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푸틴의 핵사용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미칠 영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10월 12일 오전 10:50 업데이트: 2022년 10월 12일 오전 11:29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푸틴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핵 사용을 위협하는 가운데 서방의 대응도 다급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특별군사작전’이 난관에 부닥치면서 푸틴이 처음으로 핵 사용 가능성을 비쳤을 때만 해도 서방은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9월 21일 푸틴이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하면서, 그리고 9월 30일 우크라이나내 점령지 네 곳을 합병하는 조약에 서명한 직후 재차 핵사용 가능성을 경고하고 실제로 핵운용 부대가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2차 대전 중에 사용된 모든 무기들의 폭발력 30배가 넘는 100메가톤짜리 수폭을 장착할 수 있는 핵어뢰 ‘포세이돈’을 탑재한 스텔스 핵잠수함 ‘벨고로드(Belgorod)호’가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핵종말(nuclear doomsday) 공포는 확산 일로에 있다. 그러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6일 민주당 행사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구종말 핵전쟁(nuclear armageddon) 가능성’을 언급했고, “푸틴의 핵위협을 농담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제 세계의 눈은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푸틴의 위험한 불장난을 만류할 수 있는 세력은 미국뿐이며 미국의 행동을 결정하는 지도자가 바이든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시기에 미국 대통령이 보여야 할 자세는 핵전쟁을 불사하는 단호함이며 그것이 핵 사용과 핵전쟁 그리고 핵종말을 막을 가능성이 가장 큰 처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보이는 단 한 번의 우유부단(優柔不斷)과 좌고우면(左顧右眄)은 푸틴으로 하여금 전 인류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혼돈 속으로 몰아넣게 할 수도 있다. 즉, 미국이 러시아의 핵 사용을 저지하지 못하고 핵 사용 이후에도 핵전쟁을 꺼려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푸틴 대통령 개인의 ‘추악한 승리’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 여파는 곧바로 대만해협과 한반도로 파급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단호한 자세 보여야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미국의 핵대응 가능성을 부인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즉, 미국이나 나토가 핵전쟁 확전을 두려워하여 핵대응보다는 재래군사력을 통한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나 나토 차원의 재래군사적 대응만 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고, 아예 군사적 대응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경제적·외교적 대응에 그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결론부터 말해 이런 분석들은 푸틴의 핵 사용을 부추기기만 할 뿐 위기 해소에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푸틴에게는 핵 사용을 부추기는 충동 요인도 있고 만류하는 억제 요인도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으로 수세에 몰린 푸틴으로서는 국가 자존심과 개인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수준에서 전쟁을 끝내고자 하여 ‘종전을 위한 핵 사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며, 내년 봄 재공세를 염두에 두고 혹한기 동안 제반 준비를 하고자 하는 ‘시간 벌기용 핵 사용’도 고려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졸전에 실망한 러시아 내 매파들의 정치 공세 또는 악화된 국민 여론으로 인한 ‘정치적 사망을 피하기 위한 핵사용’도 고려할 수 있다. 반면, 핵사용을 만류하는 최대 억제 요인은 미국 또는 나토의 핵대응으로 인한 핵전쟁 발발 가능성과 그 이후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해, 어느 일방에 의해 핵무기가 사용되고 나면 양측 모두는 상대의 굴복을 얻어내기 위해 매 단계에서 상대가 사용한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대응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핵전쟁은 이런 ‘확전의 사닥다리(ladder of escalation)’을 타고 ‘과시적’ 핵 사용에서 ‘전술적’ 핵 사용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존재 기반 자체를 말살하는 ‘전략적’ 핵 사용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확전 가능성 때문에 1983년 교황 바오로 2세(John Paul II)는 세계 주요 지도자들에게 보낸 교서(Pastoral Letter)를 통해 ‘핵 사용’ 전략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억제를 위한 대량 보복용으로만 핵을 보유하는 상호확실파괴(MAD) 전략을 억제 실패 시 전 인류를 말살하는 부도덕한 전략으로 비판하면서 작은 핵전쟁도 있을 수 있으므로 실제 사용을 전제로 핵을 운용해야 한다는 ‘핵사용’ 전략을 더욱 부도덕한 전략으로 비판했다. 즉, 이론상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는 확전 가능성 때문에 후자가 더욱 위험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도 핵 사용이 인류 종말 핵전쟁을 촉발하고 자신이 ‘인류의 원흉’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푸틴의 핵 사용 결단을 만류하는 최대 억제 요인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핵대응’을 조기에 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대비 태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보다는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 핵전쟁을 막았던 젊은 케네디 대통령의 처방이었다. 러시아의 핵 사용 이후 미국이 실제로 핵대응을 하고 말고는 차후의 문제며, 일단은 푸틴의 핵 사용을 만류하는 것이 급선무다.  

