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량체포, 고문, 학살의 주범 장쩌민이 남긴 것

레비 브라우데
2022년 12월 12일 오후 4:45 업데이트: 2022년 12월 26일 오전 10:10

7000만 명의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 대량학살을 명령한 인물이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언젠가 그 비극의 시대를 되돌아볼 후세를 위해 우리는 여기서 명확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장쩌민은 사상 최악의 폭군이자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인간 쓰레기다.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지시한 인물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도 이처럼 조직적이고 치명적이며 장기간 대량의 백성(국민)을 상대로 공격을 벌인 사건은 없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 그리고 정의를 지지하는 많은 중국인은 장쩌민 사망 소식에 씁쓸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 하수인들은 아직 잔학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장쩌민은 이제 사라졌다. 세상에서 사악의 두목 하나가 줄어들었다.

기공수련법인 파룬궁(法輪功)은 1992년 지린성 창춘에서 처음 일반에 알려졌다. 진(眞)·선(善)·인(忍)을 수련원칙으로 삼아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도덕성 향상을 추구하는 수련법의 등장은 당시 중국에서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몇년 사이 수련자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까다로운 중국 정부당국에서도 국민 건강과 공중 도덕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장려한 시절도 있었다.

중국국가체육위원회에 따르면, 1999년 초까지 중국 내 파룬궁 학습자는 7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중국 공산당 당원보다 많은 숫자다. 중국 국영 CCTV는 1억 명 이상이 파룬궁을 배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도자의 개인적 편집증이 부른 재앙

파룬궁은 정치적 성향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장쩌민은 파룬궁의 인기, 공산당과 무관한 전통적 가치에 기반을 둔 가르침과 철학 등을 공산당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다.

1999년 봄 장쩌민은 파룬궁 말살을 독단으로 명령했고 같은 해 7월 20일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시행했다. 파룬궁과 수련자들에 대한 흑색선전, 관련 간행물의 출판 금지, 대규모 체포와 투옥, 강압적인 사상 전향을 요구했다.

한 국가의 국민 탄압이 지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강박관념으로 인해 벌어졌다는 사실은 장쩌민을 최악의 폭군 반열에 올릴 여실한 증거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99년 11월 9일 자 기사에서 “파룬궁을 사교(邪敎·도덕과 어긋나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로 지정하고 금지법을 통과시키라고 명령한 인물은 장쩌민이었다”고 보도했다(기사 링크).

신문은 “탄압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파룬궁 제거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전원의 지지를 얻어 통과된 사안이 아니었으며 장쩌민 주석이 독단으로 결정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한 공산당 간부는 장쩌민의 매우 개인적 사안이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탄압이 3년째로 접어든 2002년 3월, 수련자 5명이 지린성 장춘시의 지역 케이블 채널에 파룬궁의 평온한 실상이 담긴 영상을 끼워넣어 송출했다. 장쩌민과 공산당이 파룬궁에 씌운 악마화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였다.

50여 개 채널에서 10여 분간 영상이 송출됐고, 영상을 본 사람들이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TV를 보라고 하면서 수만 명 이상이 파룬궁이 부당하게 공산당의 박해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됐다.

충격을 받은 장쩌민은 해당 수련자들을 상대로 사살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창춘(Eternal Spring)’은 올해 캐나다에서 영화상을 받았으며, 2023년 아카데미 영화제 ‘국제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 부문에 캐나다 대표작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용감한 사람들이 진실을 알리며 비극을 막으려 애썼지만, 1999년 장쩌민이 내린 파룬궁 탄압 결정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수백만 명의 무고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길거리에서 혹은 자택에서 체포돼 정당한 사법 절차 없이 수감됐다.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만으로 10년 이상 수감 중인 사람도 있다.

WP “당국이 조직적 폭력 사용 승인”

워싱턴포스트는 2001년 8월 5일 자 기사에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올해 초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조직적 폭력 사용을 승인하고 세뇌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역별, 사업체별 수련자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기사 링크).

신문은 소식통과 수련자들을 인용해 중국에서 “재교육”이라고 불리는 고문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수련자들은 구타, 전기감전을 당하거나 며칠간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게 하는, 육체적으로 견딜 수 없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성적 학대, 향정신성 약물 주입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졌고 많은 사람이 고문과 가혹행위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고문행위 특별조사관인 만프레드 노박은 2006년 중국의 구금시설에서 발생한 고문사건에서 피해자 66%가 파룬궁 수련자라고 보고했다.

신앙 포기를 거부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끔찍한 가혹행위가 가해졌다는 데에 조사위원 전원의 판단이 일치했다고 뉴욕타임스는 2013년 보도했다.

미국의 비정부기구인 프리덤하우스는 2017년 보고서에서 “중국 전역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광범위한 감시, 임의 구금과 수감, 고문의 대상이 되고 있어 법을 벗어난 형벌을 당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2013년 1월부터 2016년 6월 사이 최고 1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련자 933명의 사례를 확인했다.

파룬궁 박해 정보를 수집하는 밍후이 네트워크에 따르면 올해 중국 공안당국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숨진 사람은 신원이 밝혀진 인원만 지금까지 4800명 이상이다.

중국 당국은 파룬궁 박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외부로 송신하는 일을 엄밀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보고되지 않은 미확인 사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장기간 이어진 탄압이 가져온 폐해

장쩌민과 공산당 지도부는 1999년 이후 파룬궁 탄압 작전을 강화, 확대하면서 그 수단에 대해서도 개발을 거듭해왔다.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해당하는 ‘610호 판공실’이라고 불리는 공안조직을 설립하고 수련자 고문을 실행한 이들을 포상했다.

또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선전 공작을 정교화하는 한편, 중국의 기존 사법 체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과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당초 파룬궁을 겨냥해 설계·구축됐지만 지금은 위구르인이나 다른 중국인 대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파룬궁 말살을 지시한 장쩌민은 중국 내 피해자들로부터 20만 건 이상의 법적 소송을 당한 상태다. 중국 밖에서는 수십 건의 국제 소송이 준비 중이거나 접수됐다.

장쩌민이 죽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행위로 지난 23년간 숨진 수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파탄 난 수백만 가정도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무의미한 탄압을 중단시킬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