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1) – 혼란한 분쟁 시기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2016년 06월 29일 오후 4:11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6:16

백년 전쟁으로 도탄에 빠졌던 백성들이 순식간에 태평천하 얻었고
백가(百家) 난립으로 정도가 흐리더니 단숨에 재가 되어 사라졌네
부흥을 고대하던 대업이 시작되니 모든 분야의 정통이 확립됐나니
백세(百世)의 기반 닦아 기본을 바로 세운 진시황은 대대로 찬양받으리

百年征戰, 生靈塗炭, 一朝得太平.
百家亂世, 惑擾正道, 一炬化灰揚.
百廢待興,, 大業初始, 萬端啟正統.
百世築基, 本正源清, 萬代讚始皇!.

제1장 혼란한 분쟁의 시기 신전(神傳) 문화

지구상의 어떤 민족이든 모두 역사를 거쳐오면서 신령의 존재와 인과응보의 법칙을 굳게 믿어왔다. 그렇기에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사회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도덕성이 점차 악화됨에 따라 신에 대한 신앙도 줄어들었고, 신 역시 사람들에게 기적을 잘 보여주지 않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노자가 세상에 나와 도를 전파했으며 다른 국가에서는 석가모니와 예수가 출현해 이번 인류에게 부처와 도, 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수련을 통해 인간의 본연으로 되돌아가고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한편 인류의 도덕성을 회복시켰다.

이러한 시기가 지나간 이후 춘추 오패가 앞다투어 흥기, 전국 칠웅이 서로 패권을 다투더니 진시황이 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이는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치가 발현된 것이기도 했다.

1. 도가와 유가의 출현, 백가의 어지러운 논쟁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다투며 세상을 어지럽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춘추전국시대. 창세주 및 여러 신은 선각자를 조용히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냈으니 그 분이 바로 노자다. 성은 이 씨,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었던 노자는 법과 도를 설파하는 한편 도가 수련법을 담은 경전인 <도덕경>을 남겼다.

노자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가르치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본연으로 회귀하는 것(返本歸眞)”임을 알려 주었다. 노자가 쓴 <도덕경>은 5천 자라는 적은 분량 속에 ‘도생만물(道生萬物)’이라는 도리를 여래 부처의 차원에서 설명했다.

또한 우주의 특정한 공간 속에서 운용되는 상생상극이라는 원리를 해설, 수련자들에게 인간 세상에서 무위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도를 얻고 성불할 수 있으며 결국 신통을 얻어 무불위(無不為)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형태가 없는 큰 도는 무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불위로서, 도를 따르는 자는 흥하지만 도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노자는 왕도와 유가사상 그리고 용병의 묘를 몇 자 되지 않는 언어 속에 모두 담아냈다.

명나라 <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 화책 중 <문례노담도(問禮老聃圖)> | Wikipedia노자는 인간 세상이 험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후세에 우주대법(宇宙大法)이 널리 전해질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기에 5천 자 분량의 <도덕경>만을 남기고 홀연히 서쪽으로 사라졌다. 제자 한 명에게만 전수하는 도가의 단전(單傳) 관행에 따라 노자는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뭇 중생을 가르치고 법을 널리 전하지는 않았다.

<도덕경>은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도가 수련법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했다. 그로부터 2000여 년간 중국 및 다른 여러 나라들은 모두 <도덕경>에 담긴 치국안민의 도리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배워왔다.

중국에서 노자가 활동하던 시기 인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가 탄생했다. 다시 500년이 흐른 후 서아시아의 이스라엘에서도 대각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노자, 석가모니, 예수는 모두 인간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파함으로써 인류를 구원, 수련 문화의 기초를 다진 인물들들이다. 이들이 활동하게 된 배후에는 인류의 도덕성 쇠퇴를 간파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신 창세주가 있었다.

도가 수련문화의 가장 저층에서는 공자가 탄생(기원전 552년)했다. 공자는 학생들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하면서 중용지도(中庸之道)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사람된 도리를 설파했다. 공자는 위로는 요·순 임금, 아래로는 진나라 목공(穆公)에 이르기까지 하, 상, 서주의 예의범절을 연구, 화하 선군들이 나라를 다스린 역사와 문화를 정리, 편집해 책으로 펴냈으니 후세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유가 6경’이라고 일컫는다.

