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핵균형’ 대신 ‘확대억제 강화’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2022년 12월 1일 오전 11:4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일 오전 11:41

권위주의 독재체제 국가들과 자유민주주의 서방국가들 간의 신냉전 대결구도가 심화되면서 서방의 세계전략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현실을 접하면서 나토(NATO)는 지난 6월 나토정상회의를 통해 향후 10년간 나토가 지향할 새로운 전략개념(New Strategic Concept)을 채택하고 분수령적인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나토는 중국을 “주요 기술 부문과 산업, 인프라, 우주, 사이버 공간, 해양 등에서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국가”로 정의하면서 중국의 강압적인 대외정책과 러시아와의 전략적 밀착을 ‘나토의 안보와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단정했다. 또한 러시아를 ‘강압, 전복, 침공, 영토 합병, 악의적인 개입 등을 통해 지배권 확립을 추구하고 핵전력 현대화와 군사력 증강을 꾀하는 나라’로 정의하면서 ‘더 이상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위협’으로 자리매김시켰다. 북한, 이란, 시리아 등에 대해서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거나 비국가 테러세력들과 함께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로 규정하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렇듯 새로이 정의된 개념들을 바탕으로 나토는 회원국 확대, 군사력 현대화, 여타 지역과의 안보협력 등을 중시하는 신전략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당연히, 미국의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 전략의 향배는 북핵 위협에 시달리는 한국에는 지대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과 관련해서 중국과 북한의 도전에 확고하게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복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동맹국 한국에 대한 확대억제력(Extended Deterrence)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북핵 위협의 양적·질적 증강으로 한국에서 ‘미 전술핵 재반입을 통한 남북 간 핵균형’ 또는 ‘독자 핵무장’ 요구가 분출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확대억제 강화가 한국에는 양에 차지 않는 ‘꿩 대신 닭’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전략 변화의 의미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변모하는 미 세계전략과 한반도 전략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0월 12일 국가안보전략서(NSS)를 발간했고 이어서 10월 27일에는 핵태세검토서(NPR)와 미사일방어검토서(MDR)를 ‘2022 국가방위전략서(NDS)’라는 이름으로 통합 발간하면서 이들을 통해 국가전략 근간, 방어정책 기조, 핵전략 등을 한꺼번에 표방했다. 최상위 전략서인 국가안보전략서는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도전국’으로 보고 러시아를 ‘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했으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각종 전략과 정책들을 제시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 노력을 지속하겠지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확대억지력을 적극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동맹국들의 능력과 연대하여 위협을 억제한다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원칙을 천명했다.

미사일방어검토서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비국가 행위자 등을 ‘미국과 동맹을 위협하는 적(adversaries)’으로 명시했다. 중국을 ‘최상위 위협이자 미래의 떠오르는 위협(rising threat)’으로, 그리고 러시아를 ‘현존하지만 쇠퇴하는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와 동시에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극초음속무기, 무인기(UAS) 등의 위협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북한의 핵탑재 가능 미사일들을 ‘미 본토에 대한 새로운 도전 요소’로 규정했다. 이런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공조를 통한 통합미사일방어(IAMD)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고, 북한 도발 시에는 미사일 자체를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용을 부과하겠으며 이를 위해 미국이 가진 ‘모든 핵 및 재래식 수단’를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 도발 시 선제, 방어, 응징 등 모든 방법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핵태세검토서는 국가안보전략서와 국가방위전략서가 표방하는 안보·국방 전략에 부응하는 핵전략 기조들과 방안들을 밝혔다. 핵태세검토서는 중국을 핵무력 현대화와 다양화를 통해 2030년까지 1천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핵위협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현재 중국의 실전배치 핵탄두를 400개 이상으로, 그리고 2035년까지 배치할 핵탄두를 1500개로 추청한 ‘2022년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와 같은 맥락이다. 미 국방부는 2000년부터 매년 미 의회에 중국 군사력을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또한, 핵태세검토서는 러시아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따른 1,550개 핵탄두에 더하여 2천여 개의 비전략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았고, 북한을 미국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속적이고 증가하는 위험’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통합억제’ 차원에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집단적 억제’를 강조했고, 인도-태평양, 유럽-대서양 지역 동맹에 대한 미국의 확대억제 제공 공약을 재확인했으며, 정보 공유 차원에서 한미일 3국 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핵사용 시 강력한 확대억제력 동원을 통한 김정은 정권 파멸’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확대억제 강화, ‘꿩 대신 닭?’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21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노력 지속’과 ‘확대억제의 계속적인 제공’을 약속했는데,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를 매번 반복해온 구태의연한 외교적 표현으로서 북한이 핵무력의 급속한 고도화와 함께 ‘핵사용 전략,’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 독트린 등을 포함하는 공세적인 핵전략을 선언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는 현실을 반영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후 윤석열 정부의 동맹강화 방침이 반복적으로 천명되고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가 가시화되면서, 그리고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과 제7차 핵실험설에 한국에서 독자 핵무장 요구가 분출되면서 이에 화답하듯 미국의 대북 자세는 상당히 강경해지고 있다.

미국은 10월 12일과 27일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 국가방위전략서, 미사일방어검토서, 핵태세검토서 등의 전략서들을 통해 동맹과의 연대를 의미하는 ‘통합억제’와 ‘통합방어’를 부쩍 강조했다. 핵태세검토서를 통해서는 ‘북한 핵사용 시 김정은 정권의 파멸’을 경고하고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애초에 검토했던 ‘선제 핵사용 포기(NFU)’ 원칙과 미 본토 방위를 위해서만 핵을 사용한다는 ‘단일목적’ 원칙을 핵태세검토서에서 삭제했다. 당연히 이는 북한의 핵사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한국의 우려를 고려한 조치였다. 거기에 더하여 11월 3일에 개최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을 통해서도 ‘북한 핵사용 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고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력으로 확대억제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전력의 현 수준 유지, 정례적인 북핵 대응 연합훈련, 필요에 따른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등을 약속하고 “필요시 새로운 조치들을 식별해 나가기로 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추후 핵사태의 악화 시 미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핵균형 조치’들을 고려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은 동맹의 핵역량의 활용을 통해 남북 간 핵균형을 이룸으로써 현 핵비대칭 상태에서의 북한의 ‘핵 갑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여망에 부응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말과 행동을 통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대북 조치들을 취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 ‘핵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확대억제 제공’을 보장하고 있어 그 의미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북한의 시비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들이 재개·복원되고 있으며 참수작전용 MQ-9 리퍼 무인기 부대 창설, B-1B, B-2 등을 동원한 북폭 훈련 등 입체적으로 경고 메세지들을 평양에 보내고 있다. 이것들을 보면 한국도 미국도 다가오는 동북아의 전략지형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조만간 동맹의 핵역량을 활용하는 핵균형이 필요할 것이며 또 언젠가는 그것을 넘어 독자 핵무장이나 민주주의 핵동맹 같은 조치들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 집권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미래의 그림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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