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황호의 飮食藥食]火를 가라앉히는 마음의 채소 ‘상추’

2012년 10월 11일 오후 8:40 업데이트: 2019년 06월 28일 오후 4:20

모든 사물은 모양, 색, 향과 맛이 전부 다릅니다. 태어나는 계절도 다르고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한의학은 작은 사물, 식물, 동물 하나하나도 작은 우주를 이루고 개성이 있다고 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접하는 쌀, 보리, 상추, 양파, 무, 당근, 사과, 생선. 모양만 다르고 이름만 다른 것일까요? 모든 음식은 특유의 개성이 있어서, 우리 몸에 들어오면 다양한 효과를 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평형을 찾고 중용에 서 있다면, 어떤 음식과 스트레스에도 큰 영향받지 않습니다. 이를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가진 한 쪽으로 치우친 체질이고, 살면서 얻은 많은 질환으로 힘들어합니다. 내 몸에 맞는 음식을 안다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의사 김황호와 함께 약이 되는 음식의 세계를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은 독특한 융합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비빔밥과 찌개가 그렇고 쌈도 그렇다. 고기와 채소, 각종 장류를 한꺼번에 그것도 매번 다양한 조합으로 먹을 수 있는 문화도 드물 것이다. 쌈채소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은 상추다. ‘삼겹살+쌈장+상추’의 조합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공식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즐거운 저녁 식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상추는 맛이 약간 쓰지만 치우치지 않고 약간 단 맛도 있다. 채소 자체로도 맛이 괜찮고 특히 육류와 궁합이 좋아 사랑받고 있다. 육류는 기본적으로 우리 몸으로 들어가면 열을 만든다. 육식과 열에 대한 연구는 추후 소개할까 한다. 상추의 특징은 약간 찬 성질에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차다, 따뜻하다는 실제의 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먹었을 때 작용이 진정, 수렴, 온도 하강 등으로 나타나면 차다고 하고, 반대로 흥분, 발산, 온도 상승 등을 일으키면 따뜻하다 혹은 뜨겁다고 말한다. 상추는 사상 체질로는 소양인에게 가장 잘 맞다. 긴장을 풀어주고 심장의 열을 내려주는 작용이 있어서 상추를 먹으면 졸음이 살짝 올 수 있다. 혹자는 상추와 상추씨로 불면증을 치료했다고도 한다.

상추와 체질적으로 궁합이 덜 맞는 편인 태음인과 소음인도 역시나 상추를 먹으면 졸음이 올 수 있다. 소양인이나 태양인과 같은 양인은 기분 좋은 청량감과 숙면을 얻을 수 있다.

상추는 산모에게도 유용하다. 상추와 상추씨는 예부터 젖을 잘 돌게 하고 이뇨와 해독 작용으로 산후에 몸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평소 위장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경우에는 상추를 과다하게 먹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농업용으로 나온 상추씨는 병충해 방지를 위해 소독을 한 경우가 많아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 가까운 한의원에서 진단을 받고 상추씨가 들어간 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상추씨의 약재명은 ‘와거자’라고 한다.

쓴 맛은 한의학에서 심장과 관계가 깊다. 특히 쓴 맛을 내면서 성질이 찬 음식과 약재는 심장의 열을 내려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부정맥과 두근거림 등에 효과가 좋다. 대표적인 것이 치자, 황련과 같은 약재이며, 상추도 완만하지만 비슷한 작용을 한다.

추측컨대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이 상추를 좋아하는 이유도 상추의 시원함으로 가슴의 맺힌 것과 울분을 다스리고자 하는 본능적인 선택이 아닐까 한다. 요즘 인기를 끄는 매운 맛도 막힌 것을 풀어주는 신미(辛味)의 강렬한 맛 때문이다. 상추는 매운 맛처럼 속시원하게 뚫지는 못하지만, 가슴과 머리에 쌓인 열을 시원하게 내려주는 작용으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상추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상추는 성질이 찬 음식 중에서 항암 효과가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다.

이밖에도 약재와 식품의 효능을 집대성한 한의학 서적인 본초강목에는 상추의 재미있는 효능을 소개했다.

 

‘벌레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며, 뱀이 상추와 접촉하면 눈이 멀어 보지 못한다. 만약 사람이 중독되면 생강즙으로 해독할 수 있다.’

예전 시골에서 장독대 근처에 상추를 심은 풍경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뱀은 허물을 벗을 때 염분이 필요해 염분이 많은 곳으로 오는 습성이 있다. 특히 장독대는 염분이 많은 곳으로 상추를 심어서 뱀이 집 근처로 접근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맛있는 된장과 쌈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덤도 있었다.

참고로 본초강목에서 말한 독은 지금의 유독성 물질을 뜻하기 보다는, 단독으로 장기간 복용할 경우 성질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뜻하는 것에 가깝다. 치우친 성질을 잘 활용하면 약이고 잘못 활용하면 독이다.

상추의 시원한 성질을 이용한 민간요법으로 타박상이나 염좌에 상추를 짓이겨 붙이기도 했다. 상추보다 더욱 강력한 타박상 치료제는 치자다. 치자의 찬 성질은 상추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상에서 치자와 대황과 같은 성질이 찬 약물로 연고를 만들어 바를 경우 근육뭉침과 삔 데에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상추는 시원하게 가슴과 위장을 풀어주는 채소로 요약할 수 있겠다. 주의 사항은 위하수 등 위장 기능이 약한 사람은 따뜻한 성질의 다른 음식과 겸해서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통풍에 좋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니 통풍 환자분은 드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실 삼겹살은 소양인에게 가장 좋은 육류로서 성질이 찬 편이다. 상추와 삼겹살의 조합은 찬 성질이 강한 편이므로, 소음인과 태음인의 경우는 구운 마늘이나 파, 따뜻한 성질을 가진 깻잎과 곁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습관이라 하겠다.

 

 

 

 

 

 

 

 

 

 

 

 

 

 

 

 

 

 

 

 

 

 

 

 

 

 

 

 

 

 

 

 

 

 

 

 

 

 

 

 

 

 

 

 

 

 

 

 

 

 

 

글/ 한의사

 

경희대 한의학과 졸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現 강남경희한의원 원장
저서 ‘채소스프로 시작하는 아침불끈대혁명’

 김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