 푸틴의 ‘추악한 승리’가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미칠 여파     

 미국이 확고한 핵대응을 천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푸틴이 이를 미국의 핵대응 의지 부재로 판단하여 핵단추를 누른다면, 그리고 그 이후 대응 방법을 놓고 미국과 나토가 혼란을 거듭하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이 원하는 조건으로 종결될 수 있으며 그의 정치적 생환도 가능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애초부터 러시아 국민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귀결은 푸틴 대통령 개인의 ‘추악한 승리’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중국과 북한을 고무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지난 9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대만은 사실상의 비상상태에 돌입해야 한다. 이번 당대회에서 2012년 집권 시부터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면서 팽창주의 기조를 고수했고 유별나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면서 빈번하게 대만 침공을 위협해온 중국의 권위주의 지도자 시진핑의 장기 집권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어 있다. 결론은 2017년 10월 제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군단(习家军)이 당을 삭쓸이하고 이듬해 3월 전인대가 ‘찬성 2958표 반대 2표’로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을 때부터 이미 나와 있었다. 여기에다 푸틴이 핵 사용을 통해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기정사실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후 대만해협 긴장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은 ‘대만 피침 시 개입’을 거듭 천명한 상태이며 일본도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을 통해 유사시 군사협력 공약을 강화한 마당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미국을 도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즉, 곧바로 국제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핵 사용 불똥’은 한반도에도 불씨를 키울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상당 수준의 핵무기 표준화·경량화·다종화 등을 이루고 ‘전술핵 훈련’까지 실시하는 세계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이다. 게다가 ‘억제용 핵보유’라는 초기 겸손 모드의 핵전략을 졸업(?)하고 지금은 ‘북한판 핵태세검토서(NPR)’에 해당하는 ‘핵무력정책법’ 제정을 통해 공공연하게 ‘핵사용 전략’을 표방하고 있으며, 남쪽을 향해서는 ‘선제 핵사용 불사’ 독트린까지 천명했다. 이런 북한이라면 핵위협을 앞세우고 서해도서를 침략하거나 재래도발을 강행할 수 있으며 핵강압(nuclear coercion)’을 통해 탈취한 지역을 기정사실화하려 할 수 있다. 5월 5일 김여정 당 부위원장이 담화에서 밝혔듯 “전쟁 발발 시 상대의 전쟁 수행 의지를 말살하기 위해” 초기에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어쨌든 푸틴 대통령이 핵 사용으로 ‘추악한 승리’를 거머잡는 전례를 남긴다면 그것이 북한의 도발욕을 자극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우며 대만해협의 군사적 충돌까지 겹친다면 그것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전략적 이동’을 의미할 수 있어 한국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북한의 ‘핵을 앞세운 오기 부림’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나

 현재 세계에서 공개적으로 핵 사용을 위협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북한이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핵위기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단순한 비핵화 외교로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경고해왔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대북 ‘핵 포기 설득 외교’에 연연해왔다. 그러는 동안 한국은 점점 더 깊은 핵인질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자고로 외교란 힘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치를 발휘한다. 미국이 핵우산과 관련하여 ‘전략적 명확성’을 천명하지 않는 상태에서 북한이 ‘핵을 앞세운 오기 부림’으로 나올 때 한국의 대처 방안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푸틴의 핵 사용 위협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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