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핵균형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3년 04월 13일 오후 12:36 업데이트: 2023년 04월 13일 오후 6:58

26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민적 기대감이 크다. 한국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시기적으로나 정세적으로나 한반도의 운명과 동맹의 미래에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촌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파장, 전 세계적인 군비경쟁 회오리, 중국의 거침없는 부상과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요동,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겁 없이(?) 질주하는 북한의 ‘핵특급’, 이란의 고집스러운 핵개발 행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질서파괴 행위로 인한 유엔의 무력화, 유럽과 일본의 재무장 등으로 ‘변화의 격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에게는 이런 변화의 강풍 속에서 살아남는 것만도 벅찬 과제이지만, 지금 윤 정부는 내부적으로도 난제들에 포위되어 있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거야(巨野)의 입법 독주가 정부를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한일관계 정상화, 미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 등 매사가 정쟁의 대상이 되어 냉정한 국익 계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를 향한 한일관계의 대전환 시도가 국민의 넉넉한 지지를 얻지 못함에 따라 한일협력 시대의 개막을 통한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도 용이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윤 대통령은 방미를 통해 양국 관계를 폭넓게 다루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국민이 가장 다급하게 기대하는 성과는 북핵과 관련된 것이라는데 이설(異說)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특단의 ‘핵균형’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제2의 6·25 전야’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이후 중화(中華) 패권을 향한 중국의 행보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12월 극진한 환대를 받으면서 사우디를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다졌고 최근에는 앙숙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하고 내친 김에 사우디와 교전 중인 예멘의 후치 반군과 사우디 간의 화해도 중재하고 있다. 이렇듯 시 주석은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중동에서의 중국의 존재감을 키우고 페트로 달러의 지위를 흔드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대만에 대한 지배권 주장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수시로 대만을 위협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해왔지만, 4월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경유’ 이후 또다시 대만을 겨냥한 대규모 포위공격 훈련을 실시하여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했다. 4월 중에는 프랑스 대통령,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독일의 외무장관 등이 베이징을 방문했거나 할 예정인데, 4월 6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는 중국-유럽 간 교류와 대화를 약속했다. 이렇듯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미국 우방국들의 균열을 도모하면서 미국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패권 행보는 북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담보해주는 ‘든든한 뒷배’ 역할을 수행하면서 러시아와 더불어 안보리의 북핵 제재 결의를 저지하는 방파제를 자임해왔다. 그 결과 북한이 작년 한 해 동안 103기의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고 금년에도 23기를 쏘는 ‘광란극’을 벌이고 있지만, 안보리는 뒷짐을 지고 지켜보기만 했다. 중·러의 비호에 힘입어 북한은 ‘무제한·무제약’으로 핵무력을 증강하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남 선제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이 대규모 해양훈련을 벌이면 먼발치에서 지켜만 봤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며, 니미츠 항모전단이 출동하여 우방국들과 합동훈련을 벌이면 자국의 항모를 보내 코앞에서 대치하는 방식을 택한다. 북한도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벌어지는 동안 ‘땅속’으로 들어가 지켜보기만 했던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자유의방패’ 훈련에 즈음해서 호언했던 ‘압도적 대응’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에 즈음하여 3월 9일부터 27일까지 7차례에 걸쳐 지상발사 순항미사일(CM), 잠수함발사 순항미사일(SLCM),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대륙간탄도탄(ICBM), 핵어뢰 등 총 18기의 미사일이나 공격수단들을 발사했다. 발사 행태도 매우 도발적이었다.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한국의 주요 공군기지, 미 해군 강습함의 기착항, 연합훈련 현장 등에 맞추기도 했고, 지상에 대한 핵폭발의 파괴살상력을 극대화하는 수백 미터 상공에서의 기폭실험도 실시했으며, 해일을 일으키는 핵어뢰 ‘해일-1,2’의 기폭실험을 통해 훈련 중인 한미 해군함정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북핵 위협은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것이 없다. 당장 독자 핵무장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지체 없이 ‘동맹국의 핵역량을 이용한 남북 핵균형’을 추진해야 하며 핵심은 미 전술핵의 재배치다. 혹자들은 미 전술핵이 재반입되면 중·러의 반발이나 제재가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지만 지금은 ‘이 눈치 저 눈치’를 볼 처지가 아니며 당장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때다. 물론 한미 양국이 2022년 동안 북핵 위협이 수직 상승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동맹 차원의 확대억제력을 크게 강화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2022년 10월에 발표한 핵태세검토서(NPR), 12월 제54차 한미 국방장관회담(SCM) 공동성명 등을 통해 “핵을 사용하면 김정은 정권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를 반복했고, 2023년에 들어서면서 연합훈련도 대폭 복원·강화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북핵 위협을 상쇄하는 핵균형을 이룬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지금이 한국에게는 취약성의 창(window of vulnerability)이, 그리고 북한에게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활짝 열려있는 시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상당한 전략적 에너지를 우크라이나에 쏟고 있으며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된다면 미·일과 나토(NATO)를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주된 지원과 관심도 대만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남북 간에는 핵을 보유한 일방이 다른 일방을 협박할 수 있는 ‘핵비대칭’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군은 전임 정부 동안 양적으로 축소되고 정신적으로 이완되었으며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전쟁 수행 능력 강화보다는 병사 봉급의 과도한 인상을 위해 국방비를 쓰려고 경쟁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은 지금이 ‘제2의 6·25 전야’라고 할 만큼 위험한 시기임을 인지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의 태반은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한미동맹과 한국 안보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대해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남북 핵균형’이 시급하다

공자(攻者)를 억제하는 것은 방자(防者)의 대응 태세에 대한 공자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억제의 기본이다. 바꾸어 말해 북한이 미국의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한국은 최악 또는 차악의 시나리오와 맞딱뜨릴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란 핵위협을 앞세우거나 선제 핵사용을 통해 전면 공격을 가하는 것이며, 차악의 시나리오란 핵위협으로 한국군의 발목을 잡은 상태에서 국지 도발을 저지르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서북도서들을 기습 점령하여 서해 안보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수도권에 국한된 기습공격과 파괴로 북한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남북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유력한 차악의 시나리오들이다. 한국으로서는 이 위험한 시기를 메워야 하기에 동맹의 핵역량을 통해 핵균형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즉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유사시 한국의 사용 의지가 반영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한다. 물론 사용이 용이한(highly useable) 전술핵들을 현시(現示)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핵 탑재용 미사일들을 재배치하되 전술핵탄두의 탑재 여부는 ‘징후를 과시하되 선언은 하지 않는’ 일종의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방식도 나쁘지 않다. 미국이 금년부터 배치하기 시작한 음속 17배의 가공할 극초음속 중거리미사일 다크 이글(Dark Eagle)의 배치도 검토해볼 만하다. 좌우지간 중요한 것은 북한의 오판 여지를 발본색원하는 것이다.

국민과 전문가들은 나라의 안보가 매우 엄중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대통령의 방미에 즈음하여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안보와 관련해서는 많은 국민이 북한에게 열려있는 ‘기회의 창’을 가차 없이 닫아버리는 동맹 차원의 조치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향후 독자 핵무장을 위한 사전 준비에 착수하기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가 빠진 확대억제 강화로는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소멸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부와 대통령이 인식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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