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실종

장산(臧山)
2011년 05월 12일 오후 4:49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8

최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졌던 9.5m의 공자(孔子) 동상이 갑자기 실종(失踪)된 것이다. 다른 실종자들의 상황과 유사하게 중공 당국은 공자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한 기자가 이리저리 파헤쳐보니 돌아온 대답은 보수를 위해 옮겼다는 결론 뿐이었다.

중국에서 부실공사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불과 3월에 세운 공자의 동상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당국의 말을 그대로 빋지 않고 정치적인 각도에서 공자의 실종을 바라본다. 베이징의 저명한 문화인사 톄류(鐵流)는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천하를 뒤엎을 때 공자를 억누르고 천하를 잡고 나면 공자를 존중해왔는데 중공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공자를 비판하고 훼손하며 억누르다가 최근에 들어와 민중들에게 ‘군위신강(君爲臣綱: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 필요하자 특별히 공자를 공경하는 풍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자가 천안문에 정착한 것은 중공이 조화로운 중용(中庸)의 도(道)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공자 동상이 실종된 후 중공은 새로운 선전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일종의 범(汎)정치화된 통치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이름, 말, 표어, 인물이든 모두 극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게 된다. 이 가운데 중국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고초를 외부인들은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필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국인들은 변화무쌍한 정치 풍파를 겪어야 했으니 기타 역사인물이나 철학유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소로웠던 것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린 동화책을 우연히 봤다는 이유로 차이코프스키에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들으며 아마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필자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동화는 사실 지금의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공자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사라진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정확히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얼마 전 공청단파 인물로 간주되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조직부 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가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창홍타흑(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중시하고 흑사회를 타도한다는 의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충칭일보(重慶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리위안차오는 이 정책이 “중국과학발전이 직면한 난제(難題)를 타파하는데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인정했다. 만약 기자가 잘못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리위안차오는 공청단파 인물 중 이번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이자 중공 고위층 인사 중에서 태도를 표시한 아홉 번째 인사가 된다.

충칭은 보시라이의 주도하에 최근 적지 않은 소위 ‘개혁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좌경화 된 것이다. ‘홍가(紅歌 공산당 찬양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이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리장(李莊) 사건’은 비록 충칭검찰이 마지막에 소를 취하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조사와 수색 및 기소과정에서 분명하게 법률의 명문(明文)규정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충칭당국은 거짓 민의(民意)를 동원해 ‘민중(民衆 사실은 동원된 사람들)’시위로 당국을 지지하도록 꾸몄으며 각종 여론선전도구를 총 동원해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면적인 선전을 진행했다. 이는 문화혁명 이전 중공의 풍격과 흡사하다.

때문에 리위안차오가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제공해주었다”고 한 말은 사실 과거 중공의 낡은 사고와 경험이 끝났다는 뜻이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앞으로 수 년 간 중공의 정책방향이 전면적으로 좌경화되어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또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사상통제로 되돌아가고 의견이 다른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지난 20년 간 중공은 이데올로기 방면에서 도처에서 땜질식 처방을 써왔다. 전통문화를 빌리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때문에 과거 수년 간 중공은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황제(黃帝)의 묘에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번에 공자의 동상이 천안문광장에서 실종된 것은 중공이 이미 과거의 옛길로 되돌아 갈 것을 결정했고 이 때문에 공산이데올로기 이외의 다른 방법들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오히려 좋은 일일지 모른다.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 부귀하다면 오히려 수치가 된다”고 말했다. 지금 천하는 인(仁)이 얇고 의(義)가 적으니 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다.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리장(李莊) 사건: 보시라이가 추진하는 소위 창홍타흑(唱紅打黑) 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베이징의 변호사 리장이 당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자 충칭당국은 그에게 강간과 매춘혐의를 뒤집어 씌워 탄압을 시도했다. 즉 창홍타흑의 핵심이 공산당 일당전제(一黨專制)를 강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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