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들춘 내막…中 외교부와 시진핑의 ‘엇박자’

샤샤오창(夏小強)
2017년 11월 30일 오전 11:55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4

11월 1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시아 순방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당시 그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을 인정했고 중국이 언급했던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 철회를 지지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쌍중단’은 여전히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가 말한 시진핑의 입장과 정 반대발언이다.

미리 내막을 들춰버린 트럼프

북핵 문제에 있어서 시진핑과 ‘쌍중단’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트럼프가 최초로 외신에 공개한 것이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시진핑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중국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위협이다” “중국은 쌍중단을 수용할 수 없으며 이는 줄곧 실패했던 방안이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항상 진실을 숨겨왔던 중국 관영매체에게 있어서 트럼프의 이 발언은 북핵 문제의 내막을 들춘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와 같은 방식은 당선 이후 트럼프의 큰 정치적 특징이기도 하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백악관에 들어선 트럼프는 미국 정치계에 깊이 뿌리 박혀있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행을 바꾸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정치가로서의 교활함과 이기심, 이해타산이 거의 없다. 입장표명을 할 때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는 ‘트위터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창조해 미국과 전 세계 정치계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이 같은 트럼프의 정치스타일은 향후 그의 정치 활동과 미국의 정치 영역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내막을 들추고 난 후 중국 외교부는 왜 시진핑과 다른 목소리를 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가능성: 시진핑에 대한 장쩌민파 외교부의 대항

중국 외교부는 줄곧 장쩌민 일파의 손아귀에 있었다. 1993년부터 2013년 까지 첸치천(钱其琛), 탕자쉬안(唐家璇), 리자오싱(李肇星), 양제츠(杨洁篪) 등 4명의 외교부 부장(장관급) 모두가 장쩌민파였다. 특히 1998년에서 2001년 주미대사직에 있었던 리자오싱은 장쩌민이 해외로 폭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유능한 수하 노릇을 해왔다. 외교적으로는 장쩌민의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대변하고 후진타오(胡锦涛)를 감독, 통제했다.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후 직면한 가장 큰 압박과 위기는 외교적, 외부적 상황에 기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내부로부터 시작됐으며 주로 장쩌민파가 주도했다. 그들은 시 주석을 겨냥한 지속적인 정변 모의와 권력 찬탈 시도를 되풀이했다. 시 주석은 취임 5년 이래 지속적으로 반부패와 ‘호랑이(부패 고위관료)’ 사냥을 해왔는데 이는 장쩌민 일파의 정변 시도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외교는 내정의 연속이었다. 시 주석은 집권 후 지속적인 해외 방문을 통해 미국 등 강대국 및 주변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일본과의 관계 완화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장쩌민파는 외교 시스템을 장악해 국제 이슈를 조성하여 정적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공산당 내부의 정치게임에 활용했다. 시진핑의 취임 이후에도 장쩌민파는 이러한 조작을 계속했다.

시진핑이 취임하기 전에는 장쩌민파가 북한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었고 김정일 정권은 장쩌민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저우융캉은(周永康) 중국이 김정일·김정은 부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장쩌민파이자 상무위원이었던 장더장(張德江)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에서 2년동안 유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장쩌민의 군사 참모인 쩡칭홍(曾慶紅) 역시 김정일과 가까운 사이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여전히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정변 실패 이후에 도피할 퇴로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장쩌민 세력은 줄곧 북한과 긴밀한 협력을 해 왔으며 북한 문제 또한 이들이 시진핑에 대항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수차례 핵실험은 모두 공산당의 고위층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뤄졌다. 이는 장쩌민파가 시진핑의 반부패 압박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번 중국 외교부와 시진핑의 엇박자 역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 외교부의 관성적 움직임

시진핑이 취임한 후 외교 방면에서 장쩌민파의 구속과 공산당 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4년 7월 3일에서 4일까지 시진핑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는 2013년 국가주석이 된 이후 한국만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그 전에는 중국의 국가주석이 북한을 먼저 방문하고 한국을 방문 했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그밖에 시진핑은 중국의 외교적 관례를 깨뜨리고 다른 국가의 야당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인도의 소냐 간디(Sonia Gandhi) 국민회의당 대표, 태국의 아피시트 웨차치와(Abhisit Vejjajia) 민주당 대표, 뉴질랜드의 노동당 전대표에서 현 대표가 된 앤드루 리틀(Andrew Little) 등 야당의 지도자들을 직접 접견하기도 했다. 그 중 미얀마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끄는 아웅 산 수지(Aung San Suu Kyi)와의 만남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시진핑은 취임 이후 외교방면에서 이전 공산당 및 장쩌민파와 다른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이례적인 전략은 북한 외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가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대북 외교방침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체제하에서 외교부의 경직된 시스템엔 여전히 관성이 작용하고 있다. 외교부 관료들은 여전히 중국 외교 시스템의 관례에 따라 대변하고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바로 공산당 체제의 관성적 작용에 따른 결과이다. 이들은 공산당 체제하에서 국한된 언어사용과 사고를 통해 공산당의 경직된 ‘투쟁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번째 가능성: 앞뒤가 다른 중국 공산당의 본성

중국 공산당 대외 선전의 언어체계에서 공산당의 이미지는 영원히 ‘위광정(偉光正,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하다)’이다. 하지만 가장 진실한 증거와 사실들이 공산당의 속임수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거짓된 선전을 하고 부인한다. 이는 공산당 체제 자체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들의 앞뒤가 다른 행보는 공산당의 존재와 통치를 유지하는 ‘창타이(常態·normal)’, 즉 정상적 상태이다.

결론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 이후,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한 첫 서방 정상이 됐다. 게다가 당시 그가 중국에서 최고급 대우를 받은 것으로 보아 시진핑의 향후 외교의 무게중심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쏠릴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 외교부는 지금까지 시진핑의 보조를 한참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또한 공산당 체제 자체가 시진핑 집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공산당 체제유지로 인해 초래하는 최종 파멸적인 결과는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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