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 보호는 뒷전, 정권 옹호만…中 여성기관 폐지론 고조

김정희
2022년 03월 17일 오후 6:01 업데이트: 2022년 03월 17일 오후 7:58

중국에서 지난 1월 말 촉발된 ‘쇠사슬녀’ 사건의 여파가 꼬박 두 달이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전에 열중하던 사이, 시골마을에서 터진 이 사건은 당국의 검열과 언론통제 속에서도 SNS와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 이슈로 발전했다.

중국인들은 목에 쇠사슬이 걸린 채, 한겨울에 외투도 없이 얇은 옷 한 장으로 추위를 견디던 이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국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여성인권·성평등 추진기관인 ‘중화전국부녀연합회(전국부련)’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즉각 해당 여성 구조에 나선 것이 아니라, 수일간 침묵하다가 뒤늦게 “이번 사건에 분개한다”며 입으로만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후 공산당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론이 일어났지만 전국부련 관계자는 “당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지난 1월 26일 중국 쟝수성 쉬저우시 펑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쇠사슬로 목이 묶인 채 헛간에 갇힌 40대 여성의 영상이 SNS에 게시됐다. 한 사회고발 블로거 조사 결과, 이 여성은 미성년 때 유괴되어 집단 성폭행, 강제 약물 주입, 강제 발치 등 학대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학대한 남성과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도 밝혀져 중국 사회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 여성은 ‘쇠사슬녀’로 알려졌고, 그녀의 처참한 사연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당국은 검열을 통해 즉각 여론 통제에 나섰지만, 중국판 카톡인 웨이보 등에서 쇠사슬녀 관련 게시물은 조회수가 십억 회 이상을 기록하며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중국 공산당이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선전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여론의 관심 뒷전으로 밀릴 정도였다.

“쇠사슬녀가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며 사건을 무마하려던 쉬저우시 당국은, 진상 규명 요구가 빗발치자 그제서야 5건의 보도자료를 발표해 여성이 유괴됐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당국은 피해 여성은 중국의 남방 지역 윈난성 소수민족 출신 샤오화메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쉬저우 당국의 공고에 언급된 샤오화메이(좌)와 쇠사슬에 묶인 채 발견된 여성(우) | 웨이보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전국에서 만연한 인신매매, 부녀자 납치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일부 유명인사들도 공론화에 동참했다. 전직 CCTV 아나운서인 자우푸는 “정부 공식문건인 장수성 공보에 따르면 쉬저우는 중국에서도 인신매매가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수십 년 동안 관련 보도가 아주 많았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과거 기록물도 재발굴됐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 사건이 발생했던 1989년에 발간된 ‘오래된 범죄: 전국 여성 인신매매 기록’에 따르면 쉬저우시의 6개 지역에서 1986년부터 3년 사이 4만8100명의 여성이 인신매매에 납치돼 다른 지역으로 팔려갔으며 가장 어린 소녀는 13세였다.

25년 전 기록이었지만, 문제는 당국이 추후 철저한 수사와 조사를 통해 납치된 사람들을 추적하고 사건을 해결했느냐는 추궁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번 쇠사슬녀 사건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미국의 인권보고서를 가져와 다른 이들에게 공유한 네티즌도 있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2017년부터 2021년 연속 5년 ‘전 세계에서 인신매매가 가장 심각한 나라의 하나’로 선정됐다.
2020년 보고서에는 중국 당국이 인신매매 피해자를 추적하거나 보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신매매범이나 구매자에게 되돌려 보냈다는 비판이 담겨 있었다.

성평등·여성인권 기관을 향한 비난 여론

중국이 미국에 이어 제2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당국의 화려한 선전 분위기 속에서, 궁벽한 시골에 쇠사슬을 매고 살아가는 여인의 존재는 지독한 풍자가 됐다.

여론은 책임자를 찾았고, 여성아동 인권보호 주관기관인 전국부련이 도마에 올랐다. 전국부련은 여성운동 단체로 결성됐지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일종의 국정자문기구)에 속한 정치기관이다. 단체 규약을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심의, 결정한다.

전국부련이 여론의 눈총을 받은 것은 성평등, 여성·아동인권을 책임진 기관이라는 점도 있지만, 중국 전역의 행정기관, 기업, 지자체에서 시골마을까지 구석구석 조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과 관련해 중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관이었다.

전국부련 공식홈페이지에 공개된 규약 제4조에 따르면 “부녀연합회는 여성·아동의 법적 권한을 보호하고 그들의 의견을 국가 기관에 반영한다. 관련 부서·단체와 협력해 여성·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조사하고 피해 여성·아동을 돕는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이번 쇠사슬녀 사건 직후 시민들이 해당 지역의 부녀연합회에 찾아가 피해 여성 구조를 요청하자, 부녀연합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쉬저우시 당국이 발표한 5건의 보도자료 중 맨 나중에 발표된 자료에서 “연합회가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다”며 짧막하게 언급됐을 뿐이었다.

대중의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 5일 베이징 전인대다. 전인대에 참석한 전국부련의 최고책임자인 선웨웨 주석은 쇠사슬녀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시진핑 주석을 칭송하며 “(전국 여성들은) 당의 지시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부녀연합회, 실상은 당국 인권침해의 조력자”

미국에 거주하는 인권변호사 우사우핑은 이 같은 선 주석과 전국부련의 반응에 대해 전국부련은 실제로는 공산당의 여성통제와 인권탄압에 협조하는 단체라고 일침을 가했다.

우사우핑 변호사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 테니스 선수 펑솨이의 성폭행 사건에서부터 이번 쇠사슬녀 사건까지, 여성인권 주관기관인 부녀연합회는 한 일이 없다”며 “오히려 과거 부녀연합회는 공산당의 ‘한 자녀 정책’을 뒷받침하며 강제낙태, 강제불임을 시행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을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국제기구 WOIPFG의 조사보고서에서도 “전국부련은 파룬궁을 비방하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아동인권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수련생 박해를 은폐했다”고 밝혔다.

이 참에 세금만 축내고 인권탄압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돕는 전국부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종됐던 여성이 중국 장쑤성 쉬저우의 한 시골마을 헛간에서 목에 쇠사슬을 찬 채 발견돼 중국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여성은 마을 남성 둥모씨와의 사이에서 8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현지 경찰은 인신매매가 아니라 결혼이라고 발표해 중국 대중의 격분을 일으켰다. | 웨이보

중국 허난성의 부동산업체 펑야숭의 최고경영자(CEO)인 차오텐은 웨이보에 “제 구실을 하지 않는 전국부련을 즉각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국가 재정은 모두 국민 혈세로 운영된다. 재난을 당한 국민을 외면하는 무능한 부서를 계속 먹여살릴 이유가 없다”고 일갈했다.

북경대 도시환경과학대학의 우비후 교수도 “전국부련은 쉬저우 지회를 폐쇄하라”고 말했다. 그는 이 단체가 페미니스트 기관인데도 쇠사슬녀 사건에 침묵하고 있다며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으나, 그 후 일주일 만에 자신의 웨이보 계정이 폐쇄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여성단체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는 발언도 있었다. 인민대 전 교수 저우샤오정은 미국의소리(VOA)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부련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문제의 본질은 공산주의 사회에 있으며, 해결을 위해서는 공산당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있는 반체제 매체인 ‘베이징의 봄’의 천웨이젠 편집장은 에포크타임스에 “많은 사람들이 전국부련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 단체는 중국 내 여성들의 비참한 상황을 해결해준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