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D-4, 마크롱·르펜 TV토론서 치열한 공방

한동훈
2022년 04월 21일 오후 3:50 업데이트: 2022년 04월 26일 오후 5:21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에 진출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RN)후보가 투표를 나흘 앞둔 20일(현지시각) TV토론에서 격돌했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끄는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는 프랑스 자국 정치 지형은 물론 유럽의 정치 구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유럽-중국, 유럽-러시아 간 외교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이 10%포인트 정도로 앞서 있지만,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의 존재로 인해 이번 TV토론이 결선 투표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웨이’가 일간 ‘레 에코’ 의뢰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TV토론과 상관없이 지지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12%, TV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응답은 14%였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인 르펜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 우파정권 집권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불식하고 그녀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을 갖췄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날 오후 9시부터 프랑스 주요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토론은 구매력, 국제관계, 이민 등 8개 주제로 2시간 50분간 진행됐다.

모두발언을 마친 두 후보는 첫 번째 주제인 구매력 분야에서부터 치열하게 논쟁했다. 급속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계의 구매력 하락은 르펜 후보가 유세 기간 내내 지적하고 대안 제시에 힘썼던 주제다.

르펜 후보는 마크롱 정부가 유류세 인상으로 유가 급등과 시위를 초래한 점을 비판하고, 유류세를 포함한 에너지 분야 세금 감면을 통해 각 가계에 매월 150~200유로(21만~27만원)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또한 소득세도 영구히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르펜 후보는 이어 마크롱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특별히 고통받은 계층과 취약계층을 보살피겠다면서 “프랑스인들이 지난 5년간 삶의 질 저하에 시달리는 것을 봤다”며 “당선되면 가계 구매력 향상을 진정한 우선 순위로 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가 제시한 대안이 실제로는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가계 구매력 저하와 관련해, 자신이 일자리 창출과 실효성 있는 해결책으로 대응하겠다면서 기업의 임금 향상을 독려하고 이익공유 계획을 세우도록 강제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프랑스의 낮은 실업률을 언급하며 르펜 후보의 공약집에 실업률 정책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어 르펜 후보가 실업률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후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두고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다른 정당들은 운영 자금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지만, 르펜 후보의 소속 정당인 국민연합만은 러시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민연합은 2014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퍼스트 체코 러시아 은행’에서 960만 유로(약 130억원)을 대출받았으며 아직 상환하지 않았다. 국민연합은 2017년 르펜 후보를 대선 후보로 출마시키면서 이 자금을 선거 유세에 일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를 향해 “푸틴 등 러시아 권력층과 그 주변 인물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프랑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르펜 후보는 프랑스 은행들이 우파 정당에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 자신이야말로 마크롱과 달리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면서도 자신이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금지는 실제로는 러시아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 오히려 프랑스 국민들만 막심한 피해를 본다”고 해명했다.

국제관계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도 두 후보는 상반된 견해를 나타냈다.

르펜 후보는 유럽연합(EU)을 탈퇴해야 한다는 당초 주장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EU 내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EU를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 EU 체제에서 프랑스는 국익을 지키는 데 실패했으며 프랑스 농가와 생산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는 EU를 탈퇴하자는 것이며 EU의 종말을 가져올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결선 투표는 EU의 존속과 기후변화 대응을 포함한 주요 이슈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민 주제 토론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히잡 착용 금지 여부가 이슈로 떠올랐다.

르펜 후보는 히잡을 “이슬람이 강요하는 복장”이라며 공공장소에서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슬람 여성들은 선택권이 없으며,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이슬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우기 위한 정책의 하나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가 히잡을 이슬람주의와 너무 쉽게 연결 짓는다고 비난했다. 그는 “어떤 종교적인 것도 금지하지 않겠다”면서 르펜 후보의 정책이 실현되면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결선 투표는 이달 24일 치러진다. 지난 2017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66.1%의 득표율로 33.9%에 그친 르펜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이번에도 마크롱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10%포인트 내외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