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동맹의 새 출발과 제2단계 핵대응 전략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06월 1일 오후 6:33 업데이트: 2022년 06월 1일 오후 6:33

  5월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정치, 안보, 외교, 경제, 교육, 언론, 사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폐들이 쌓인 상태에서, 그리고 반지성주의적 왜곡이 보편화된 후진적 정치풍토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각종 적폐를 청산하고 선진정책들을 주도해 나가기는 절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보 분야와 관련해서는 한국군 재건, 한미동맹 새 출발, 북핵 대응 등 시급 과제들이 새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중에 5·21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의 새 출발과 핵위협 대응이라는 과제에 있어 성과와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다. 즉, 전임 정부의 친북·친중 기조로 인해 엉클어진 한미동맹의 복원이 시급한 시점에 열린 두 정상 간의 만남은 동맹의 새 출발을 기약한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지만, 나날이 커지는 북핵 및 대륙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동맹 신뢰 복원과 연합방위태세 재정비가 핵심   

  담긴 표현들만을 놓고 본다면, 윤-바이든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2021년 5월 21일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의 복사판이었다. 2021년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연합 방위태세와 확대억제 제공을 통해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했고, 한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한·미·일 3국 안보협력, 4국 안보대화(QUAD)를 통한 지역 다자주의 협력의 중요성 등 미국의 주문사항들에 포용했다. 사이버 안보, 핵무기 비확산과 원자력 안전, 기후변화·보건위기 공동대처, 신흥기술 발전과 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통해 동맹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데에도 합의했다. 그런데도 문-바이든 공동성명을 ‘동맹의 새 출발’로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북·친중·탈미·반일’ 기조를 견지해오던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한미동맹 정상화를 지향하는 공동성명을 내놓았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랬다. 문재인 정부는 문-바이든 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핵을 방기하면서 친중 기조를 이어나갔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불참했으며,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감으로써 한·미·일 안보 공조의 틀을 파괴했다. 거기에 방위비분담금 논란, 연합훈련의 폐지·축소, 재미 친북 단체들의 로비와 미 하원의 한반도 평화법안(H.R. 3446) 발의 등이 가세하면서 한미동맹은 크게 이완되었다. 미국 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가 혈맹의 근간을 흔들었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론’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윤-바이든 공동성명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많이 다르다. 문-바이든 공동성명과 마찬가지로 윤-바이든 공동성명도 연합방위태세 재확인, 확대억제 제공, 한·미·일 3국 안보협력, 글로벌 공급망 구축,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수립,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유지, 경제기술 파트너십, 글로벌 포괄적 가치동맹 등 비슷한 내용들을 담아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후보 및 당선인 시절 동안 북한 도발에 대한 확고한 대처, 동맹 강화, 과도한 친중 기조 조정, 대일관계 개선 등을 강조했었고, 대통령을 보좌하여 동맹정책을 펼쳐나갈 고위 담당자들의 이념적 성향과 목표도 문재인 정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이번 회담이 실제로 동맹신뢰를 복원하고 연합방위태세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국민이 많으며, 이들은 향후 윤석열 정부가 북핵, 연합연습, 전작권, 방위비분담금, 쿼드(QUAD), 한·미·일 안보공조 등 중요 동맹 아젠다들을 어떻게 다루어나가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핵 위협에 대한 ‘3단계 대응전략’

