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 이후 한국의 동맹외교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3년 02월 14일 오후 8:53 업데이트: 2023년 02월 14일 오후 8:53

한국의 핵무장 열풍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핵위협은 가중되고 있고 미국의 핵우산 공약은 ‘구체성이 부족한 레토릭’ 차원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국방·외교부 업무보고에서 “원한다면 우리도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국민적 여망을 대변한 당연한 발언이었다. 그동안 핵무장을 외쳐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적 핵무장 열기는 반세기 만에 열린 ‘기회의 창’이다. 그래서 그들은 윤 대통령이 “현실적으로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지켜야 한다”는 후속 발언을 내놓자 “핵무장을 하겠다고 해놓고 식언(食言)하는 것이냐”며 실망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동맹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공언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고 윤 대통령도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므로 아직은 식언한 것이 없다.

한국의 핵무장 여론은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동맹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신뢰성을 되짚어 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것은 1970년 NPT 발효 이후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정책, 즉 아시아 동맹국들의 독자 핵무장을 만류하면서 대신 핵우산으로 보호해주는 정책을 뒤집어야 하기에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논의는 ‘한국의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위한 확대억제 강화 방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 확대억제 강화라는 것이 ‘남북 간 핵균형’에 이르지 못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대통령은 식언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정밀한 고난도 동맹외교가 요구되는 시기다.

윤 대통령이 제기한 것은 ‘제1단계 핵균형’

그동안 필자는 현 단계에서는 동맹의 핵역량으로 남북 간 핵균형을 구축하되 북핵 위협이 더 가중되는 제2단계에서는 동맹 합의하에 자체 핵무장을 하고 거기에 더하여 중국발 안보위협이 심각한 제3단계에 이르면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핵무장 상태에서 미국과 ‘민주주의 핵동맹’을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것이 소위 ‘2단계 핵균형론’ 또는 ‘3단계 핵균형론’이며 필자는 한미안보연구회(COKUSS) 제35차(2021년 12월 워싱턴) 및 제36차 국제학술회의(2022년 9월 서울)에서 연거푸 동 내용을 발표했었다. 최근 윤 대통령의 핵 발언은 이 중에서 제1단계 핵균형론에 해당하며 핵무장 발언은 특정 상황을 전제한 가정적 화법으로 한 말이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2월 30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美 핵전력을 가지고 한미 공동으로 기획(joint planning)하고 연습(joint exercise)하겠다”고 했고 1월 10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는 “한미가 공히 북핵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어서 1월 11일 국방·외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미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안에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한 1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존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나와 한국 국민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미국의 확대억제를 상당히 신뢰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지금은 동맹의 핵역량을 활용하여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맞으며 NPT를 탈퇴해야 하는 핵무장은 다음 단계에서 고민할 문제라는 취지였다. 즉, 제1단계 핵균형을 제기한 것이지 핵무장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핵무장을 공언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당장 ‘동맹을 통한 핵균형’ 단계를 건너뛰어 ‘핵무장’을 한미 간 현안으로 가져가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미 입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출발점

미국 쪽에서 들려오는 발언들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핵 발언을 전후하여 여러 전문가들과 싱크탱크들이 한국의 핵무장 여론에 대해 “이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으며, 미 외교협회 스콧 스나이더(Scott Snyder) 박사와 같은 인사들이 나서서 “이제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사태를 분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미 정부도 윤 대통령의 발언 전부터 확대억제 강화 차원에서 대북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2022년 10월에 발표한 핵태세검토서(NPR)와 12월 제54차 한미 국방장관회담(SCM)의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김정은 정권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럼에도 미 정부의 관리들이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들은 주로 ‘지금보다는 좀 더 강력한 확대억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 핵무장 용인’은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 아젠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비하는 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협의’를 제안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1월 18일 자 보고서나 전술핵 재배치 시나리오들을 소개한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안킷 판다(Ankit Panda) 박사의 글은 ‘전술핵 재배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내용을 다룬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전술핵 재배치를 분명하게 건의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CSIS 보고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사전대비를 협의해보자는 것이고 판다 박사도 전술핵 재배치가 북한의 강력한 선제공격 동기를 촉발하고 러시아의 대응을 유발한다는 부정적 영향을 기술하고 있다.

미 정부의 내심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은 CEIP의 토비 달턴(Toby Dalton) 박사나 전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소장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Hecker) 박사일 것이다. 달턴 박사는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핵무장을 ‘중국과 북한의 압박과 위협을 더욱 조장하는 비생산적이고 위험한 선택’이라고 정의했고, 헤커 박사는 1월 30일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의 세미나에서 “핵무장은 한국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할 것이며 작은 군사충돌이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면서 “미국의 반확산 정책이 불변인 가운데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하면 한미 군사동맹과 경제협력이 중단되고 한국 원전의 수출길이 막히며 한국이 이룩해온 경제 기적도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로서 미국 정부의 속내도 이런 정도일 것이며 그것이 북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동맹외교의 출발점이다. 미국에서 갑자기 한국 핵무장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핵무장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 본다면 출발점을 잘못 찍는 것이 된다.

당장은 제1단계 핵균형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제1단계 핵균형이란 미국이 제공하는 확대억제 능력을 ‘남북 간 핵균형’을 이루는 수준까지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며 핵심은 전술핵 재배치일 것이다. 동맹조약 강화, 공동 핵연습, 미 전략자산 전개, 국방장관 회담의 공동성명이나 전략서를 통한 확대억제 재확인 등은 부수적인 요소들이다. 현재 미 정부의 언급이나 미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확대억제 강화 방안들은 대개 부수적 요소에 국한되고 있으며, 전술핵 재배치를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의견은 거의 없다. 한국 정부는 이런 여건에서 동맹으로부터 전술핵 재배치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들을 얻어내야 한다. 만약 좀 더 빈번해진 미 전략자산 전개, 구체성이 부족한 공동 핵연습, 단순한 외교적 레토릭의 강화 등의 차원에 그친다면 역사는 윤 대통령의 핵 관련 발언들을 ‘정치적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일회성 말폭탄’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금년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윤석열 정부의 동맹외교 역량을 평가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요컨대 한국이 당면한 동맹외교 과제는 ‘핵균형이 가능한 수준의 확대억제 강화’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미래에 대비하는 핵무장 잠재력을 함양해나가는 것이다. 현재로서 후자는 미국이 불편해할 아젠다일 것이지만 동맹외교로 돌파해나가야 하는 대상이다. 한국 국민의 높은 핵무장 지지 여론은 정부가 이런 단계를 밟아나가는 데 긴요한 ‘외교적 지렛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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