘러싸고 찬반 격돌

중국 온라인 여론이 아이폰 구매에 호의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23일 웨이보 등에는 “아이폰 구매는 애국적이지 못한 행동” “미국인들이 우습게 볼 것”이라는 비난 글이 게재됐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우스운 건 항미원조 정신” “항미원조가 정의(正義)냐? 지금의 북한을 봐라”고 꼬집었다.

“중국 교과서만 봤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항미원조가 마오쩌둥의 야비한 헛소리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라는 글도 있었다.

인민교육출판사에서 발행한 중공 역사교과서(高中历史选修3)에서는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항목에서 한국전쟁을 “1950년 6월 25일 조선내전이 발발했다”고 표현한다.

이어 조선인민군(북한군)이 남한 영토의 90%이상을 점령했으나 맥 아더가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 퇴로를 차단하고 서울을 점령(수복)한 뒤 중국-북한 국경지대까지 진군해 중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며 미군과 유엔군을 침략자로 날조한다.

아이폰12 구매 열풍이 불었던 지난 23일도 중공은 항미원조를 “침략자(미국)를 때려 눕혀 대국의 지위를 세계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압록강을 건너고 있는 중국공산당 인민지원군 | 위키피디아 커먼스

한국전쟁, 자유진영 VS 공산진영 대결

중공이 기념비적으로 내세우는 항미원조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한국전쟁은 구소련 스탈린과 중공 마오쩌둥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을 파병해 한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로 결의했다.

총 195만명이 참전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엔군은 북한군을 북쪽으로 몰아냈지만, 중공군(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양측은 1953년 7월 정전 협정을 체결해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 평화유지군과 중공 사이의 전쟁이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대결이었다.

중공은 그동안 사망자 수를 줄여서 발표하며 이른바 “항미원조는 위대한 승리”라고 선언해왔으며 시진핑은 이날 연설에서 중공군 19만 7천명이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며 가장 최근의 집계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측 사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원수였던 펑더화이는 귀국 후 전국정치협상위원회에 “인민지원군 50여만 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한편, 대만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매체 ‘종람중국’의 천쿠이더 편집장은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과 인터뷰에서 “중공이 항미원조를 요란하게 기념하는 것은 현재 국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라며 “시진핑은 국내 민심을 결집해 미국에 맞서려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