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 헝다, 중국 정부 개입했지만…사태해결 첩첩산중

김윤호
2021년 12월 6일 오후 11:39 업데이트: 2021년 12월 6일 오후 11:39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가 채무상환 불능을 사실상 인정한 가운데, 중국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 주목된다.

광둥성 정부는 지난 3일 밤 9시께 쉬자인(許家印) 헝다 회장을 긴급 소환하고, 헝다 요청에 따라 정부 실무팀을 헝다에 파견해 리스크 관리와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헝다는 3일 홍콩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2억6000만달러(약 3073억원)의 채무를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상황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헝다가 사실상 해외 채무(달러채) 불이행을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헝다 그룹이 안고 있는 총 192억3600만달러(약 22조7369억원)의 달러 채무 연쇄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기에 국내 채권을 합치면 그룹 전체 채무는 총 2조 위안(약 370조원)에 이른다.

헝다는 이미 세 차례나 달러화 채권 만기일을 지키지 못했으며 30일의 유예기간 말일에야 채무를 이행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겨왔으나 이제 한계점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싱크탱크인 톈쥔차이징(天均財經)의 연구원 런중다오(任重道) “헝다가 연쇄 디폴트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입을 꺼리던 정부가 긴급하게 개입한 것은 상황이 매우 악화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런 연구원은 “오늘(6일) 인민은행은 지준율을 15일부터 0.5%포인트 내린다고 발표했다. 헝다 사태 파장을 축소하기 위한 소규모 양적 완화다. 오는 8일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앞두고 리커창은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야 할 처지”라고 밝혔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중국의 내년 경제 방향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경제회의다. 최근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둔화한 상황에서 부동산 업체의 연쇄 디폴트, 전력대란 등 악재가 겹쳤다.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리커창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반면 중국 정부가 적극적 개입에 나선 만큼 헝다 사태를 일단락 짓고 부동산 업계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대만 경제학자인 황스충(黃世總)은 “중국 정부가 위험한 컨트롤을 하고 있다”면서 “헝다 사태를 통해 중국 부동산 산업 전반을 손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은행은 헝다 위기가 부실한 경영과 무리한 확장 때문이라며 해당 기업의 개별적 사안으로 애써 파장을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황스충은 “헝다는 중국 공산당(중공)이 추진한 정책으로 벌어진 체제적 문제”라며 “개별적 사안으로 볼 수 없고, 부동산 시장을 내수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했던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정부는 토지사용권 매매가 주요 수입원이다. 개발업체와 지방정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아파트 개발 수익의 70%는 지방정부가 가져간다. 헝다 사태로 시진핑 정권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화싱(華興)캐피털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 리중광은 언론에 “높은 레버리지와 빠른 개발주기가 중국 부동산 개발의 주요 모델”이라며 대형 업체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고 말했다. 속도가 빠르고 수익률도 높지만 한번 어긋나면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험이 억눌려졌던 것은 지방정부의 수익과 관련돼, 당국이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헝다의 부실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지방정부가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황스충은 “공산당은 표면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기업의 개별 사안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 체제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인정할 경우, 이미 떨어진 대중의 신뢰와 해외 투자자들의 시선이 더 부정적으로 변해 사태가 급속하게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개별 기업에 얽힌 일이 아니다”라며 “항다 외에도 화양녠(花樣年·FANTASIA), 자자오예(佳兆 ·Kaisa) 등 굵직한 기업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왕은 “중앙정부 감독당국이 헝다 위기에 대한 통합 대처 방안을 내놓기도 전에 각 지방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광둥성 정부는 헝다 그룹 외에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에 진행 중인 사업 중 중단됐거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사업에 관한 보고서를 지난 9월 중 제출받아 검토 중이다. 해당 사업을 완료하는 데 필요한 자금 규모도 함께 조사하고 있다.

대만 싱크탱크의 런 연구원은 “현재 헝다는 중국 전역에서 200여개의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처리하려면 각 지방정부 단위로 다른 개발업체를 찾아 개발 사업을 인수하도록 하면서 자금 관리를 통해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헝다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피해를 본 주택구매자, 헝다 그룹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은 투자자 등 피해자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이들은 각지 헝다 그룹 건물이나 지방정부 청사 앞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황스충은 “헝다를 시작으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면, 부동산 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들도 영향을 받는다. 중앙정부에서부터 지방정부까지 이미 수개월 전부터 헝다 파산에 대비하고 있다”며 헝다 사태 해결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