  현재 한국은 당면한 북핵 위협 및 신냉전과 함께 날로 엄중해지는 대륙으로부터의 핵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 핵 위협에 대한 대응전략은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단계 대응전략이란 지금까지 해왔듯 한국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회원국으로서 비핵 의무를 준수하면서 동맹 공조와 국제 공조를 통해 유화, 압박, 제재, 외교, 협상 등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을 포기시키는 전략이다. 제2단계 전략은 한국이 여전히 NPT의 비핵 의무를 다하되 동맹 핵역량의 획기적인 강화를 통해 한반도에 핵 균형을 이루고 동시에 대륙으로부터의 핵 위협도 견제하는 것을 말한다. 제3단계 전략은 북핵 및 대륙으로부터의 핵 위협이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는 경우에 대비하는 것으로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들이 동맹 합의하에서 자위적 핵무장을 결행하여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핵 균형을 꾀하는 것이며, 이 단계에서는 가칭 ‘민주주의 핵동맹(Democratic Nuclear Alliance)’과 같은 미국 주도의 새로운 안보기구가 창설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핵 대응전략은 제1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최근의 북핵 상황이나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고려할 때 한미 양국은 제2단계 전략에 돌입하면서 제3단계 전략도 예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한은 2006년 핵실험 직후 “동족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했고, 후에는 “대미 전쟁 억제용일 뿐이며 사용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핵국에 대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새로이 핵을 개발하는 신생 핵보유국이 국제사회의 견제와 제재를 회피하면서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안착시키는 ‘겸손 코스프레’로 시작했지만, 핵무력 증강과 함께 핵강국으로서의 당당함과 오만을 과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왔다. 이후 2013년에는 「핵보유법」을 제정하면서 “한국이 핵보유국인 미국과 야합하여 맞설 경우 핵을 사용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포함했다. 2022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 억제이지만 우리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다른 사명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고, 이후 군 수뇌부와의 담화 자리에서도 “핵을 포함한 모든 위협을 선제적으로 제압·분쇄하겠다”라고 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도 5월 5일 담화를 통해 그 전의 윤석열 당선인과 서욱 국방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을 반박했고, “전쟁 시 초기에 주도권을 잡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시키는 것이 핵무력의 사명”이라는 말로 사실상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를 선언했다.

  미사일 발사도 줄기차게 이어갔다. 북한은 2022년에만 17회에 걸쳐 총 23발의 각종 미사일을 쏘았는데, 거기에는 대륙간탄도탄(ICBM)급 미사일 발사 6회, 극초음속 미사일(HGV) 2회, 변칙기동 미사일(Pull-up SRBM) 4회,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 1회,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1회,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1회 등이 포함되었다. 대륙간탄도탄급 화성-17과 화성-15는 미국을 겁박하여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수단이며, 사거리 5,000km인 화성-12는 한반도에서 3,200km 떨어진 괌도를 위협할 수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등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방어망을 무력화하는 대남용 핵병기들이다. ‘북한판 에이테킴스’로 불리는 화성-11호는 사거리 400km의 단거리 미사일로서 이동발사대에 실려 터널이나 숲속에 대기하다가 순식간에 나와서 발사할 수 있으며 비행고도가 40여km로 낮아 미군의 사드(THAAD) 체계로 방어하기 어렵다. 이렇듯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는 미사일들을 필요한 시점에 발사하거나 과시하는 ‘광란의 미사일 정치’를 펼쳐왔다. 이와 비례하여 핵전략도 약소국형 억제전략에서 강대국형 ‘핵사용·핵전투’ 전략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급기야 최근에는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까지 공언했다. 이는 제2의 6·25 전쟁 발발 시 곧바로 핵전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북핵 위협의 이런 양적·질적 증가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북핵 대응, 제2단계 전략 돌입해야

  한국군 재건, 한미동맹 새출발, 북핵 대응 등은 전임 정부가 방기한 중요 안보과제들로서 이제는 고스란히 윤석열 정부의 책임으로 이관되었으며, 모두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핵동기(核動機)를 가진 북한이 중·러의 비호까지 받으면서 핵 개발을 해온 상황에서 유화 또는 강경 기조, 식량난, 코로나 확산, 제재 등으로 핵 포기를 설득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과도한 친중 정책으로 중국의 팽창주의 기세를 포기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한 허언(虛言)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동맹의 핵역량을 극대화하여 ‘핵 균형’을 이루어나가야 하며 그것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을 상쇄·억제하면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주의를 견제해나가는 제2단계 대응전략에 돌입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내 또는 인근 지역이나 해상에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기 위한 협의, 핵우산 공약을 포함하는 동맹조약 개정, 북한의 핵사용을 전제로 하는 작계 5015의 개정 등이 시급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윤-바이든 공동성명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평화적 핵해결’ 등 지금까지 사용해온 표현들을 반복하는 데 그친 것은 유감스럽지만, 양국이 동맹의 새 출발에 합의한 이상 앞으로 이어질 양국 간 전략대화에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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