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치권, 막말 논란 中 대사에 일침 “외교관 답지 않아”

한동훈
2021년 03월 22일 오후 10:00 업데이트: 2021년 03월 23일 오전 6:54

프랑스 주재 중국 공산당(중공) 대사관의 막말에 프랑스 언론과 정치권이 발끈했다.

지난 19일 주프랑스 중공 대사관은 트위터에 프랑스의 중국 문제 전문가 앙투안 봉다즈를 직접 거론하며 “불량배”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프랑스 전략연구재단(FRS) 연구위원인 봉다즈 박사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도 알려졌으며 북한과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 인물.

그는 최근 중공 대사가 프랑스 의원들이 대만 방문 계획에 딴지를 걸자“중공이 프랑스 민주제도에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트윗에서 비판했다.

중공 대사관의 “불량배” 발언은 봉다즈 박사의 비판에 대한 사나운 대응이었다.

예의와 온화함이 중시되는 외교계에서 중공 외교관들이 소위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거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됐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정치인이 아닌 학자에 대한 외교관의 막발은 도를 넘었다는 역풍이 거세게 분 것이다.

공영라디오방송(RFI)은 “프랑스에서는 한 나라의 외교관이 막말이나 욕설을 하는 것, 특히나 학자를 욕하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EU의회 나탈리 루아조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난폭하고 거칠다, 이것이야말로 중공 외교관이 보여준 중국”이라고 비난했다.

라파엘 글뤼크스만 의원은 “즉시 중공 대사를 불러 ‘한 번만 더 방자하게 굴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프랑스 의원, 대만 방문 예정대로 진행

이번 사건은 프랑스 의원들의 대만 여행 계획을 막으려던 중공의 내정 간섭으로 촉발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주재 중공 대사 루사예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상원 알랭 리샤르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대만 당국과 어떠한 형태의 공식 접촉도 하지 말라”며 대만 방문 계획을 취소하라고 압박했다.

루사예 대사는 서한에서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양국 관계를 해치는 만남을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경고는 오히려 반발만 일으켰다. 리샤르 의원은 이 서신을 받고 발끈해 공개적으로 중공을 비난했다. 그는 중공의 부당한 간섭, 특히 루 대사의 협박성 어조로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상원 대만우호그룹 ‘알랭 리샤르’ 대표인 리샤르 의원은 중공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예정대로 올여름 대만 방문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외무부 역시 16일 성명을 내고 상원의원에겐 여행할 자유와 연락을 통해 만남을 계획할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만 방문의 대의명분이 확실하다는 점도 중공의 협박이 역효과를 일으킨 요인이다.

프랑스가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역 선진국인 대만의 경험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정치권에 형성됐다.

작년 9월 프랑스 의회에서 대만의 방역 성공담이 소개돼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상원 관영 매체 ‘퍼블릭 세나’(Public Sénat )는 당시 대만의 방역 성공담을 심층 보도하며 봉쇄 없는 방역의 비결은 “전무후무한 부서 배치”와 “신속한 대응”이라고 전했다.

중공 대사관은 16일 웹사이트를 통해 ‘대만의 계획’을 폭로하며 상황 반전을 노렸다.

대사관 측은 ‘하나의 중국’ 논조를 재확인하면서 대만이 중공 바이러스 대유행을 이용해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하고 국제적 공간을 넓히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글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결국 대사관 측은 19일 무리수를 시도하다가 막말 논란만 일으키는 데 그쳤다.

프랑스 주재 중공 대사관은 중공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프랑스와 마찰을 빚고 있다. 루사예 대사는 지난해 4월 중공의 방역을 옹호하고 서방의 대응을 비난했다가 프랑스 외무부에 초치됐다.

한편, 대만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과 소중한 우정을 굳게 지지해준 프랑스에 감사하다”며 중공의 부당한 의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