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 내세워 반도체 자급화 속도…미국 규제카드 만지작

한동훈
2020년 05월 14일 오후 2:01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2:58

미국 상무부가 중국 화웨이에 내준 임시면허 마감일인 15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상무부가 임시면허를 연장해줄지, 그대로 종료시킬지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상무부는 작년 5월 국가안보 등의 이유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나, 임시면허를 4차례 발급하며 거래 제한 시행을 늦춰왔다.

임시면허는 거래 제한 명단(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기업에 미국기업과의 거래를 임시로 허용하는 면허다. 연장 여부에 따라 화웨이의 반도체 자급화 행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화웨이와 ZTE 등 자국 기업에 투자하며 오랫동안 반도체 자급화를 추진해왔다.

미국과 긴장 관계가 지속하자, 공산당 지도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 했다. 2014년부터 막대한 자금을 들여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고 반도체 디자인 설계업체를 지난 몇 년 새 두 배로 늘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화웨이 자회사인 반도체 설계회사 하이실리콘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하며 매출액 기준 글로벌 업계 순위 10위에 올랐다. 사상 첫 톱 10 진입이었다.

하이실리콘은 자체 제조공장(팹)이 없는 ‘팹리스’ 반도체 회사로, 실제 생산은 TSMC 등에 위탁한다. 이 회사는 화웨이의 오랜 협력업체이기는 하지만, 대만 회사다.

그래서 화웨이는 하이실리콘의 반도체 물량 일부를 중국 국영기업 SMIC로 돌리며 자급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 같은 행보에 다른 기업의 주문량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면서 SMIC는 올해 홍콩 증시에 상장한 주식이 43%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완전한 자급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막강한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산 장비와 기술에 대한 수출 규제다.

전 세계 반도체 칩 생산시설은 대부분 미국 기술이 적용된다. 반도체 칩 설계에는 미국산 소프트웨어가 널리 쓰인다. 대만 TSMC와 중국 SMIC 역시 반도체 생산에 상당 부분 미국산 제조설비를 이용한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기업과 거래할 때 수출 라이선스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지난 3월 도입을 선언해 현재 명문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제3국 기업을 대상으로는 중국기업과 거래할 때, 미국산 부품 25%가 들어가면 미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10%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준이 10%로 강화되면 TSMC는 중국과 거래를 끊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화웨이가 자국 기업인 SMIC에 의존하기에는 SMIC는 아직 기술력에서 삼성전자나 TSMC 같은 업계 리더들에 뒤처져 있다. 게다가 SMIC도 미국을 포함한 외국산 반도체 제조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품질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술발전 제약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아예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한 AI칩 생산업체 임원은 경제주간지 ‘니케이 아시안 리뷰’와 인터뷰에서 “중국에 다른 선택지가 있긴 하지만, 기술격차가 너무 크다”며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업데이트가 없다면 우리 칩 개발은 막다른 골목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상하이 AI칩 제조업체 넥스트 VPU의 한 임원도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의 업데이트가 중단되면 중국의 자체 칩 개발은 벽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컴퓨터 산업에서도 차질이 우려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컴퓨터 칩을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노트북과 데스크톱의 핵심부품인 프로세서는 미국 인텔과 AMD가, 그래픽 처리장치는 AMD와 엔비디아가 주도한다.

중국 자국 기업들의 외국산 부품 선호 경향도 산업발전을 발목 잡는 요소다. 중국산 반도체 칩은 성능이 뒤처지는 데다 생산 규모의 한계로 인해 원가마저 최대 50% 높아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