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내 유일한 범죄는 우리 나라를 맹렬히 수호한 것”

한동훈
2023년 04월 5일 오후 4:21 업데이트: 2023년 04월 5일 오후 10:39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오후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이동해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구소련 수준으로 주저앉았다”고 경고했다.

앞서 이날 낮 뉴욕 맨해튼 법원에 출석해 기소절차에 응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로 돌아온 지 약 2시간 만에 500여 명의 초청 관객 앞에서 연설했다. 이날 약 20분의 연설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 나라를 맹렬하게 수호한 것”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한편, 자신이 부정선거라고 비판했던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해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하의 미국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이제 실패한 국가이자, 쇠퇴하고 있는 국가”라고 진단하고 “이제 이 급진적인 좌파 미치광이들은 사법 시스템을 이용해 선거를 훼방하려 한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둘 수 없다”는 말로 민주당 정권을 비판했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장의 지휘하에 트럼프를 상대로 ‘회사 문서 조작’ 혐의 34개가 제기됐다. 뉴욕주 형법상 회사 문서 조작은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브래그 지검장은 전부 5년 이하 징역형의 중범죄라고 주장했다.

브래그 지검장은 관련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전 변호사(위증죄로 변호사 면허 취소)가 성인물 여성 출연자에게 13만 달러를 지급했으며, 그 밖에도 트럼프와의 불륜설을 주장한 여성 모델, 혼외자설을 제기한 아파트 도어맨에게 각각 입막음을 위해 돈을 지급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감추려 회사 장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러한 장부 조작이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은폐하고 유권자를 속일 의도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주 선거법과 연방 선거법 위반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 없는 일”이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무늬만 공화당원(RINO·공화당 이름표를 걸고 좌파이념을 추종하는 당원)을 포함해 이 사건을 접한 모든 사람, 심지어 열성 민주당원들까지 혐의가 없으며 기소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원인 브래그 지검장이 비밀로 유지해야 할 대배심 내용을 유출한 “범죄자”라고 비판하면서 “그는 최소한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관중은 가장 큰 환호를 보냈다.

트럼프는 민주당과 주류 언론, 소셜미디어와 격전을 치러온 정치 역정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2016년 대선 때부터 자신의 선거 캠프를 감청했으며, 2020년 대선 시 선거 직전에 터진 바이든 아들 헌터의 노트북 스캔들을 거론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그 사건이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의해 묵살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3년 4월 4일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열린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Alex Wong/Getty Images

이어 “그들은 정말로 미국 45대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며 지난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자신의 마러라고 자택을 압수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총기를 소지한 다수의 FBI 요원들로부터 급습을 받았고 그들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져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한 자신을 기소한 브래그 지검장이 지검장 선거 당시 트럼프 저격수를 자처해 지지를 호소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손아귀에 넣겠다고 하면서 선거 운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재판 담당 판사인 후안 메르찬 판사에 대해 “트럼프 혐오 판사”라고 말한 뒤 그의 딸이 2020년 대선 때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 캠프에 참여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이날 트럼프는 미국 물가 상승의 한 중요 요인이자 국제 경제를 뒤흔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론하며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 체제에서 세계가 제3차 대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달러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공화당과 정치분석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라는 전례 없는 움직임이 트럼프를 순교자로 만드는 동시에 정치적 라이벌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사회가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역시 이번 기소와 2020년 대선 때 조지아주 선거 결과에 개입하려 했다는 혐의로 수사받는 것 등을 포함해 민주당 소속 검찰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면서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그들은 투표함에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법을 이용해 우리를 이기려고 한다”고 말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맨해튼 법원 밖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뉴욕시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법원 주변에 3만5천 명의 경찰을 대기시켰다. 시위는 별 소요 사태 없이 마무리됐다.

* 이 기사는 네이선 우스터, 존 호이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