노자가 설파한 것이 수련법이라면, 공자가 사람들에게 남겨준 중용사상은 사람된 도리다. 도가와 유가 사상이 세상에 출현한 한편 제자백가가 나타나니, 바른 것과 삿된 것이 서로 섞여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도가와 유가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서로 모여 병가, 묵가, 법가, 종횡가, 음양가, 명가, 의가, 농가, 잡가, 서화가 등 주요 10여 가를 형성했으며 안자(晏子), 손자, 관자, 장자, 순자, 맹자, 묵자, 귀곡자, 한비자 등 인물이 있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인간 세상의 문화를 한층 풍부하게 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지만 정도를 파괴하고 바른 법이 전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러 온 이들도 많았다. 그러므로 진시황은 무력으로 6국을 정복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측면에서 기본을 바로 세우고 질서를 바로잡아 중화 신전문화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군웅이 일어나고 백가쟁명 하던 춘추전국시대 말기, 중국에서 노자, 공자가 탄생한 한편 창세주께서는 유럽에서도 고대 그리스 문명이 흥기하도록 계획하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 등 일련의 철학가들이 나타났다. 이처럼 동서양에서 나타난 지혜로운 자들은 이번 인류의 양대 문명 체계를 창조했다.

고대 그리스의 선지자였던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개창했다. 신이 전해준 고대 그리스 문명은 이후 로마 제국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중해 및 유럽 대륙을 정복한 카이사르 대제는 신이 전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다시 환지중해 지역 및 유럽 내 수많은 지역으로 전파시킴으로써 서양 문명 전반에 있어 기반을 닦았다.

카이사르 대제가 남긴 문화와 군사 상의 업적은 세계사라는 큰 무대 위의 AB라는 역할 가운데 B라는 역할을 담당, 백업으로서의 작용을 하는 동시에 역사가 되었다. 이후 1000여 년간 유럽의 사상, 철학 및 문화는 아무런 발전이 없었으나, 13세기 초반에 이르러 세계 제왕이던 징기스칸의 황금씨족 대군이 르네상스 이전 유럽의 암흑을 격파, 자극을 준 이후로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중화 문화인 도가와 유가가 세상에 전파되어 신에 대한 바른 신앙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시황과 한 무제는 신전문화 가운데 한 버전을 발전시키고 드높였으며 보호했다.

진시황은 황제이자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었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이치와 법, 도는 모두 진시황에 의해 선택되고 진시황을 위해 사용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진시황의 사상이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법가인지 유가인지 아니면 도가나 음양가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알 길이 없다. 사실 이들 문파와 사상은 모두 ‘진시황만이 사용할 수 있고(唯其所用)’, ‘진시황에게 선택지로 제공되었던(供其選擇)’ 것일 따름이다. 진시황이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한 법률 체계는 상앙(商鞅) 등의 선진 시기 법가(法家)들이 만든 소위 ‘법’이라는 것들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한편 제자백가가 출현한 원인은 진시황이 신전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개창하고 있었기에 각 천국(天國) 체계들은 저마다 중국과 인연을 맺고자 했으며, 자신의 문화와 사상, 특징을 5000년 중국 역사의 거대한 무대로 가지고 들어와 선택받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진시황 영정(嬴政)의 모습 | NTD TV <소담풍운(笑談風雲)> 제공

2.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치에 따라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치고, 상나라 탕왕이 걸(桀)을 치고, 무왕이 상나라 주(紂)왕을 쳤듯이 정의로운 전쟁은 악인, 악한 세력 및 악한 국가를 멸하는데도 이용된다.

그러나 인류가 점차 악해짐에 따라 천재인화(天災人禍)와 전쟁이 갈수록 빈번해져 갔다.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시대에도 모두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의 이치를 잘 보여주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하나라 당시 제후국은 1만개였다가 상나라 때 이르러서는 3000개, 주나라 때는 800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100여 개로 줄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이 한층 잦아졌고 규모도 커졌다. <좌전(左傳)>의 기록에 따르면 춘추 당시 국가가 140여 개였는데 수많은 소국이 합병되어감에 따라 마지막에는 비교적 강한 7개 국가, 즉 진나라, 제나라, 초나라, 연나라,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 그리고 송, 월 등 몇몇 소국만이 남게 되었다. 이후 역사는 후세 사람들이 ‘전국시대’라고 부르는 시기로 접어들었는데, 전쟁 규모는 한층 더 커졌으며 소국들 간의 분쟁은 전략, 외교, 합종연횡을 통해 대국 간의 전쟁으로 번졌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얻은 진시황은 단숨에 중국을 통일,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켰다. 이 시기의 역사는 무척 복잡하고 어지러우며 무질서해 보이는데, 신께서는 이러한 전란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를 고수하고 도를 지키며 하늘을 경외, 분쟁을 처리하도록 가르치는 한편 진시황의 천하 통일이라는 결말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도록 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