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청두 미 영사관은 미중 메가톤급 외교폭탄 ‘왕리쥔 사건’ 현장

한동훈
2020년 08월 3일 오후 3:52 업데이트: 2020년 08월 3일 오후 5:02

중국 공산당 정부가 지난달 27일 중국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휴스턴 중국 영사관 폐쇄에 대응한 조치였다.

상하이와 광저우 등 대도시 영사관을 놔두고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청두 영사관을 폐쇄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두 영사관 측 인사의 개인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달린 중국 네티즌의 비난 댓글에서는 중공 당국의 속내가 읽힌다.

대만 출신의 가수로 짐 멀리낵스 청두 총영사의 아내인 좡쭈이의 웨이보 계정에는 “티베트와 신장을 상대로 스파이 짓을 해왔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에 1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중화권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청두 영사관 폐쇄조치가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 관한 미국의 정보수집 능력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두 영사관은 신장, 티베트 지역과 접근성이 높다. 1985년 설립된 이후 쓰촨·윈난·구이저우·티베트·충칭 등 지역의 영사 업무를 수행해왔다. 영사관 직원들이 현장을 다녀오기 위한 명분도 있다.

이번 폐쇄조치로 외신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청두 영사관이 외신에 오르내리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년 전 미중 외교에 메가톤급 폭탄으로 작용했던 ‘왕리쥔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다.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은 2012년 2월 6일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뒤 망명을 요청해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충칭시 서기 보시라이와 그 아내 구카이라이는 각각 뇌물수수와 살인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왕리쥔의 청두 미국 영사관 진입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진행됐다.

보시라이의 수족으로 각종 비리에 개입한 왕리쥔은 2012년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저지른 영국인 사업가 독살사건을 보고했다가 보시라이에게 뺨을 얻어맞은 뒤 위험한 도박을 결심했다. 토사구팽당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미국 쪽에 기밀을 넘기고 망명 신청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왕리쥔은 2012년 2월 6일 여장을 하고 충칭을 몰래 빠져나와 직접 차량을 운전해 400km 떨어진 청두까지 간 뒤 공안들의 감시망을 뚫고 미국 영사관으로 뛰어 들어간다. 당시 그의 손에는 보시라이에 관한 기밀 서류 뭉치와 수십만 달러가 든 트렁크가 들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리쥔은 청두 미 영사관 직원들과 여러 분야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 뒤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고 미국에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시라이는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국 영사관을 포위한 뒤 왕리쥔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조 바이든 부통령을 포함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워싱턴에 모여 긴급회의를 한 끝에 왕리쥔의 망명 신청을 거부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 등은 왕리쥔의 망명을 받아들일 경우 8일 뒤로 예정됐던 시진핑 당시 중공 국가부주석과의 워싱턴 회담이 영향을 받을까 봐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면은 힐러리의 회고록에도 등장했다. 그녀는 왕리쥔을 부패하고 흉악하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며 “왕리쥔은 정치적 망명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사형선고를 받을 게 뻔했다”고 썼다.

힐러리는 “그렇다고 그를 영원히 영사관에 머물게 할 수도 없었다”며 “우리는 베이징 중앙기관에 연락했고, 그들이 증언을 듣고 싶어 한다면 왕리쥔이 스스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왕리쥔의 발언이 얼마나 폭발적인 파급력을 지녔는지, 베이징 당국에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몰랐다”며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동의했고, 베이징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왕리쥔은 청두 미 영사관 진입 30여 시간 만에 제 발로 걸어 나가야 했다. 망명 실패를 확인한 그는 국가안전부 부장인 쿵타오에게 전화를 걸어 SOS 신호를 보냈고 쿵타오는 직접 청두로 가 왕리쥔을 맞이했다.

쿵타오는 저우융캉 당시 정법위 서기의 핵심 측근이다. 왕리쥔은 자신을 내치기로 마음먹은 보스 보시라이 대신 더 막강한 권력자인 저우융캉에게 의존해 살길을 모색한 것이었다.

왕리쥔인 영사관을 나설 때, 영사관 앞에서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무장경찰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보시라이 측 황치판 충칭시장이 왕리쥔을 낚아채려 나선 것이었다. 쿵타오의 국가안전부 요원들은 거세게 맞섰고 결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왕리쥔을 베이징으로 이송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사건 8일 뒤인 2월 14일 당시 시진핑 부주석은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부통령과 회담했다.

왕리쥔이 미국에 넘긴 기밀 서류에는…

미국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왕리쥔이 미국 측에 넘긴 기밀 서류에 대해 알려줬다. 여기에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 정권을 뒤엎으려 했음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포함됐다.

프리비컨은 그 이후 바이든이 시진핑으로부터 ‘오랜 친구’ 대접을 받게 됐다고 했다.

둘의 동반자 관계는 시진핑이 주석으로 취임한 뒤에도 이어졌다. 지난 2013년 12월 바이든 전 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성사된 시진핑의 만남은 예정됐던 45분에서 5시간으로 대폭 늘어났다.

중국정치 전문가 탕징위안은 “이러한 유대감이 중공이 바이든을 미국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왕리쥔이 미국에 넘긴 기밀자료에는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장기밀매에 깊게 개입된 사실도 담겨 있었다. 중국에서 금지돼 수십만 명 이상이 감옥 등에 감금된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탕징위안에 따르면, 왕리쥔이 청두 영사관에 진입하고 나서 39일 뒤인 3월 15일 보시라이가 해임됐고, 20일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서는 ‘생체 장기 적출’과 ‘왕리쥔 생체 장기 적출’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장기 적출’(活摘器官)은 중국 온라인에서 검열되는 단어인데도 이날 해당 키워드에 대한 검색 및 작성 제한이 풀린 것이다.

그리고 23일에는 중공 위생부 부부장인 황제푸가 사형수의 장기를 적출하는 관행을 3~5년 안에 중단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장기이식 개선안을 발표했다.

왕리쥔이 등장한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에단 구트만 | 에포크타임스

이듬해인 2014년 8월에는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에단 구트만의 신간 ‘학살’(The Slaughter) 발표회에서 강제 장기 적출 범죄에 중공 고위층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왕리쥔이 충칭시 공안국장 재직 당시 흰 가운을 입고 랴오닝성의 한 공안국 연구센터에서 해부기법을 지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의사도 아닌 공안국장이 해부기법을 연구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구트만의 설명이었다. 그는 “경찰인 왕리쥔은 랴오닝의 공안국 범죄심리연구센터에서 수천 건의 장기이식과 사형을 집행해 포상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 왕리쥔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구트만은 2000~2008년 사이 중국에서 강제 장기 적출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가 적어도 6만6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탕징위안은 “티베트와 신장에 대한 미국의 정보수집 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중공 당국으로서는 왕리쥔 사건으로 공산당 내부 분열 양상과 끔찍한 인권유린 범죄 증거가 미국으로 넘어간 창구였던 청두 영사관을 어떻게든 문 닫게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