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지구온난화’ 조작설…진실은? ④

이윤정
2019년 05월 7일 오후 11:27 업데이트: 2021년 06월 26일 오전 11:01

‘인류가 지구 온난화와 그것이 초래할 재앙을 일으켰다’는 가설을 공고히 하는 데는 정부의 자금 쏠림 외에 언론 억압도 큰 작용을 했다.

영국 기자 브렌던 오닐은 2006년 기후변화에 대해 합의된 가설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사상 및 언론 억압에 관한 실제 사례를 총괄해 기사를 발표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 영국 외교관은 공개적인 발언에서 기후변화 이론을 회의하는 사람은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대해야 하며 언론도 그들의 발언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닐은 “기후변화 회의론자에게 ‘부인자’란 누명이 씌워진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보통 독재 국가에서만 사상이나 언론에 대해 죄를 묻는다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영국 환경부 장관은 연설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언론에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지구 온난화 회의론자도 언론에서 발표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호주의 한 주류 칼럼니스트는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에게 반인류죄 기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 학술계 인사 20명이 미국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폭력 범죄 및 뇌물수수를 저지하기 위한 법안’을 이용해 기후변화에 다른 견해를 가진 회사나 조직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이런 식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을 고발하거나 조사하는 것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배한 것으로, 사실상 중요한 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을 압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 보호주의는 갈수록 이념화하고 종교화하면서 다른 관점을 용인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공격하며 갈수록 더 과학에서 이탈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7일 미국 최대 사회주의 단체인 민주사회주의자(DSA) 소속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에드 마티 상원의원 등이 워싱턴 의사당 밖에서 그린 뉴딜 법안을 발표하고 있다. | Saul Loeb/AFP/Getty Images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을 연계해 기후 문제 격화

에포크타임스가 출판한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와 각종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을 연계하는 것은 이미 기후 문제를 격화시킨 일종의 유행이 됐다. 이어서 시류에 영합하는 과학 가설이 잇따라 등장했다.

2014년 초 북미에 극단적인 이상 한파가 닥쳤다. 그러자 한 이론은 지구온난화가 북극 해빙을 일으켜 북극 상공 제트기류 경로에 변화가 발생했으며 이것이 북극의 한랭 기단을 남쪽으로 운반한 것이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저명한 기후전문가 5명이 ‘사이언스’에 연대 서신을 보내 이런 가설을 반박했다.

그들은 1960년대 초기부터 1970년대 후기 및 1983년에도 북극의 얼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두껍고 더 넓었지만 2014년 한파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50~100년간의 미국 기상관측소 기록을 보면 확실히 이상 한파의 발생 빈도가 낮아졌다.

2017년 11월 전 미국 에너지부 차관 스티브 쿠닌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후에 관한 기만적인 새 보고서’라는 평론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기후과학 특별 보고서’가 해수면 상승을 묘사하는데 오류가 있으며 이는 재앙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1993년 이래 해수면 상승 폭이 대략 20세기 평균 속도의 2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상승 비율이 환경에 대한 인류 활동의 영향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20세기 초반과 유사하다는 것은 생략했다. 이는 오류이자 오도다.

또한 이 보고서는 개요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폭염이 갈수록 보편화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폭염 횟수는 1900년대보다 덜하다는 자료는 숨겼다.

사실상 폭염이 가장 자주 나타난 시기는 1930년대로 21세기가 아니다. 당시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총량은 현재 누적 총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재앙 의식’ 강조하는 이유

전 영국 틴델 기후변화 연구소 소장 마이크 흄 교수는 환경주의를 비판하면서 언론, 과학자 및 정치인이 공동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재난 의식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환경 보호주의 활동가들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과학자들도 의도적으로 주변 과학에서 예측한 범위와 조건을 무시하고, 관찰된 기후변화의 물리적 현실을 뒤섞어 공공연히 두려움과 공포 및 재앙이라는 말을 강조하는가?

기후 이론 합의의 주창자로 일찍이 IPCC 제3차 평가 보고서 리더였던 스티븐 슈나이더는 흄 교수의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대중의 상상력을 붙잡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규모 언론 보도의 획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이 두려워할 광경을 과장해서 극적으로 진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가능한 한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기후학은 사실 역사가 겨우 몇십 년에 불과한 신생학과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과학적으로 논쟁이 끝나지 않았고 그 원인 역시 완전히 밝혀졌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실상 기후변화 문제에서 미성숙한 지구 온난화 이론을 사실로 간주하고 매체 선전을 통해 부정확성을 은폐함으로써 소위 과학적 합의는 이미 기후변화 이론에서 일종의 ‘교조’가 됐다.

이것은 또한 현재 환경 보호주의의 가장 중요한 신조가 됐고 전 인류의 미래라는 깃발을 내걸고 그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실정이다. 즉 환경 보호주의는 갈수록 이념화하고 종교화하면서 다른 관점을 용인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공격하며 갈수록 더 과학에서 이탈하고 있다. 일부 환경 보호주의자들의 눈에 이 결론에 반대하는 것은 반과학일 뿐 아니라 반인류적이다.

체코 전 대통령이자 경제학자인 바츨라프 클라우스는 <녹색 족쇄를 찬 푸른 지구, 부제:위험에 처한 것이 지구일까 자유일까>라는 책에서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자유, 민주, 시장 경제와 사회 번영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더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환경 보호주의 정치 운동 이데올로기이다”라고 썼다.

그는 환경 보호주의가 “지구와 자연을 선전하면서 환경보호의 깃발을 치켜들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주 유사하게 전 세계적이고 중앙 집중적이며 글로벌한 계획을 통해 자유롭고 자발적인 인류의 변화 노정을 대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