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美 반도체법, 韓 기업 피해 우려…독소조항 완화 필요”

이윤정
2023년 04월 17일 오후 4:01 업데이트: 2023년 04월 17일 오후 4:01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미정상회담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조항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이하 반도체법)’의 과도한 보조금 신청 요건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국내 반도체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한경연은 지난 14일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요건의 문제점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히며 ▲반도체 시설 접근권 허용 ▲초과이익 환수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공장 증설 제한 등을 4대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한미 협력을 통해 상호주의에 입각한 형평성에 맞는 반도체법 보조금 지원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8월 미국에서는 최대 25% 투자세액공제를 포함한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520억 달러(약 68조 원) 규모의 반도체법이 발효됐다.

이와 관련해 미국 상무부는 지난 3월 21일(현지 시간)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요건을 담은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세부 규정안을 관보 등을 통해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보조금 신청 기업에 대해 경제·국가안보 기여도,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타당성, 인력 개발, 기타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다. 미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보조금을 신청한 미국 투자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 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 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투자 인센티브가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美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도록 설정했다.

한경연 보고서는 보조금 신청 요건 중 우선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조항에 대해 ”반도체 생산시설에 국방부 등 국가안보기관의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첨단시설인 반도체 공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기술 및 영업 비밀의 유출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도 문제 삼았다. 이 조항은 미국은 1억 5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이 발생하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기업 본연의 목표인 이윤 추구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고 “투자에 대한 경제성이 하락해 기업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이므로 기업이 납득하기 어렵고, 사업의 예상 현금흐름과 수익률 등의 자료 제공 시 기술 및 영업 비밀의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요건’ 역시 재무 자료뿐만 아니라 주요 생산 제품,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원료 등의 자료까지 제출을 요구해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반도체 보조금 혜택을 위해 반도체 생산 관련 자료, 원료명, 고객정보 등의 영업 비밀까지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한 중국 공장 증설을 제한하는 조항 관련해선 “10년간 우려 대상국에 투자를 확대하거나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대하지 못하는 규정”이라며 “중국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증설 제한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기존 중국 공장의 생산성 및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조항에 따른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법에서 규정한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공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게 된다.

한경연은 국내 반도체 기업이 미국 생산시설 투자 시 과도한 보조금 신청 요건으로 인해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동맹국인 한국에 불합리한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고 미국은 자국 내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건”이라며 “상호주의에 입각한 형평성에 맞는 반도체법 보조금 요건을 마련해 양국의 상호이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고서는 윤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열리게 될 한미정상회담에서 경제 안보 현안으로 미국 반도체법에 대한 요건 완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관련 세부 규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실무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하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담겼다. 구체적으로 ‘합의된 수치’ ‘프로젝트마다 다를 수 있다’ ‘특정 조건을 제외하고’ 등 예외 요건이나 단서 조항 등을 활용해 국내 기업에 유리한 조건이 반영되도록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