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아직 미국과 싸울 준비 안 됐다” 주미 전 중국대사

김윤호
2022년 01월 12일 오후 2:17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30

추이톈카이(崔天凱) 전 미국 주재 중국대사의 발언이 시진핑의 강경일변도 대외 정책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피로감과 우려를 드러낸다는 분석이 나왔다.

추이 전 대사는 지난달 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에서 ‘중·미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사고’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미국과 함부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3년 부임해 작년 6월 퇴임한 추이 대사는 미중 수교 후 가장 오랫동안 대사직을 수행한 주미대사로 남게 됐다. 그는 중국 공산당 고위관리 중 누구보다 미국을 잘 아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마오쩌둥을 인용해 “원칙적으로 준비 안 된 싸움을 해서는 안 되고, 장악하지 못할 싸움을 하지 않으며, 오기로 싸우거나 소모적인 전쟁을 하지 않는다”며 “우리 스스로의 부주의, 태만, 무능 때문에 (인민의 이익에) 손실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외교 문제에 관한 강연이라는 점에서 상대국을 향한 거친 발언과 위협을 쏟아내는 전랑(늑대전사) 외교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되지만, 동시에 미국과 서방을 향해 강경 발언을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우회적인 ‘제동’으로도 해석됐다.

시 주석은 작년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중화민족이 지배당하고 괴롭힘당하는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이런 망상을 하면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섬뜩한 발언을 했다. 최근 불거진 대만 합병 문제와 관련해 대만 수호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미국과 영국 등에 경고한 것이다.

대만의 중국 문제 전문가 중위안은 “추이 전 대사의 발언은 연설 형식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지만, 완전히 개인 의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적 돌출을 경계하는 당내 분위기에 비추어, 기존 외교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위안은 “시진핑 역시 당내에 미국 문제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19기 6중전회에서 톈안먼 사태 이야기를 꺼내 이들을 설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의 중요 회의인 19기 6중전회에서 시 주석은 “1989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에 엄중한 정치적 풍파가 발생했다”며 톈안먼 사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단호한 조치를 취해 생사존망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서방의 제재 압력을 막아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위험과 도전에 대응하는 전략적 주동성을 장악했고, 당의 집권 지위와 국가 정권의 안정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위험과 도전에 단호히 대처하고 결연히 투쟁했다”며 현재의 서방 압력을 톈안먼 사태 당시와 연결해 당내 결속을 주문했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대를 학살하자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가 가해졌다. 개혁개방으로 발전을 꾀하던 중국 경제는 좌초 위기를 맞았지만, 일부 친중공 서방 인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 중위안은 “사실 당내 결속과는 무관한 해법”이라고 꼬집었다.

중위안은 “중국 공산당의 해법은 항상 ‘투쟁’이다. 사나운 전랑외교 역시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적 해법 대신 공산당의 핏속에 흐르는 ‘투쟁’ 유전자로 대응한 것이다. 투쟁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난국을 해결하기는커녕 풍파를 키우지만 그래도 투쟁을 계속한다. 그것이 공산당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중위안에 따르면, 시진핑은 당내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더욱 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장기집권 성패가 판가름 나는 20차 당대회다. 올가을 예정된 당대회에 대해 시 주석은 “2022년의 최우선 과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자기 자리만 온전해서는 부족하다. 자기 진영 인물들을 핵심 위치에 더 많이 배치해 반대파벌, 경쟁파벌과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이텐카이 전 주미 중국대사. | 연합

시진핑은 6중 전회 담화에서 “당의 집중적이고 통일적인 영도를 견지하고, 당 중앙의 권위를 수호해야 한다”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둔감하게 반응하고, 처리하는 동작이 느리고 힘이 없으면 결국 인망정식(人亡政息·집정자의 죽음과 함께 정치도 중단됨)을 낳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중위안은 “이는 내부를 겨냥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진핑은 지난 18차 당대회 이후 호랑이(고위 부패관리) 사냥, 파리(하급 부패관리) 때려잡기, 여우사냥(獵狐·해외 도피사범 검거작전) 등을 실행하며 ‘당·국가·군 내부에 존재하는 심각한 복병’, ‘당내에서 정치 집단, 소그룹, 이익 집단을 만드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부패 청산을 내세운 당내 라이벌 세력 숙청으로 풀이된다. 지난 9년간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내부 최대 기득권 파벌인 장쩌민(전 국가주석)·쩡칭훙(전 국가 부주석) 집단과 끊임없이 투쟁해오면서, 다수의 반대파 관료들을 ‘부패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숙청해왔다.

“그러나 숙청 규모는 아직 전체의 10분의 2 수준 정도에 그친다”는 게 중위안의 분석이다.

그는 재임 기간 10년, 퇴임 후 수령청정 10년, 이후 측근을 내세운 영향력 행사 10년 등 1989년부터 현재까지 30년간 중국 공산당 최대 파벌로 군림한 장쩌민·쩡칭훙 세력은 방대한 규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진핑은 ‘전당(全黨)은 반드시 당에 충성해야 한다’며 순수하고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해왔다. ‘공허한 구호를 외치거나 입발림 소리를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집권 10년이 됐지만, 중간층 관리들 다수가 여전히 그의 통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사회에 대해서도 같은 식의 투쟁적 접근을 하는 움직임에 내부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중위안은 분석했다.

그는 “추이 전 대사는 ‘인민의 손실’을 우려했지만, 다수의 공산당 관리들은 시진핑의 대미 강경책으로 자신들이 미국 등 해외에 구축한 달러화 자산에 대한 접근권을 잃을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올해 권력 투쟁에 이어 외교노선 투쟁까지 시진핑 진영의 집안싸움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