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푸틴, 장기전·지구전으로 가나…우크라이나는 전쟁터일 뿐

박상후 /국제관계,역사문화평론가
2022년 03월 7일 오후 8:10 업데이트: 2022년 03월 10일 오후 5:06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게 참 많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기 위해 역정보는 물론이고 가짜뉴스도 많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푸틴이 약 2주 만에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을 궤멸시키고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전격전을 하려면 숫적으로 압도적인 육군과 공군의 최신예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전략폭격기로 융단 폭격을 한다거나 막강한 포병화력으로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엄청난 대수의 최신예 전차로 밀어붙여 종심을 돌파하는 양상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양국의 주공이 서로 교전했다는 뉴스는 없고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애국심에서 화염병으로 저항한다거나 할머니도 총을 들었다는 등등의 감성에 호소하는 에피소드로 넘쳐났습니다. 

최근 영국의 BBC 64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러시아의 군용 차량 행렬이 사흘이나 멈춰섰던 점에 주목했습니다. 연료가 부족해 중간에 멈춰섰다는데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에서 연료가 부족하다는 게 납득하기가 힘들고 대군이 진격하는데 그 정도 보급물자도 준비를 안 했다는 것도 미심쩍습니다. 

이 밖에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격렬해 주춤하고 있다거나 러시아군 차량이 중국산 불량품을 사용해 중간에 펑크가 났다는 등의 여러 추측만 난무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하지만 이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때문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계획이 속전속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지구전을 계획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이는 푸틴이 이미 언급한 것으로, 그는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결투라고 말했습니다. 전쟁터가 우크라이나일 뿐입니다.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항우 휘하의 장수가 검무를 추는 목적은 유방을 죽이는 데 있다(項莊舞劍, 意在沛公)’, 즉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점령만이 목표라면 속전속결이 맞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속전속결로는 안 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장악하면 미국으로서는 피해를 입는 게 거의 없습니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크게 경제 제재를 당했습니다. 푸틴과 그 측근에 대한 재산동결조치, SWIFT 결제시스템 퇴출, 전략 물품의 금수 조치 등 미국과 서방은 쓸 수 있는 경제제재카드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특히 푸틴은 전범으로 현상수배를 당하는 등 모든 수모를 당했습니다. 바이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푸틴이 직접 대응하지는 않았지만 미국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나마 생각했을 겁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 분위기도 1차와 2차가 다릅니다. 2 28 1차 정전협상을 할 때는 양측이 모두 긴장한 상태였습니다. 3 3 2차 협상 때는 긴장이 다소 누그러져 서로 악수도 하고 좀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적대 행위 중지나 철군 같은 내용은 합의되지 않았지만 난민들이 빠져나갈 인도적 회랑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섬멸하겠다고 전력을 다한 전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세력을 강하게 규탄하긴 했지만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정규군이나 민간인을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요 며칠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몇몇 도시에 대해 무차별 포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늘 변칙적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받게될 여파가 큽니다. 

우선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합니다. 현재까지 유럽 각국으로 빠져나간 우크라이나 난민은 100만을 돌파했습니다. 이 수치는 전쟁 발발 7일 만에 불어난 겁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들은 귀국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난민 총수가 천만이 넘을지 그 이상이 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당장 불어난 난민들은 대서양 건너의 미국으로서는 별 영향이 없지만 인접 유럽국으로서는 큰 부담입니다. 또 우크라이나에 고립된 난민들에게도 인도주의적 원조를 해야 하는데 그 경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유럽도 재정 부담으로 견디기가 힘듭니다. 

난민 문제 때문에 유럽이 러시아에 전쟁을 멈춰달라고 타협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원유 가격과 식량 가격이 폭등하게 됩니다. 원유 가격은 이미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었습니다. 2014년 이후 최고치인데 앞으로 배럴당 150달러가 될 것이란 예측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문제는 심각합니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르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힘듭니다. 연쇄반응으로 경제가 크게 망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바이든 정권은 2022년 가을에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대외정책을 표심에 많이 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푸틴이 전쟁을 좀 더 길게 가져가면 바이든에게 이로울 게 없습니다. 

바이든이 자신에게 제재를 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푸틴의 발언으로 보면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2차대전과 냉전으로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발휘해온 단극 체제의 주도권이 흔들리게 됩니다. 러시아와 유럽 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러시아 외교부 부부장 알렉산드르 그루슈코는 NATO가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개입하고 있다면서 NATO와의 관계가 종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러시아가 용인했던 서구의 안전보장제도와 규칙에 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나마 국제질서라고 존중했던 미국과 서방의 안보체제를 이제는 무시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모두 곤란해집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세운 안보규칙은 무력으로 한 국가 영토의 현상을 바꾸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그 사례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무력으로 영토를 침탈했다고 해서 미국이 서방 연합군을 규합해 치른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이 세운 영토 현상 변경 금지 원칙을 그대로 무시했습니다. 미국의 국제 질서 원칙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살라미 전술을 적용해 도시들을 천천히 하나씩 병탄할 수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것보다 미국으로 하여금 안절부절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러시아에 모든 제재 조치를 취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습니다. 

이제는 푸틴 차례입니다. 서방세계를 괴롭히는 도구로 우크라이나를 계속 이용할 것이란 추론도 가능합니다. 만약 푸틴이 마음먹고 장기전으로 가려면 미 대선이 있는 2024년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러 관계는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박상후의 시사논평 프로그램문명개화지면 중계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