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중(韓中) 수교 30년, 꽃길에서 가시밭길로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09월 1일 오후 3:42 업데이트: 2022년 09월 1일 오후 3:42

8월 24일 서울과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 30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서울의 포시즌스 호텔에서는 박진 외교장관과 싱하이민 주한 중국대사가 향후 30년 동안 새로운 협력관계를 열어가기로 다짐했고, 베이징에서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시진핑 주석의 축하 서한을 대독했다. 서울의 대한상공회의소와 베이징의 차이나월드서밋윙 호텔 간 화상 연결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비즈니스포럼’에서는 양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경제 협력을 확대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꽃길을 지나 가시밭길로 들어선 한중관계를 대변하듯 기념식의 규모는 작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기념식이 쏟아낸 풍성한 덕담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30년은 지금까지보다 더 험난할 것이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실하고 그의 중국몽과 그에 따른 대국주의 행보가 계속될 것이 확실한 현시점에서의 합리적인 예상일 수밖에 없다.

폭발적인 경제교류와 이후의 긴장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은 폭발적인 경제교류로 시작되어 긴장으로 이어진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GDP는 5.1배 그리고 중국의 GDP는 35.5배나 폭등했다. 교역은 47배나 증가하여 3천억 달러(약 400조 원)에 이르렀고, 중국은 한국 수출의 1/5 이상을 점하는 최대 수출시장이 되었다. 양국 간 투자, 기업 진출, 인적·문화적 교류 등도 급증하여 양국은 말 그대로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 등극했다. 명동 거리는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댔고, 중국 내륙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가난한 중국인들이 부러워하는 ‘부국의 국민’으로 대접받으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들이 중국의 안방을 파고들면서 한류(韓流) 바람이 불었고, 중국에서의 북한의 존재감은 희미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이 급속도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면서 중국인들의 대국 의식도 커져 갔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崛起)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지나 주동작위(主動作爲)와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외치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현상 타파 세력이자 신냉전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었다. 구단선을 통해 남중국해의 내해화를 시도하면서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촉발했고,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통해 글로벌 세력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오늘날 중국은 한국 GDP의 8.8배에 달하는 세계 제2위의 경제·군사 대국으로서 경제, 정치, 군사, 우주, 반도체 등 모든 방면에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이다.

한반도 정책도 크게 달라졌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면서 북핵을 두둔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관계를 미국을 견제하는 데 활용하는 ‘이한제미(以韓制美)’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대한(對韓) 정책에 종주권 의식을 드러냄에 따라 양국관계에 있어 ‘주권평등과 상호존중’이라는 합리적 원칙은 통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힘을 앞세운 중국의 비합리와 우격다짐으로 한중관계는 뒤틀리고 긴장이 높아졌다. 시진핑 정부 이전까지 중국은 서해의 중간선인 동경 123.5도 이동(以東) 해역에 군함을 보내는 것을 자제했지만, 금년 들어 서해에서 100여 차례 해상훈련을 실시하면서 오성기를 단 군함들이 빈번하게 124도를 넘고 있다. 이는 124도를 한중 간 해상경계선으로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서해의 70%를 내해화하려는 기도다. 비슷한 이유로 서해 중간선을 한중 간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로 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묵살하고 있으며, 중국 군용기들은 수시로 한일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한다. 중국에서 발생하여 동진하는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을 거론한 적이 없으며, 중국의 동해안에 위치한 47기의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태에 대비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다.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와 함께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은 대표적인 ‘우격다짐’ 사례다. 중국은 문제의 원인인 북핵을 두둔하면서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북핵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인 사드를 시비하여 각종 경제적·문화적 제재를 가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한반도와 일본을 넘어가는 사거리를 가진 다수의 동풍(DF) 계열 미사일들과 레이더에 다수의 정찰위성까지 운용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종주국 의식’와 ‘대국주의’를 빼면 설명이 불가하다.

가시밭길로 들어선 한중관계

이렇듯 지난 30년을 지내면서 한중관계는 꽃길에서 걷다가 가시밭길로 들어선 상태다. 문제는 다가올 30년은 외교관들과 경제인들의 덕담과는 달리 더욱 험한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금년 10월 말로 예정된 공산당 제20차 당대회는 시진핑 당 총서기의 3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점이다. 시 주석은 2017년 제19차 당대회를 통해 ‘시자쥔(習家軍:시진핑 군단)’을 대거 요로에 포진시키면서 당을 장악했고, 이듬해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회는 3연임을 금지한 헌법 79조를 삭제하는 개헌안을 2,958대 2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이어서 전인대는 2970표 만장일치로 시진핑을 국가주석으로 선출했었다. 금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도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사정 작업을 해왔다. 즉, 이변이 없는 한 시진핑 3연임은 확실해 보이며, 3연임 이후 시 주석이 대국주의 행보를 더욱 강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은 어느새 한국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되었고, 서방국가 국민들의 80% 이상이 싫어하는 최대 비호감 국가가 되었으며, 일본과 호주에서의 비호감도는 9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중국의 행보를 종합할 때 이러한 반중(反中) 여론이 향후 중국의 대외 기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게 있어 중국은 사활적 국가 이해가 걸린 중요한 이웃 국가이며, 주권 평등과 상호 존중의 원칙하에서 비적대·우호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은 한국에 있어 불변의 과제다. 그러나, 중국이 팽창주의적·대국주의적 대외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는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 간에는 사드 관련 ‘3불’ 약속 논란, 중국의 사드 보복과 한한령(限韓令) 미철폐, 한국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 한국의 QUAD 가입 여부, 배타적경제수역 미획정, 이어도 관할권, 중국어선 불법 조업, 미세먼지 등 겹겹이 쌓여있는 현안들이 많지만, 시 주석의 3연임 이후 이들을 대하는 중국의 기조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걱정이다. 치열해지는 미·중 간 신냉전을 감안하면 ‘정냉경열(政冷經熱)’이라는 이중 플레이로 강력한 동맹과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동시에 지켜나가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유사시 한국을 도울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보다 우선시할 수는 없다. 그것이 한국의 숙명이자 정도(正道)이지만 중국이 한국의 이런 처지를 수긍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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