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하는 핵전쟁’과 ‘원하지 않는 핵전쟁’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12월 14일 오후 7:27 업데이트: 2022년 12월 14일 오후 7:27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결사 항전에 직면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핵 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서방은 처음에는 진지하게 듣지 않았지만 지난 9월 푸틴이 재차 핵 사용 가능성을 경고하자 처음으로 ‘지구종말 핵전쟁(nuclear armageddon)’ 가능성을 우려했다. 12월 초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 내에 있는 공군기지 세 곳을 타격하자 푸틴 대통령은 7일 TV 방송을 통해 “핵무기는 방어 수단이자 잠재적 반격 수단”이라고 강조했고, 선제핵사용 포기(NFU) 선언도 거부했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북극해나 흑해로 발사하여 우크라이나에 공포심을 심어 주는 ‘과시적(demonstrative)’ 핵 사용이나 우크라이나 내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전술적(tactical) 핵사용’을 택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인구 밀집 지역이나 산업 밀집 지역을 파괴하는 ‘전략적(strategic) 핵사용’을 검토할 수 있다. 러시아의 핵사용에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눈에는 눈’ 식으로 대응한다면 ‘제한적’ 핵사용이 핵전쟁으로 확대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며, 현재로서 푸틴의 핵사용 의지가 어느 수준인지 가늠할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푸틴의 거듭되는 핵사용 위협으로 인해 다시 한번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며, 핵무력을 질적 양적으로 증강하고 있는 북한이나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란도 핵위기를 고조하는 요인이다.

‘비이성적 요인’이 촉발한 핵전쟁 위기

  미·소가 수만 개씩의 핵을 보유한 채 대치했던 냉전 동안 핵전쟁 발발을 억제한 ‘효자’는 ‘상호확실파괴(MAD) 전략’으로 불리는 대량보복전략이었다. 즉, 상대가 핵공격을 가해오면 반드시 대량보복으로 응징한다는 의지·능력을 과시하여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이 확실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어느 쪽이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하에서 핵무기는 억제용일 뿐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정의되며, 이 전략은 현재에도 핵보유국들 간 핵전쟁을 억제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대량보복전략에는 ‘비이성적 요인(irrational factors)’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즉, 조기경보 체제의 오경보, 컴퓨터 에러, 군사훈련과 실제 공격과의 미구분, 결정권자의 과대망상증이나 정신 이상, 반란·테러 세력의 핵발사 등 비정상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핵결정권자들이 정상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원하지 않는 핵전쟁(unwanted nuclear war)’이 발발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뻔한 적은 무수히 많다.

  냉전의 절정기였던 1979년 9월 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컴퓨터 에러로 소련이 ICBM 250발을 발사했다는 가짜 경보를 발해 백악관이 핵대응을 준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983년 9월에는 소련의 조기경보 레이더가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로 오인하여 미국 ICBM 5기가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를 발했다. MAD 전략의 메뉴얼만을 기계적으로 따랐다면 소련은 25분 이내에 보복 핵미사일들을 발사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기경보실 당직사령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중령은 오경보로 판단하여 ‘미사일 공격’으로 보고하지 않았고, 그 결단으로 세계는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1995년 1월 25일 노르웨이는 미국과 합작으로 북극광을 연구하기 위한 과학위성(Black Brant XII)을 발사한다고 발표한 뒤 북쪽 해안에서 발사했다. 이 발표를 모르고 있던 러시아는 핵공격으로 오인하여 전략로켓군을 발사대기 상태로 돌입시켰고, 엘친(Boris Yeltsin) 대통령은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 함께 핵가방을 열고 대기했다. 이후 옐친은 위성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핵경보를 해제했다. 이렇듯 냉전 기간 동안 오판·실수·컴퓨터에러 등 비이성적 요인으로 핵전쟁 위기가 초래된 사례는 크고 작은 것들을 합쳐 150회가 넘는다.

‘이성적 결정’으로 핵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지도자라면 공멸하는 핵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상적 과정을 거치면서 내린 이성적인 결정으로 벌어지는 핵전쟁은 당연히 제한전(limited nuclear war)이며, 이런 전쟁을 위한 논리들을 제공한 것이 제2세대 핵전략이라 할 수 있는 ‘핵전투(nuclear warfighting) 전략’이다. 이 전략하에서는 제한적인 핵공격을 받을 경우 제한적인 핵 사용을 통해 승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지만, 확전을 방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치명적인 함정을 가진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것이 ‘원하는 핵전쟁(wanted nuclear war)’이며 실제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 이런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쿠바 위기는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 동안 미·소가 핵전쟁 일보 전까지 갔던 사태로서, 소련이 플로리다주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에 미국의 대부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R-14 중거리미사일(IRBM)을 배치한 것이 발단이었다. 사태는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미·소가 교환한 대응 및 재대응 조치들은 핵전쟁 위험을 사닥다리식으로 고조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양국의 결정권자들이 상대를 물러서게 하기 위해 이성적 판단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일단 ‘이성적 요인에 의한 제한적 핵전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비이성적 요인들도 혼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해상봉쇄 작전 중이던 미 항모와 구축함들이 쿠바 해역으로 진입한 소련 잠수함에 해상으로 부상하라는 방송을 하고 훈련용 폭뢰를 발사한 것에 대해 러시아 잠수함이 실제 공격으로 오인하고 핵어뢰를 발사하려 했던 사건도 있었고 북미항공우주사령부가 소련 핵미사일이 플로리다를 향해 날아온다는 경보를 받고 핵 대응을 고려하다가 자체 훈련용 프로그램을 끄지 않아 발생한 해프닝임을 발견하고 중단한 일도 있었다. 때문에 쿠바 사태가 핵전쟁으로 이어졌다면, 이성적 요인과 비이성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경우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핵전쟁 발화점 되나?

오늘날 최고 통치자가 핵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북한이다. 가능성의 고저를 떠나 우크라이나와 한반도가 핵전쟁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쪽에서든 의도적인 핵 사용이 발생하고 거기에 비이성적 요인들이 가세한다면, 소규모 핵전쟁이 발발하고 그것이 대규모 핵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7년 북한이 ‘미 본토 공격’과 ‘괌 포위공격’을 위협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반박했을 때 하와이와 일본에서 대피훈련이 실시되었다. 물론 미·북 간 ‘이성적 판단에 의한 핵전쟁’을 우려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는데 이는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들은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민심 혼란용’이자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군을 차단하려는 ‘협박용’일 뿐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상대로 핵전쟁을 벌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비이성적 요인들이 가세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2018년 1월 13일 하와이의 긴급재난관리본부(HEMA)가 실수로 공습경보를 발령한 적이 있었고, 일본은 북한이 2022년 10월 4일 중거리미사일 화성12호를, 그리고 11월 3일 대륙간탄도탄급 화성17호를 발사했을 때 대피명령을 발령했다. ‘핵 도박’을 계속하는 북한과 상대국들 간에 ‘인식-오인식(perception-misperception)’ 악순환을 누적된다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핵전쟁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원하는 핵전쟁’이 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핵전쟁’이 될 수도 있다. 핵 문제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뒤숭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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