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협력 강조한 文정부 대북평화지수 보수정부보다 낮아

경기연구원 보고서 "남북문제 주도권 북한으로 넘어가"

최창근
2022년 06월 17일 오전 11:48 업데이트: 2022년 06월 17일 오후 12:29

“제가 얻고자 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국제정세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임시적 변화가 아니라 국제정세가 어떻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이야말로 남북이 국제정세에 휘둘리지 않고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되는 길이고 경제적인 공동번영과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5월 10일,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8년 ‘한반도 평화’ 관련 발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교우위’로 내세우는 업적도 남북한 문제이다. 다시 말하여 문재인 정부는 ‘보수’ 정부로 규정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한반도 평화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이와 같은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전면 반박하는 보고서가 출간됐다.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GRI)이 6월 16일 공개한 이슈&진단 500호 ‘다시 보는 남북한의 역학관계’이다. 경기연구원 북부센터 이성우·민소영 연구위원이 공동 집필한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집권기 ‘대북 평화지수’가 박정희‧박근혜 정권 이후 역대 최저치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남북관계에 대해 남한 보수 정부는 북한에 강경하고 진보 정부는 온건하다는 통상적인 평가가 오해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 평화지수를 기준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순으로 북한에 평화적으로 대응했으며 박정희 정부를 제외하면 이명박, 문재인, 박근혜 정부 순으로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하여 남북관계는 이념의 결과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라는 구조적인 현실과 정상적인 국가로서 남북한의 대외관계에 있어 호혜성 원칙의 결과라는 것이다.

역대 정부 중 ‘남한의 대북 평화지수’ 기준으로 ‘안보’를 중시했던 정부와 화해⋅협력을 강조한 정부의 평화지수는 통념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됐다. 군사 정부의 연장이던 노태우 정부(47.78)가 대북평화지수가 가장 높고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47.18)가 두 번째로 높은 대북 평화 수준을 유지한 결과는 통념에 반하는 결과이다. 더하여 화해와 협력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던 이명박 정부(42.42)가 문재인 정부(38.71)보다 대북 관계에서 높은 협력 수준을 유지한 점도 주지할 점이다.

북한의 대남 평화지수도 남한 정부의 이념적 특성과 상관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의 대남 평화지수’ 기준으로 역대 정부 중 안보를 강조했던 보수 정부에 가장 높은 평화 수준을 유지했다는 사실도 통념적 이해에 반하는 결과- 북한은 안보를 강조했던 노태우 정부(46.51), 김영삼 정부(45.19)에 이어 전두환 정부(44.05)에 세 번째로 높은 평화 수준을 유지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김대중 정부(43.72)와 노무현 정부(42.19)에 대해 북한이 높은 수준의 대남 평화지수를 유지했지만, 역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문재인 정부(37.76)가 박정희‧이명박 정부에 비하여 낮은 수준의 평화지수를 기록한 것은 한국 정부의 이념적 특성은 북한의 대남관계에 주요 변수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의 협력·분쟁은 ‘체제 생존 위기’와 같은 구조적 제약이 핵심 변수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남한이 주도하는 협력은 정상회담의 개최가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했지만 분쟁 고조기에 남한의 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 시도는 제한적 효과를 냈다는 결론도 얻었다.

2018년 4월 27일 개최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3차 남북정상회담. | 연합뉴스.

보고서는 남북관계 주도권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즉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했지만 실질적인 한반도 운전자는 남한이 아닌 북한 김정은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북한은 탈냉전 이후 체제 경쟁에서 남한에 추월당하면서 국내적으로 체제 안보를 최우선 순위로 대남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 왔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북한이 주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은 남한의 평화 제안을 북을 흡수통합하려는 공세라고 이해하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평화적 합의에는 쉽게 동의하지만 합의된 내용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체제 안전을 고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고 상황에 따라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군사도발을 통해 분쟁 수준을 관리하면서 남북 협력을 주도해 왔다는 것도 밝혔다.

경기연구원은 인공지능이 작성한 사건계수자료(GDELT; 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에 기초한 남북한 양자관계 자료(1979~2022)를 활용해 역대 정권별 대북 평화지수(남한의 북한에 대한 협력과 분쟁 기준), 대남 평화지수(북한의 남한에 대한 협력과 분쟁 기준)를 백분율(%)로 도출했다. 사건계수자료는 각 매체에 보도된 각 국가의 상호관계 행태(협력‧분쟁)의 빈도‧가중치를 정리한 것이다.

분석 결과, 남한 정부의 대북 평화지수는 ▲노태우 47.78 ▲김영삼 47.18 ▲김대중 44.88 ▲노무현 44.41 ▲전두환 43.22 ▲이명박 42.42 ▲문재인 38.71 ▲박근혜 38.17 ▲박정희 35.29 순이다. 남한 정부 교체 시기를 기준으로 도출한 북한 정권의 대남 평화지수는 ▲노태우 46.51 ▲김영삼 45.19 ▲전두환 44.05 ▲김대중 43.72 ▲노무현 42.19 ▲박정희 40.48 ▲이명박 38.53 ▲문재인 37.76 ▲박근혜 36.63 순으로 나타났다.

경기연구원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평화지수가 낮은 이유로 2006년 이후 본격화된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 등 군사도발을 꼽았다. 아울러 남한의 5.24조치와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대북 제재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대남 평화지수는 김일성 정권(44.77‧1979년 이후 기준), 공산권 붕괴에 따른 고립과 고난의 행군이 일어난 김정일 정권(42.63), 체제 위기에 직면해 핵 개발에 따른 본격적인 국제 제재가 시행됨에도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지속하는 김정은 정권(37.09) 순이었다.

경기연구원은 남북관계가 국제정세와 한국 정권 교체기에 맞물리면서 소강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며 분쟁 차단 및 협력 전환점 마련을 위해 중앙정부의 성급한 관계 개선 시도보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정부 차원의 남북협력 재개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