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서 겨우 살아남은 ‘구례 소’들 가운데 5마리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현주
2020년 08월 19일 오후 4:28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6:07

“지붕에서 내려온 소 5마리가 죽었습니다.

너무 안타깝네요.”

17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주민 김모 씨(29)가 고개를 떨궜다.

지붕 위에 살아남은 소들/연합뉴스

7일 내린 폭우로 섬진강 물이 넘쳐 지붕 위로 몸을 피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던 소 가운데 5마리가 최근 폐사했기 때문.

당시 집중호우로 축사가 물에 잠기면서 소 떼가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간신히 목숨 건진 소들도 지붕 위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였다.

이후 크레인과 마취총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구출작전이 펼쳐졌다.

지붕 위에 살아남은 소들/연합뉴스

김 씨는 부모와 함께 소 270마리를 키웠다.

폭우로 절반이 넘는 170마리가 폐사되거나 비에 떠내려갔다.

살아남은 100마리도 상처를 입거나 물을 많이 마셔 지금까지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쌍둥이 송아지를 출산한 어미소/연합뉴스

구조된 다음 날 쌍둥이 송아지를 낳아 화제가 됐던 어미 소도 건강이 악화됐다.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송아지들마저 상태가 좋지 않다.

겨우 분유를 먹이고 있지만 행여나 송아지들이 잘못될까 걱정이 앞선다.

소를 구조하고 있는 119 대원들/연합뉴스

김 씨 말고 마을 사람들도 마음이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원래 양정마을은 구례 최대 소 사육단지였다.

섬진강 범람 직전까지 43개 농가에서 소 1508마리를 키웠다.

하지만 폭우로 461마리가 폐사하고 99마리가 유실됐다.

소를 구조하고 있는 119 대원들/연합뉴스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밤새 5∼10마리의 소가 죽어나간다고 한다.

파상풍, 폐렴 등 후유증 때문이다.

마을 수의사도 이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폭우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들/연합뉴스

구례읍에서 38년간 가축병원을 하며 주민들과 가족처럼 지낸다는 그는 지난 10일부터 매일 마을에서 밤을 새고 있다.

주민들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는 소가 아프다는데 그냥 두기 안쓰러워서다.

얼마 전에는 탈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서 그는 “‘봉사활동 하러 왔다’ ‘무료 진료 한다’는 말조차 하기 부끄럽다”고 낙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