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뉴욕 도착 경유외교 일정 시작

최창근
2023년 03월 30일 오후 3:26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49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3월 29일 미국 동부 뉴욕에 도착하여 ‘경유 외교’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은 “대만 총통이 경유 형식으로 방미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다. 중국이 이번 경유를 구실로 대만해협 주변에서 공격적 활동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중미 수교국 순방을 명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차이잉원 총통에 대하여 “결연한 조치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3월 29일 대만 주변 해역에서 인민해방군 소속 군용기 16대와 군함 4척이 포착됐다. 특히 군용기 16대 가운데 11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대만 공군 전투기가 대응 출격하고 경고 방송을 했다.

14시간 비행 끝에 3월 29일 오후 뉴욕에 도착한 차이잉원 총통은 주미국 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샤오메이친(蕭美琴)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TECRO) 대표, 로라 로젠버거 미국재대만협회(美國在臺灣協會·AIT) 회장 등의 영접을 받았다.

차이잉원 총통과 첫 대면한 로제버그 회장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으로서 대중국 전략 수립, 대대만 군사 지원 정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대중국 강경파이다. 올해 3월 미국재대만협회 회장을 맡았다.

중앙아메리카 공식 수교국 과테말라, 벨리즈 순방을 위한 경유 형식으로 4년 만에 미국을 찾은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 교민 만찬 일정 등을 소화했다. 방미 이틀째인 3월 30일에는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차이잉원은 콰테말라, 벨리즈 순방을 마친 후 귀국길에는 서부 로스앤젤레스(LA)를 다시 경유한다. 미국 권력 서열 3위 케빈 매카시 연방 하원의장 면담, 로널드 레이건도서관 연설 등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존 커비 백악관 미국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월 29일 브리핑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경유는 대만과의 오랜 비공식 관계, 변함없는 하나의 중국 정책과 일치한다. 모든 대만 총통이 미국을 경유했고 차이 총통도 2016년 취임 후 6차례 미국을 지났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거칠게 반응하거나 반발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역대 대만 총통의 미국 경유외교는 1995년 고(故)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재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5월, 당시 대만의 공식 수교국 코스타리카로 가던 대만 총통의 전세기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기착했다. 연료 재보급이 주목적이었다. 리덩후이 총통은 호놀룰루에서 하룻밤 쉬기를 원했으나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리덩후이 총통의 요청을 거절했다. 현직 대만 총통이 미국 영토에 발을 디딜 경우 생길 중국 측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의 5대 교역대상국이자 전통적 우방인 대만 국가원수는 국제법상 대만 영토의 연장으로 간주되는 전세기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해당 소식이 보도된 후 미국 연방 의회가 움직였다. 상원은 “대만 관리의 미국 방문을 허가하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여 행정부를 압박했다. 미국 국무부도 대만 정책을 재검토했다. 그러다 1994년 8월, 미국 행정부는 대만의 각료급 관리가 미국을 방문하거나 미국 관리와 접촉하는 것을 허용했다.

1995년 5월 22일 클린턴 대통령은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자격’으로 모교 코넬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68년 코넬대에서 농업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리덩후이 총통은 6월 코넬대를 찾아 ‘졸업생 자격’으로 연설했다.

이후 천수이볜, 마잉주 전 총통과 현 차이잉원 총통까지 대만 총통들은 중남미 지역 수교국을 순방할 때마다 경유하는 방식을 빌려 미국을 찾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 공식 수교국이 13개국에 불과할 정도로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는 대만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경유외교’라는 독특한 관례이다. 대만 총통이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은 항의해 왔지만 미국은 1979년 미중 수교 시 천명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묵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