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소비자 물가…정부, 대책 마련에 안간힘

이윤정
2022년 04월 20일 오후 6:30 업데이트: 2022년 04월 20일 오후 7:37

3월 외식 물가 폭등…24년 만에 최고치
‘거리두기’ 해제…소비회복 기대 vs 인플레 우려
한은, 금리 인상…인수위, 50조 추경 축소 고민
IMF, 韓 성장률 전망 2.5%로 하향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명분으로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서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대외적 불안 요인이 겹치면서 소비자 물가는 악화일로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위축됐던 소비 심리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수요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덩달아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년 100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1% 올랐다. 물가상승률이 4%대를 기록한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지난달 국내 외식품목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상승했다. 4월 10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39개 외식 품목의 물가가 전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이상 오른 품목 중 갈비탕(11.7%)의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죽(10.8%), 햄버거(10.4%), 생선회(10.0%)가 뒤를 이었다. 1998년 4월 이후 23년 11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의 대외 불안 요인이 악화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제 곡물 가격은 2020년 하반기부터 오름세를 보여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다 이상기후 등으로 세계 곡물 생산량이 감소한 탓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곡물 수출국의 수출제한 조치까지 맞물리면서 가격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코로나 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 봉쇄 조치는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강력한 대외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세계 식량 가격은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3월 식량가격지수(FFPI)는 전월보다 12.6% 상승한 159.3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이 지수가 도입된 1996년 이래 최고치로, 지난달에 이어 2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곡물류, 육류, 유제품, 식물성 기름 등 수요가 많은 품목의 국제 시세를 반영해 산출한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밀·옥수수 가격이 주로 올랐고 식물성 기름의 가격 상승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밀밭 | 연합뉴스

이처럼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외식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곡물가격은 밥상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4월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밀 가격은 t당 402달러(약 50만 원)로 전월보다 8.8% 급등했다. 밀 수입단가가 4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밀가루가 주재료인 외식 메뉴들의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의 칼국수 평균 가격은 8113원으로 1년 전보다 8.8% 올랐다. 서울 지역 칼국수 가격이 최초로 8000원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달 서울의 짜장면 평균 가격은 5846원으로, 지난해보다 500원(9.4%) 올랐고 냉면 한 그릇 가격은 평균 9962원으로, 전년 대비 885원(9.7%) 올랐다.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난 점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로 0.25%p 인상했다. 이는 지난 1월(1%→1.25%)에 이은 올해 두 번째 금리 인상으로, 급격한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행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아울러 새 정부 출범 후로 예고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거론되면서 이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코로나19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겠다며 50조 원 규모의 재정자금 투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늘어난 나랏빚과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 속에서 물가 안정과 재정 건전성 확보 등을 위해선 추가경정예산(추경)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4월 1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추경을 하기는 해야 한다. 물가 때문에 추경을 중단할 순 없다”면서도 “어떤 조합을 갖고 (물가상승) 우려를 해소하면서 추경의 목적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선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서민 생활물가와 민생 안정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경제 장관들이 원팀이 돼 당면 현안인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풀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당선인도 15일 “우리 경제의 복합위기 징후가 뚜렷하고 특히 물가가 심상치 않다”며 “물가 상승 장기화에 대비해 물가 안정을 포함해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종합적 방안을 잘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IMF는 4월 19일(현지 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에 비해 2.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인 지난 1월에 내놓은 전망치(3.0%)보다 0.5%p 하향 조정한 수치다.

IMF의 이번 전망은 최근 국내·외에서 발표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을 통틀어 가장 어둡다.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는 성장률을 3.1%로 내다봤고 지난 2월 한국은행은 3%로 전망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1%에서 4.0%로 0.9%p 올려잡았다.

IMF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훼손 및 물가 상승 여파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 성장률이 대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러시아 채무 불이행에 따른 보호주의 및 기술 교류 제한 가능성 ▲유가·식품가 폭등 및 난민에 따른 사회적 불안 ▲코로나19 재확산 ▲중국 성장둔화 장기화 ▲금리인상 및 부채 부담 증가 등을 경제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