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파고든 편향과 왜곡…남·북교육 해부 세미나

이윤정
2022년 03월 22일 오후 3:03 업데이트: 2022년 03월 22일 오후 3:03

황인희 “대한민국 많은 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왜곡·부인”
정광성 “北 교육, 김정은에게 충성토록 세뇌하는 게 목표”
홍후조 “통일 후 사회통합 위한 교육 설계 필요”

“대한민국 국민을 길러내는 교육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3월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남·북 교육을 해부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사단법인 물망초 주최로 열린 세미나는 ‘남북 교과서 편향과 왜곡, 그리고 통일 한국이 지향할 교육’을 주제로 진행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황인희 두루마리 역사교육연구소 대표는 ‘남한 교과서에 파고든 좌편향 실상’을 분석해 교과서 문학 작품들이 자유민주주의 왜곡의 도구가 되는 현실을 다뤘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의 많은 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부인한다”며 “주로 역사나 사회 교과서에서 그런 왜곡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이 두 과목에 시선을 집중하지만, 국어나 문학 시간에 학생들에게 제시되는 문학 작품만큼 이념의 왜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소재는 없다”고 지적했다.

문학 작품은 그 어느 교과서 기술보다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받을 수 있고 문학 작품의 특성상 감동으로 학생들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 학생의 인생관,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게 황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문학 교과는 다른 과목에 비해 내용이 왜곡 전달될 위험성이 훨씬 높다”며 문학 작품이 가지는 상징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데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학생들에게 편향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그가 제시한 사례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채만식 작가의 소설 ‘태평천하’에서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를 선택한 지식인을 비판하는 등장인물들은 시대 정신이 부족하고 어리석으며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을 더 현명하고 똑똑한 행위로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최인훈 작가의 중편 ‘광장’은 주인공 이명훈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는 부분이 교과서에서 주로 다뤄진다. 그 과정에서 남한은 게으름과 방탕한 자유가 있는 곳으로 묘사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왜곡 우려가 있다.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대립적으로 그려놓은 작품이다. 난쟁이로 상징되는 약자가 가진 자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당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황 대표는 “작품 자체를 평가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전제한 뒤 “문학 작품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교실에서 교사에 의해 왜곡돼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학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을 잘못 해석하면 급속한 경제 성장이 우리에게 삶의 풍요나 국가의 발전을 가져다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인간 소외 현상과 빈부의 양극화를 가져다주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돼 서민은 부자에 눌려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할 왜곡의 여지가 충분하다”며 “게다가 1960년대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시대’, 1970년대는 ‘극도의 인간 소외 현상이 일어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대’로 여겨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문학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때”라며 “학생들에게 밝은 미래에 대한 비전, 따뜻한 사회, 노동의 보람과 자존감 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학 작품을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이 교사들의 좌편향 교육, 反대한민국 교육에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 국·영·수도 김씨 일가 우상화, 반미 교육 일변도”

탈북민 출신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는 ‘북한 교육의 거짓과 선동, 그리고 왜곡’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북한의 교과서 | 연합뉴스

정 기자는 “북한의 교육과정은 남한과 비슷하지만, 교육 목표는 학생들을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 바치도록 세뇌하는 것”이라며 한국 교육과정에서 중시하는 국·영·수를 북한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도 국어 시간에 한글을 가르친다. 하지만 북한은 한글을 세종대왕이 아니라 인민들이 창제했고, 그것을 김일성이 발전시켜 지금까지 우리가 쓰고 있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이어 “한글을 이용해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 교육과 반미(反美)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 소학교 1학년 교과서 내용이다. ‘꼬마땅크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 미국놈들 쳐부수며 꼬마땅크 나간다.’ 어린아이들이 장난감 탱크로 소꿉놀이하는 장면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북한 수학 교과서에 실린 나눗셈 문제다. ‘사회주의 조국에서 소년단원들이 날강도 미국놈을 족칠 소년호 땅크, 비행기 함선을 인민군대 아저씨들에게 더 많이 보내드리려고 쇠붙이를 45t, 120kg을 모았습니다. 이것을 자동차 15대에 실어서 제강소에 보냈습니다. 자동차 한 대에 얼마씩 실었겠습니까?’”

“영어 교과서도 영어 소통능력을 위한 내용이 아닌, 김씨 일가의 우상화와 주체사상을 소개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남조선에는 빈 깡통을 차고 다니는 거지들이 많다’를 영작하라는 문제도 있다.”

정 기자는 북한으로 보내지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들이 북한 청년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했다.

“北 교육, 남북 통합에 장애…통일 후 교육 준비해야”

마지막 발제자인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통일 한국이 지향할 교육’에 대해 발표했다.

홍 교수는 “북한 내 학교에서의 김씨 일가 우상화, 적대 의식과 호전성 교육, 역사 왜곡 등은 남북 간 통합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며 “한국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당국에 ‘교육 정상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통일이 되기 전에라도 남북한은 각종 인도적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평양창전소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북한의 교육에 대해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적 가치관에 기초를 둔다”면서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공산주의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평양 중심의 극소수 지배층이 특권층을 형성해 절대다수의 인민을 지배하는 체제”라며 “체제 유지의 주요 수단 중 하나는 선전·선동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교육의 핵심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적 사교(邪敎)에 기초한 우상화 ▲전 인민을 노예화하는 민노(民奴)주의를 택한 차별적 세뇌 교육 ▲노예처럼 고분고분 말 잘 듣게 만드는 신민화(臣民化) 등을 꼽았다.

특히 “대다수 인민을 당과 수령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12년간 이념은 철저하게 가르치되 교양은 낮은, 보통교육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며 “인민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경험·지식·외부 정보를 접해 자유를 갈망하거나 비판의식이 성장하게 되므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저급한 ‘우민화(愚民化)’ 교육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일제와 6·25를 겪지 못한 북조선의 전후 세대들은 기본인권도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을 애초부터 정상 생활로 인식하고 있다”며 “그들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말하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과 정부의 계약으로서 국민국가, 정부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복지 등을 전혀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제도적·영토적 통일을 이루고 새 교육을 시행하더라도 머리와 마음의 통합을 이루는 데에는 장기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오랜 억압과 신민 생활에 길든 북한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잘살 수 있다’는 근로의식·근면의식을 심어주는 것도 과제”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통일 이후 사회 통합을 가져올 수 있는 이념 체계의 정립이 최우선으로 필요하다”며 “통일 직후 적용 가능한 통일 한국의 교육과정 기준 총칙과 남북한 교육 통합을 위한 설계를 구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