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체제 운동가 바오퉁 별세…톈안먼 유혈 진압 반대 후 실각, 가택 연금

최창근
2022년 11월 11일 오후 2:02 업데이트: 2022년 11월 11일 오후 3:03

10월 9일, 중국 반체제 운동가 바오퉁(鮑彤)이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바오퉁은 1989년 6·4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시위 발발 시 중국 공산당 정부의 유혈 진압에 반대하다 수감됐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택 연금 생활을 이어왔다.

사인은 혈액 질환이다. 장남 바오 바오푸(鮑朴)는 “아버지 바오퉁이 혈액 질환을 앓아 왔으며, 지난 3월부터 입원 치료를 했으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바오퉁은 1932년 저장(浙江)성 하이닝(海寧) 태생으로 상하이(上海)에서 성장했다.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1949년 상하이남양중학(上海南洋中學)에서 수학하던 그는 학생회장을 맡았고,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졸업 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화동(華東)국에서 일했으며 화동국 조직간부처 간사로 승진했다.

1954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에 들어가 간부2처 간사를 지냈다. 이후 1964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간부연구실 부주임을 맡았다. 1966년 문화대혁명 발발 후 하방(下放)되어 57간부학교에서 일하던 그는 문화대혁명 종식 이듬해인 1977년 전국과학대회 문건 기초 작업에 참여하며 중앙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1978년 중국과학기술위원회 판공실 책임자를 거쳐 중국 공산당 정책연구실 부주임으로 승진했다.

덩샤오핑 집권 후 개혁·개방기 바오퉁은 중국 공산당 개혁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무원 총리 자오쯔양(趙紫陽)의 정치 비서,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위원, 중국공산당 조직위원회 부서기 등을 맡았다.

1987년 중국 공산당 제13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피선됐고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치비서로 임명됐다. 같은 시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주임으로 당 개혁을 주도했다.

‘개혁 브레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바오퉁의 운명의 전기가 찾아온 해는 1989년이다. 그해 민주화·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덩샤오핑, 장쩌민, 리펑 등 보수 강경파는 시위 무력 진압을 결정했고, 바오퉁은 이에 반대했다. 5월 28일, 유혈 진압 직전 그는 체포됐고 온건 대응을 주문했던 그의 상관 자오쯔양도 실각하여 ‘국가의 죄수(囚人)’ 신세가 됐다.

1989년 바오퉁은 체제 전복 기도, 반혁명 활동 혐의로 기소된 최고위급 정부 관리였다. 1992년 공개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징역 7년, 2년의 정치적 권리 박탈을 선고받았다. 이후 베이징 친청(秦城)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쳤다.

바오퉁은 1996년 출소했지만 중국 정부는 그를 가택 연금에 처했고, 이후 22년간 연금 생활이 이어졌다.

바오퉁은 연금 상태에서도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글과 인터뷰를 하며 ‘중국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2013년 한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덩샤오핑은 톈안먼 무력 진압의 상징이며 덩샤오핑을 부정하지 않고는 중국은 진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권운동가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 등이 2008년 공산당 1당체제 종식을 요구하며 발표한 ‘08헌장’을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2017년 홍콩 중문필회는 ‘류사오보 기념상’을 수여했다.

바오퉁은 1998년부터 자오쯔양 복권을 호소하기도 했다. 2009년 발간된 자오쯔양 회고록 ‘국가의 죄수’ 발간에도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책은 바오퉁이 발견한 자오쯔양의 녹음 테이프 등을 기초로 아들 바오푸가 집필했다.

자신의 상관이던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묘를 찾은 바오퉁. | 에포크타임스.

숨을 거두기 나흘 전 맞은 90세 생일에서 바오퉁은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의 한갓 보잘것없는 역사의 존재다. 내가 아흔이 되고 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쟁취해야 하는 미래이다. 쟁취해야 하는 오늘이다.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반드시 해야 할 사정, 그것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딸 바오젠(鮑簡)은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자녀들은 트위터를 통해 부고를 전하며 “아버지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여전히 이 땅에 대한 충만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톈안먼 시위 학생 지도자였던 왕단(王丹), 언론인 가오위(高瑜) 등 중국 반체제 인사들도 트위터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가오위는 수년 전 바오퉁의 글을 인용하며 “1989년 6·4 이후 33년간 꿈을 꾸기 어려웠고 노래도 울음도 놀라기도 힘들었다. 창문 안에 갇혀 맑고 흐린 날 헤아리고, 구름과 바람 부는 하늘가에서 밀물과 썰물을 섬기며 한밤중에 일어났다.”라는 추모 시를 올렸다.

톈안먼 운동 학생 지도자 왕단은 “바오퉁 선생은 지난해 병이 심해지기 전 ‘6·4 기념관’의 편액을 쓰려 하셨다.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기획자이며 만년에는 체제의 반항자였다. 나는 비록 중공을 반대하지만 바오퉁 선생과 같이 일찍이 체제 안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분에게는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고인의 영면(永眠)을 기원했다.

바오퉁의 장례식은 11월 15일,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