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대만 총통 연내 미국 방문? 모교 코넬대 초청 형식 등 3가지 시나리오

최창근
2023년 02월 27일 오후 5:57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4:08

내년 5월, 임기 만료를 앞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연내 미국 방문설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월 26일 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타이베이발 기사로 “차이잉원 총통이 올해 8월 말까지 미국을 방문할 결심을 굳혔으며, 방미(訪美) 형식과 일정을 미국 측과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복수의 대만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내년 5월 퇴임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8년 집권한 민진당 정부의 외교 성과 집대성 차원에서 방미를 추진하며, 미국과 대만의 긴밀한 관계를 어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더하여 신문은 “미국과 대만이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중국의 맹렬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과 대만은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 시기, 형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계자들이 분석한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 시나리오는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차이잉원 총통이 모교인 미국 코넬대 주최 행사에 초청돼 강연하는 형태다. 이는 지난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당시 총통의 선례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싱크탱크 주최 행사에 참가하는 형식을 빌리는 것이다. 실제 차이잉원 총통은 최근 수년간 비대면 형식으로 미국 주요 싱크탱크 주최 심포지엄 연사로 참가해 오고 있다.

세 번째는 ‘경유 외교’ 방식이다. 올해 8월로 예정된 남미 유일 수교국 파라과이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미국을 경유지로 택하는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 2018년 8월에도 파라과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산케이신문은 “어떤 방미 형태를 빌리든지 차이잉원 총통은 미국 주요 인사와 비공식으로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라고 보도했다.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가 성사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중국 측의 반발이다.

지난해 8월, 당시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산케이신문은 “차이잉원 총통이 방미하면 중국이 대항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대만 총통의 우방국, 그중 미국 방문은 대만해협 양안 관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지난날 대만 최고지도자의 미국 방문은 일종의 금기(禁忌)로 여겨졌다.

금기를 깬 것은 리덩후이(1988~2000년 집권) 전 총통이다. 1994년 5월, 리덩후이 총통은 당시 공식 수교국이던 중남미 코스타리카를 순방했다. 리덩후이 총통이 탑승한 전세기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기착했다. 휴식과 연료 보급이 주목적이었다. 대만 정부는 미국 정부에 리덩후이 총통 일행이 호놀룰루에 내려 하룻밤 휴식을 취하 수 있는지를 여부를 문의했지만 미국 정부는 ‘불허’를 결정했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처사였다. 미국의 불허 조치로 인하여 당시 미국의 5대 무역 대상국이자 ‘전통적 우방’인 대만 국가 원수는 ‘국법상 대만 영토의 연장’으로 간주되는 전세기 기내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1995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모교 코넬대 초청 연설. | RTI.

해당 소식이 알려진 후 미국 연방 상원은 “대만 당국자의 미국 방문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후 미국 국무부는 대(對)대만 정책을 수정했다. 그해 9월,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대만의 각료급 고위 관리가 미국을 방문하거나 미국 관리와 접촉하는 것을 허용했다. 다만,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5년 5월 22일, 미국 행정부는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에 리덩후이 총통은 6월 7일부터 6일 동안 모교 코넬대를 방문하여 졸업식에서 연설했다. 1968년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27년 만의 모교 방문이었다. 1979년 대만-미국 단교 후 처음으로 대만 총통이 미국 땅을 밟았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2008~16년 총통으로 재임했던 마잉주(馬英九) 당시 대만 총통도 퇴임 한 해 전인 2015년 7월, 미국을 방문했다. 도미니마, 아이티, 콰테말라 등 공식 수교국 3개국 순방 일정 중 경유지인 미국 보스턴에 기착하여 모교 하버드대를 방문하여 좌담회를 개최했다. 마잉주 전 총통은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 현직 총통 신분으로 모교 하버드대를 방문한 마잉주 총통. | RTI.

2016년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도 ‘경유 외교’ 형식을 빌려 임기 중 미국을 방문했다. 취임 이듬해인 2017년 1월, 차이잉원 총통은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4개 수교국 순방에 나섰다. 그가 탑승한 에바항공 전세기는 1월 7일 텍사스주 휴스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가오스타이(高碩泰) 주미국 대만대표, 제임스 모리아티 미재대협회(美在臺協會, AIT) 대표 등이 기내 영접을 했다. 국무부 의전팀은 경찰 모터사이클 10여 대로 차이잉원이 탑승한 전용차를 선도했고 숙소에는 대만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가 게양됐다. 국가 정상에 준하는 예우였다. 이후 차이잉원은 수교국 순방 때마다 미국을 들렀고 그 때마다 중국은 극렬 반발했다.

이 속에서 리덩후이 총통과 같은 코넬대 동문인 차이잉원 총통이 ‘모교 방문’ 형식을 빌려 임기 내 마지막 방미를 시도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국립대만대 법대를 거쳐 미국 코넬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1야당 국민당 국제부 주임 겸 국민당 주미국 대표인 황제정(黃介正) 단장대(淡江大) 교수는 마잉주 전 총통이 퇴임 전에 미국을 경유하면서 모교 하버드대에서 연설한 것과 같은 형식으로 차이 총통이 방미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무 부처인 대만 외교부는 ‘차이잉원 총통 연내 방미설’을 공식 부인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대하여 2월 25일, “보도는 억측에 불과하다.”며 부인했다. 대만 외교부는 “국가 정상의 외유는 외교부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면 총통부와 외교부는 발표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차이잉원의 미국 방문이 성사될 경우 중국은 강력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덩후이 전 총통이 지난 1995년 미국을 방문하자 양안(중국·타이완) 갈등은 격화됐다. 리덩후이 총통의 방미 일정이 끝난 직후,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인근 해역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해병대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규모 군사 훈련을 감행했다. 미국도 이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대만해협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중국의 무력 시위는 이듬해 3월 대만 총통 선거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