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계 언론에 영향력 행사하려는 새 전략 구상”

하석원
2020년 01월 22일 오전 11:18 업데이트: 2020년 01월 23일 오전 12:27

중국이 최근 몇 년 간 서방 유력매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선전공작을 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권에 유리한 내용만 보도하고 불리한 소식은 줄이거나 삭제하는 언론 장악이 해외에서도 이뤄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15일 특별 보고서인 ‘베이징의 글로벌 나팔수: 2017년 이후 중국 공산당 매체들의 영향력 확대’에서 “중국이 2017년부터 새로운 해외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리덤하우스는 관련 보도자료에서 “스웨덴, 러시아, 남아프리카, 미국, 호주 등에서 기자, 뉴스 소비자, 광고주가 중국 공산당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정치적 내용에 대한 협박이나 검열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라 쿡 선임 연구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새로운 해외 영향력 확대 전략의 목표를 “중국과 중국 공산당 독재 정권의 긍정적 이미지를 선전하고, 외국의 대중국 투자를 확대하며, 중국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중국은 개발도상국들에 중국식 정치·경제적 발전 모델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독재주의 정치 시스템과 고속 경제 성장에 따른 부정적 측면은 빼고 중국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려 했다. 외국 언론을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전략이 도입된 것이 이 때문이다.

중국이 감추려는 부정적 측면은 우선 중국 내 소수민족 탄압과 종교·신앙인 탄압이다.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외국기업과 경쟁에서 이기도록 부당하게 지원한 것도 중국이 보도되길 꺼리는 뉴스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21세기 육상·해상 신실크로드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발도상국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지경이라는 점도 중국이 싫어하는 뉴스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중국과 참여국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고 선전한다.

사라 연구원은 “중국이 거짓되고 부정하며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국의 전략을 해외에 선전했다”면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글로벌 뉴스채널 CGTN을 사례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인민일보는 공식 페이스북에 ‘중국에서 가장 큰 신문’이라고 홍보하며, CGTN은 CCTV의 일부로서 홍보부서의 통제를 받지만 ‘중국의 탁월한 24시간 뉴스 채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사라 연구원은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런 홍보문구 때문에 인민일보와 CGTN이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언론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중국은 서방국가의 현지 매체에 선전물을 끼워 넣는 방식도 동원한다. 인민일보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다수의 서방 유력매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통제를 받는 선전기관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딸린 ‘차이나 와치(China Watch)’면은 언뜻 보면 신문사에서 발행
중국전문 뉴스섹션으로 보이지만, 인민일보에서 영문으로 제작한 삽지다. 인민일보가 편집한 광고면이 마치 신문의 정규 발행 면처럼 끼워진 것이다. 스페인·영국·호주·아르헨티나·페루·세네갈·인도에서도 비슷한 면이 발행된다.

인민일보가 중국 중앙정부에 밝힌 바에 따르면, 연간 운영비는 지난 10년 동안 10배 가까이 증가해 매년 1천만 달러 이상으로 증액됐다. 지출내역별로는 미국 내 매체에 선전물을 싣기 위한 비용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사라 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소셜 미디어 역시 중국 공산당이 활용하는 선전 창구다.

이달 진행됐던 대만 대선(총통 선거)에서는 친중 성향 후보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그룹의 운영자들이 사실상 중국 본토에서 접속했다는 정황 증거가 포착됐다. 중국 본토 사용자들이 경쟁 후보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려 대선 관련 구글검색 결과에 더 잘 노출되게 함으로써 친중 성향 후보를 지원 사격했다는 내용이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지역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업계에서도 중국이 ‘활약’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통신장비 기업 ZTE(중흥통신)는 2017년 파키스탄 국영방송 PTV와 계약을 맺고 디지털 서비스 분야를 지원하기로 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PTV 웹사이트에서 ‘대만(Taiwan)’을 검색하면 다른 대만 관련 뉴스는 나타나지만 1월 대만 대선이나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 관한 보도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ZTE와 계약 전인 2016년 대만 대선 기사는 검색된다.

혹시 파키스탄의 다른 언론들도 이번 대만 대선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닐까? 검색엔진에서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어로 ‘대만(تائیوان)’을 검색하면 차이잉원 총통의 승리 등 대만 대선을 다룬 파키스탄 현지 언론 기사들이 다수 검색된다. 즉, ZTE와 계약관계인 국영방송 PTV만 대만 대선을 외면했다는 결과다.

또한 ‘신장’을 검색하면 기사 7편만 표시되는데,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다룬 내용은 없다.

중국의 해외언론 장악 추진은 스웨덴, 홍콩에서도 목격됐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특정 기자, 매체 보도를 비판하거나 모욕과 협박을 뒤섞어 성명을 발표한 사례가 최소 52회 이상 있었다.

홍콩에서도 최근 수년간 기자나 언론사 대표들이 중국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괴한이나 단체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영문판 ‘홍콩 프리 프레스’ 소속 직원 두 명은 집에 협박 편지가 배송됐고, 독립언론 ‘애플 데일리’ 소속 여기자는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도중 폭력조직 단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지난해 11월 22일에는 홍콩판 에포크타임스 인쇄소에 괴한들이 침입해 직원들을 위협하고 윤전기와 인쇄용지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홍콩판 에포크타임스 애플 데일리와 함께 홍콩 시위의 양상과 중국 공산당의 인권 탄압에 대해 검열 없이 보도한 몇 안 되는 홍콩 매체였다. 인쇄소를 침입한 괴한들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일으킨 일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서 언론 취재를 방해하고, 기자들에게 공산당 기관지와 중국 관영언론 보도내용을 보고 기사를 쓰도록 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18년 11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파푸아 뉴기니 방문해 남태평양 섬나라 대표 8인과 회담을 가졌을 당시, 중국 정부 관리들은 현지 언론과 외신기자들의 취재를 금지하고 신화통신 보도문과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영상을 보고 기사를 쓰게 했다.

사라 연구원은 “중국의 미디어 영향력은 정보 환경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 법치주의, 공정한 경쟁 등 민주적 통치를 위한 국제적 규범과 기본적 특징을 훼손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의 공격적인 선전에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 및 외국 정부에 중국 외교관에 대한 벌금 부과, 자국 방송 규정 강화 등의 대응책을 제시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이미 제정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적절히 집행해 더 많은 중국 관영언론을 외국 정부 대리인으로 등록시켜야 한다고 사라 연구원은 권고했다.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미정부 관리나 미국 여론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조직 혹은 개인을 외국 정부의 대리인(로비스트)으로 법무부에 등록하게 하는 법이다. 등록한 조직(개인)은 연간 예산과 지출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활동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투명성을 강화하도록 한 법이다.

현재 FARA에 따라 미국 법무부에 등록된 중국 관영매체는 인민일보와 CGTN 뿐이다. 신화통신은 법무부의 등록 권고를 받았지만, 아직 미등록 상태다.

사라 연구원은 “명백한 친중 성향의 개인이 운영하는 중국어 매체가 미국 내에 상당히 많다”면서 “해당 매체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FARA에 따라 등록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은 독립언론을 몰아내려 한다. 이를 막기 위한 자금을 운용하는 정부나 단체는 특정 정부·기업·정당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으로서 기능을 다 하는 매체를 지원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