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지시위’, 해외로 파급…中 당국 현지서 협박 정황

강우찬
2022년 12월 8일 오후 2:50 업데이트: 2022년 12월 29일 오후 4:02

세계 곳곳의 중국인들이 중국의 ‘백지시위’를 지지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 당국이 해외에도 압력의 손길을 뻗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매체 RFA는 일본에서 백지시위 지지활동을 주도한 한 중국인이 중국대사관 직원으로부터 “귀국하면 말썽에 휘말릴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MIT 테크 리뷰는 중국 내 시위 영상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 (Twitter)으로 전송하는 계정인 ‘리선생(李老師不是你老師)’의 운영자가 수시로 협박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계정 운영자는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경찰이 찾아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이 해외에 있는 중국인이나 중국에 남은 그의 가족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백지시위에 대한 국제연대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백지시위는 중국 공산당의 고강도 방역 정책에 대한 항의를 뛰어넘어 체제 비판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북미, 유럽, 아시아 등으로 전파돼 해외 거주 중국인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30일 서울 홍대 거리 광장에서 중국 유학생들과 한국인들이 모여 중국 공산당의 방역 정책을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백지시위의 계기가 된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로 인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작은 전자 촛불로 ‘1124’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은 지난 주말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서 각각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검열에 저항을 의미하는 흰 종이(백지)를 들었다. 중국 본토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졌던 구호인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도 외쳤다.

대만에서는 4일 중국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권단체가 타이베이시 자유광장에서 백지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100여 명이 백지를 들고 중국 본토 시위대와의 연대를 나타냈다.

앞서 지난 2일 인도에서는 수도 뉴델리 국회의사당 앞에 티베트인 망명자 등 150여 명이 제로 코로나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미국과 호주, 영국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잇따랐다.

집회 참가자들은 중국 공산당 당국이 무단으로 외국에 설치한 ‘해외 경찰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해외 경찰서 소속이거나 사주를 받은 인물이 해외에서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얼굴을 촬영하거나 신원을 확인해 당국에 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중국인 참가자들은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렸고, 집회 주최 측은 “얼굴이 찍히지 않도록 해달라”며 취재진에 협조를 호소했다.

중국 당국은 자국에서 감시카메라와 휴대전화 위치추적 감시시스템을 통해 백지시위 참가자들을 추적해 체포하는 한편 방역 규제를 완화해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다.

국무원 합동 방역통제기구는 7일 코로나19 감염자의 자가격리 허용 등 방역완화 조치 10가지를 내놨다. 지금까지는 확진되면 임시 병동인 ‘팡창’ 등으로 옮겨져 강제격리 조치를 당해야 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팡창’은 병원이 아니라 감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베이징 시위 때, 시위대는 자가격리 허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방역 완화 불가피…재확산 여파에 인구 60% 감염 예상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전염병과 싸워 이기겠다’고 선언한 중국 공산당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감염자를 ‘제로(0)’로 만드는 제로 코로나 정책은 이미 실패했고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인해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다.

다른 국가처럼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려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자국산 백신의 낮은 효능과 중국인들의 불신감으로 실행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방역 완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전 부주임이자 국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폐렴예방통제기구 전문가 그룹 위원인 펑쯔젠(馮子健)은 6일 칭화대 연설을 통해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기 전 봉쇄조치를 해제하면 면역력 향상은 자연감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펑 위원은 “수학 모델의 계산에 따르면, 대규모 충격의 첫 번째 물결이 정점에 도달하면 감염률이 인구의 약 60%에 도달한 다음 점차 정체 상태로 들어가 결국 80~90%의 국민이 감염될 것”이라며 감염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미국 싱크탱크 대서양협의회(CFR)의 글로벌 헬스 담당 황옌중(黃延中) 연구원 역시 “중국 인구의 60%가 감염되는 재확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