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 계획만? 中 지방정부, 자매결연·우호협회 ‘인재 빼가기’ 통로로 이용

한동훈
2020년 09월 7일 오후 1:59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14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중국 해외인재 영입 실태 보고서
각국은 자국 영토서 중국이 벌이는 프로젝트 조사해야
대학·연구기관에는 외부자금 출처와 내역 공개요구 필요

중국에서는 10년 전부터 ‘곡선 추월(彎道超車)’이라는 개념을 거론된다. 자동차 경주에서 추월이 늘 곡선 구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나온 비유적 표현이다.

산업화가 뒤늦은 중국은 제조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앞선 미국을 추월하는 것이 어렵지만(직선 구간), 인터넷 산업에서는 가능하다(곡선 구간)는 이론이다.

이론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해외 고급인력 빼내기와 기술절도로 얼룩졌다. 중국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의 ‘천인(千人) 계획’이 대표적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대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국방안보분야 국책연구소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해외인력 영입 프로젝트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중공은 △외국 학자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중앙 정부 및 대학·연구기관·향우회·우호협회 등을 통한 영입 실행 △영입된 해외인력에 대한 기술이전 혹은 기술절도 강요 등의 공작을 펴고 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은밀한 인재영입

중공의 해외 고급인력 빼내기는 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외국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해외인력 빼내기의 출발점은 정보수집이다. 중앙 통전부 산하 ‘천인 싱크탱크’는 세계 과학자·엔지니어 1200만여 명(중국인 과학자·엔지니어 220만명 포함)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활용하고 있다.

지방 정부에서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해외 인력 데이터베이스를 가동 중이다. 저장성은 지난 2017년 칭화대 등에 ‘산업 인재맵’ 제작을 의뢰해 세계 전문가 650만명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전문가 44만1143명의 소속기관 및 국가별 분포도를 작성했다.

톈진시는 매년 100명 이상의 고급인력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주하이시는 해외 연구 프로젝트와 연구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칭다오시는 대학교수, IT기업 임원 등의 명단을 파악하고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난 2009~2014년 총 1000명의 해외인력을 영입했다.

지난해 8월 중국 칭다오시가 개최한 중국인 인재 초빙관련 행사 | 화면 캡처

또한 각 지방정부는 학연, 지연, 외국도시와 자매결연, 해외 친선협회 등을 설립하고 이를 해외인력 빼내기 통로로 이용한다.

이런 기관은 ASPI가 찾아낸 것만 600여 곳이며, 이들 기관에서 영입한 해외인력은 중국 전체 해외인력 채용의 80%에 이른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8~2016년 지방정부가 모집 예정한 외국 전문가는 5만3900명이었으나, 같은 기간 천인 계획에서 적격 대상자로 분류한 인력은 7천명에 그쳤다.

자매결연·우호협회 설립도 인력 빼가기 통로

2018년 저장성이 발행한 ‘해외인력 유치 보고서’에서는 영국 브루넬 대학교의 내연기관 전문가 자오화(趙華) 교수 영입 사례가 실렸다.

자오 교수는 영국-저장성 우호협회 산하 영입기관을 통해 저장성 파이니어테크놀로지(浙江派尼科技)사에 채용됐다. 이 회사는 산업용 및 민간용 고출력 선외기 생산업체다.

통전부에 연루된 경우도 많다. 지난 2014년 장쑤성 창저우시는 통전부 창저우 지부 부장 장위에(張躍)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영국-창저우 우호협회 창립식에 파견했다. 이 협회는 이후 영국 내 인재들을 창저우시로 영입하는 중심지가 됐다.

자위에 단장이 이끄는 대표단은 3일 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창저우 우호협회 창립식에도 참가했다. 마찬가지로 이 협회는 프랑스의 인재를 창저우에 유치하는 통로가 됐다.

중국의 대학과 연구 관련 협회 등도 비슷한 부서를 설치해 해외인력 채용을 진행한다.

중공군은 현지 통전부 조직을 내세워 해외인력을 끌어들인다. 201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중국인 유학생-학자 협회(NSW-CSSA)는 채용박람회를 개최했는데 이곳에는 중공군과 연계된 국방과기대 등 중국 대학들이 참가했다.

핵무기 개발 연구소도 해외 과학자 채용

여기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진행하는 천인 계획이 병행된다. 중국공정물리연구원(CAEP)은 지난 2014년까지 ‘천인 계획으로 해외 과학자 57명을 영입했다. 이곳은 중국의 핵무기 개발 연구소다.

지난 2018년에도 중국 공정물리연구원은 영국에서 인재채용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연구원 관계자는 “해외 학생들이 첨단기술 지식을 우리나라로 가져와서 프로젝트 수행에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공군 군수업체인 국영기업 중국전자과학기술그룹(CETC)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대와 공동 연구실을 운영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친교모임을 열고 현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초대하고 있다.

ASPI 보고서에서는 한 국가의 외국 인재영입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중국의 인재영입은 그 규모와 성격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방법을 통한 외국 기술절도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빼돌린 기술로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도 문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방 각국은 중국이 현지에서 벌이는 인재영입 프로젝트를 조사하고 대학 및 연구기관에는 외부자금 출처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또한 전담기구를 설치해 각 대학·연구소 학자들의 중국 인재영입 참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ASPI는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