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으려다 경제 잡은 中 당국, 이번엔 대출규제 완화

강우찬
2022년 11월 23일 오후 6:59 업데이트: 2022년 11월 24일 오전 10:12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업체 대출을 규제해 돈줄을 좼던 중국 당국이 침체에 빠진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구제대책을 내놨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만, 이미 병든 중국 경제에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11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위)가 공동으로 부동산 시장을 위한 16개 조치를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금융지원 업무에 관한 통지’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질식 직전인 업체의 숨통을 틔워주는 특단책이다.

16개 조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 업체들에 이날을 기준으로 6개월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상환을 1년 연장할 수 있게 한 부분이다.

중국에서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부동산 업체들이 당장 올해 갚아야 할 금액만 537억 달러(약 72조원)이며, 내년 말까지 갚아야 할 돈은 1분기 723억 달러(약 97조원)를 포함해 을 포함해 최소 2920억 달러(약 395조원)로 추정된다.

통지문에서는 또한 중국 개발은행과 정책은행이 주택인도보증을 위한 전용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부동산 구매자들의 주택상환 거부 운동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

경영난에 처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주택 건설을 중단하자, 구매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은행 대출액 상환을 거부했고 이는 은행 부실로 이어지면서 중국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됐다.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 여론 폭증은 덤이다.

16개 조치는 중국 내 채권시장에 대한 지침도 제시했다. 앞으로 부동산 개발업체는 채무불이행 위기가 찾아오기 전 채권자들과 협상해 ‘합리적인 연장’, 대출 전환 등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채권자 권리를 보호하면서 개발업체 파산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 내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시에 개입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광둥성 주택정책연구원의 리위자 수석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부동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 개입을 옹호했다.

그러나 정부 개입은 최근 몇 년간 중국 부동산 시장을 사실상 붕괴상태로 몰아넣은 주된 원인이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2020년 8월 부채가 과다한 부동산 개발업체를 규제하겠다며 부채비율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헝다 같은 대형 개발업체에 유동성 위기가 닥쳤고 위기는 곧 중국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했다.

부동산 시장이 위기에 빠지자 재정수입의 주요 부분을 토지 이용권 매매로 충당해오던 지방정부에 직접 타격이 가해졌다. 수익성이 낮은 개발산업으로 인한 재정 악화를 또 다른 개발산업으로 돌려막기 하던 지방정부는 손쓸 방도 없이 곧바로 채무 위기로 빠져들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위기에 처하자 은행과 같은 금융권에도 직접 여파가 미쳤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의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이미 중국의 경제 체질은 많이 약해진 상태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16개 조치 중 상당수는 결국 그동안 그어놓은 규제를 풀어준 것이라면서, 신규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치 않은 부동산 개발업체도 관계 기관에서 실사를 하기만 하면 규제에서 면제해주는 희한한 조항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건설공사가 중단된 중국 광시성 구이린의 한 아파트단지. 2022.9.17 | 로이터/연합뉴스

무너진 신뢰, 시장은 정책 받아들일까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도입했지만 부동산 시장의 위기를 완화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중국에서 발표된 공식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 집값은 8년 만의 최대 하락폭을 보였으며, 미국 투자은행인 시티그룹은 중국 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부실률이 30%까지 치솟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민은행과 은보감위가 이번 통지문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에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지원하라”고 당부한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은 중국 경제를 되살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미 중국 문제 전문가인 친펀은 에포크타임스에 “중국 당국의 이번 부동산 시장 구제책은 한 마디로 엄청난 것”이라며 “중국 국내총생산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을 회생시키지 못한다면 중앙정부 세수와 지방정부 수입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친펀은 “이번 조치의 가장 큰 리스크는 정책적 딜레마”라며 “구제책이 너무 강력하면 경제의 부동산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과도한 부채에 기반한 과거의 경제 모델로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경제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구제책이 약하면 활력이 떨어진 부동산 시장을 다시 일으키는 데 실패할 것”이라며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에는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너무 크고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국에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지금이 매도 기회라고 본다”며 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머물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경기부양책을 기회로 털고 나오려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친펀은 “제20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중국 정부는 차기 지도부 출범 전까지 큰 탈만 안 나게 리커창 총리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수준이다. 큰 문제만 피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며 “내년 3월까지 실질적인 경제 개선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