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식당’ 전국 확대…계획경제 회귀 수순 의혹

강우찬
2022년 11월 14일 오전 8:04 업데이트: 2022년 11월 15일 오후 3:47

중국 남부 윈난성에 문을 연 ‘국영식당’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유행하고 있다.

선글라스에 치파오를 입은 여성이 식권을 카메라 쪽으로 들어 보인 뒤, 최근 개점했음을 알리는 화환이 줄지어 놓인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는 이미 다른 손님들로 북적인다. 식판과 수저를 챙긴 사람들이 반찬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반찬을 고른다. 대학이나 기업 구내식당 같은 풍경이 낯설지 않다.

반찬 코너를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화면에 언뜻 음식 가격이 잡힌다. 고기반찬은 한 접시에 단돈 5위안(약 940원), 야채반찬은 한 접시에 2위안(370원)으로 더 싸다.

쟁반 한가득 반찬을 채운 여성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 왼손에는 하얀 쌀밥이 든 밥공기를 들고 즐겁게 식사했다. 젓가락을 쥔 오른손은 밥과 반찬을 입으로 옮기는 한편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 바빴다.

이날 여성이 고른 1끼 식사는 고기반찬 3개에 야채반찬 2개 해서 총 3500원어치다. 과일 한 접시는 무료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중국에서 한 끼 식사에 2500~5000원 정도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가성비’ 식당이다.

이 영상은 국영 투자회사가 운영하는 음식점 홍보물이다. 영상 속 ‘국영식당’은 실제로 최근 중국 곳곳에 문을 열고 있는 일반적인 국영식당과는 차이가 있다. 투자회사가 운영하는 음식점인 만큼 깨끗한 시설이 돋보였다.

중국 윈난성에 최근 문을 연 국영식당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야채반찬 한 접시 가격이 2위안(약 370원)이다. | 웨이보

영상은 국영식당이 싼값에 맛있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홍보하는 내용이지만, 이 영상을 본 일부 네티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상의 본질은 식당 홍보가 아니라 식량위기에 대비한 선전물 아니냐는 것이다.

이 식당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식권이 필요하다. 식권은 구매해서 사용 가능하지만, 향후 회사나 지방정부에서 배급하는 식으로 전환되면 바로 식량배급제가 되기에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영상 제작진도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영상 초반에 “70~80년대 식권인 ‘양표(粮票·식량배급표)’와 같은지 확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이 강도 높은 봉쇄조치를 수반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과 강경한 대외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국에서는 ‘식량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국영식당에 관한 관심 고조는 중국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통보가 발단이다. 통보문에는 “전국 주요도시 주민 거주지역에 총 35개 국영식당을 설치해 2년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국영식당은 계획경제 시대의 유산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경제 불황이나 서방국가로부터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즉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폐막한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향후 중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 ” 자급자족 및 경제안보 확보”가 언급됐다. 최근 중국 농촌에서는 ‘공소사(供銷社·공급판매조합)’가 속속 설립됐다. 베이징의 공영마트에도 공소사 로고가 걸렸다.

공소사는 1950년대 토지를 몰수한 마오쩌둥의 지시로 설립된 농산물 생산·유통 관리조합이다. 합작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당이 농산물 공급망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중국 윈난성에 최근 문을 연 국영식당 홍보 영상의 한 장면. 직원들이 개점을 축하하고 있다. | 웨이보

민간 유통업체를 놔두고 갑자기 공산당과 정부가 직접 유통을 관리하겠다는 발표에 중국 민간에서는 앞으로 식량 공급망에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졌다. 뒤이은 국영식당 확대 시범사업은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공소사와 국영식당은 계획경제 시대 때 전국으로 확대됐으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사라지게 됐다. 다만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하얼빈 등 일부 도시지역에는 노인 ‘공영식당’ 정도가 유물로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중국 정부는 국영식당 시범사업을 통보한 그날 ‘완전 주택단지’ 시범사업도 통보했다. 완전 주택단지는 유치원, 어린이집, 노인지원센터, 편의점, 식료품점, 이발소, 세탁소, 약국뿐만 아니라 공동식당까지 갖춘 주택단지를 가리킨다.

현지 경제매체 재경신문 3일 자 보도에 따르면, 취재에 응한 중앙정부나 현지 당국 관계자들은 국영식당 시범사업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했으며, “주택개발은 고령자 지원 서비스를 중시한 개발계획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내부순환 강화, 서방과의 디커플링 대비

중국 공안대 법대 전 강사였던 자오위안밍은 6일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은 내순환, 즉 중국 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국영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 생산·공급·판매를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공소사와 국영식당을 통해 농산물과 식료품 분야를, 완전 주택단지를 통해 주택시장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2020년 5월 회의에서 서방과의 경제적 디커플링을 상정해 내순환(국내경제)을 골자로 하는 신발전 모델인 ‘쌍순환’을 제창하고 개혁 개방에서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꾀하고 있다.

미국 트리니티 칼리지 경제학과 원관중(文貫中)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서방국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서방국가와의 관계 악화를 예상하고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가 아닌, 공급과 소비를 당의 통제하에 두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중국은 식량 및 에너지 안보에 있어 위기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과 긴장 관계에 있다. 국제 정세가 악화돼 식량과 에너지 수입에도 지장이 불가피하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프랭크 셰 교수는 이 같은 중국 공산당의 물류 통제 시스템 구축을 “대만 침공을 위한 사전 준비”라고 경계했다.

셰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무력으로 대만 침공을 할 야망을 갖고 있으며, 그 실행은 그리 머지않을 수 있다. 일단 전시경제에 돌입하면 국영식당과 공소사는 자국 내 물자와 식량 공급을 통제하는 것은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주민 생활에 악영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가 공소사와 국영식당의 규모를 키우면서 민간경제가 억압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소사는 1950년대 중국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서 시장 독점과 물자 부족, 낮은 서비스 품질로 나쁜 평판을 얻었다. 1970년대 들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라졌지만 완전히 소멸하진 않았고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면서 재건되고 있다.

셰 교수는 “이런 국가 주도의 경제시스템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잃게 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악영향을 준다”며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가면 시장경제의 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사나 공동식당에서 제공되는 물품이나 음식의 종류는 제한적일 것이다. 결국 검소한 음식이나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되는 식으로 생활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