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희생자들 기억” BTS 수상소감이 ‘정치적’이라는 中 환구시보

한동훈
2020년 10월 12일 오후 2:12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14

중국 매체 환구시보가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수상소감을 문제 삼아 중국 내 반감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12일 환구시보는 전날 중국 웨이보에 일어난 논란을 보도했다. ‘BTS 수상소감, 중국 누리꾼 분노 일으켜: 국가 존엄에 관한 간섭은 참을 수 없다’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달았다.

이 기사에서는 먼저 한국 연합뉴스를 인용해 BTS 리더 김남준의 ‘밴 플리트상’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 상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단체)에게 주어진다.

김남준은 지난 7일 수상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중국 누리꾼들이 격분한 부분은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대목이었다.

신문은 “이 BTS가 이번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수상소감을 정치적 문제로 이슈화 시도하면서 중국 누리꾼들이 “국가 존엄에 관한 간섭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이 이번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 환구시보 기사(빨간 줄 그어진 부분). 펑파이 신문 전재 | 펑파이 화면 캡처

기사에서는 해당 발언이 어떻게 국가 존엄에 대한 간섭으로 이해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중국 온라인에서는 “중국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이 달리고 있다.

여기에 일부 중국어 방송은 의도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남녀 군인의 희생으로 잘못 번역하면서 군사적인 어감이 더해지도록 했다.

환구시보는 또한 “BTS는 이전에도 인터뷰에서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식했다”고 했다는 한 누리꾼 발언도 덧붙였다.

중국에서 ‘하나의 국가’ 원칙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이슈다. 누리꾼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중국인들의 화약도에 불을 당겼다.

아울러 기사 후반부에는 밴 플리트 상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 활약한 미군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려 1995년부터 주어지는 상이라는 설명을 달아 한국전쟁과의 관련성을 드러냈다.

현재 BTS 김남준의 수상소감은 ‘항미원조’에 관한 발언으로 취급되며 웨이보 핫이슈에 올라 있다. 항미원조란 중국 공산당이 한국전쟁을 부르는 표현이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김남준의 수상소감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보다 깊은 이해와 단결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자”며 전 세계의 화합을 강조하며 끝난다. 중국과 맞서 싸운 전쟁을 부각하는 수상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를 억지로 왜곡되게 해석한 중국 누리꾼의 선동과 언론 보도를 통해 파문은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BTS 팬들 사이에서 팬덤 탈퇴 발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구글에서 환구시보와 BTS(방탄소년단)을 검색한 결과. BTS 발언이 국가존엄을 건드렸다는 환구시보 전재 기사들 | 구글화면 캡처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때로는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와 엇갈리는 보도와 논평을 내놓기는 하지만, 신문의 전체적인 방향성은 당의 이익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만큼 파급력도 크다. 외신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BTS의 수상소감을 비난한 중국 누리꾼의 의도에 역시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일명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리는 공산당 댓글부대 1000만명 이상이 활동하며 여론을 주도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미국의 무역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외교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지자 반미감정과 항미원조 정신을 강조하는 영화와 언론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족감정과 애국주의를 자극할 거리를 찾던 댓글부대와 공산당 매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대중문화 예술인의 발언을 정치 이슈화한 누리꾼과 이를 선동적 제목으로 전한 당 관련 매체의 보도로 인해,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고 아꼈던 한국과 중국 양국 팬들의 마음만 멍들고 있다.

한편, 기사가 논란이 되자 현재 환구시보에서는 해당 기사가 내려졌다. 하지만 다른 매체에 기사 원문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