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교황청과 합의 깨고 친공산당 사제 상하이교구장 임명

최창근
2023년 04월 8일 오후 12:01 업데이트: 2024년 01월 21일 오후 8:43

중국 정부가 로마 교황청의 승인 없이 주교(主敎)를 임명했다. 2018년 교황청-중국 간 합의 위반이다. 상하이교구 교구장은 지난 2013년 진루셴(金魯賢) 주교가 지병으로 선종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공보실장(대변인)은 4월 4일, 성명을 발표하여 “교황청은 중국 당국이 하이먼(海門)교구 선빈(沈斌) 주교를 상하이(上海)교구로 전보했다는 것을 며칠 전 통보받았으며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늘 아침 교구장 착좌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마테오 브루니 대변인은 해당 인사에 대하여 “선빈 주교 임명은 교황청과 중국이 맺은 ‘주교 임명 합의’를 어긴 것”이며 당분간 이 일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1946년 중국에서 교계제도가 설정됐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 이후 중국 정부는 외세 간섭 배제를 이유로 교구 설정, 주교 임명 등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왔다.

1957년 중국천주교애국회(中國天主敎愛國會)를 설립한 후 중국 정부가 천주교 성직자를 독자적으로 임명하고 이곳에 속한 성당과 성직자만 정식으로 인정했다. 그 밖의 천주교 신자는 탄압했다.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는 천주교회는 ‘지하교회’화되었다.

중국천주교애국회 설립 후 중국은 “자국 승인 없는 주교 임명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른바 ‘자선자성(自選自聖) 원칙을 고수해 오고 있다. 성직자 임명에 있어 교황청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이다.

2018년 교황청과 중국 정부는 잠정 합의를 체결했다. 요점은 그동안 교황청 승인 없이 불법 서품된 주교들을 교황청이 인정하는 한편 추후에는 교황청-중국 정부 양자가 합의한 성직자를 주교로 임명하는 것이다. 합의는 2년 단위로 지난 2020년, 2022년 갱신됐다. 중국과의 합의의 근본 목적은 중국에서 지하 교회와 공식 교회로 분열된 상태를 종식하는 것이었다. 중국 당국이 선정한 주교 후보자를 교황 승인을 거쳐 서품하고, 중국은 교황을 천주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신임 교구장이 임명된 교구와 주교(교구장)의 배경도 관심을 끈다. 상하이교구는 중국천구교애국회와 지하교회로 분열된 중국 내 천주교회에서 교황에게 충성하는 ‘지하교회’의 상징이자 중국 정부가 승인한 공식교회와의 접점에 있다.

교황청이 공식 임명한 직전 상하이교구장은 마다친(馬達欽) 주교이다. 원래 중국천주교애국회 소속 사제였던 그는 2012년 상하이교구 보좌주교로 서품됐다. 서품 직후 마다친 주교는 중국천주교애국회 탈퇴를 발표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그를 체포하여 연금했으나 2014년 교구장 판중량(范忠良) 주교 선종 후 교황청은 마다친을 상하이교구 교구장에 임명했다. 고(故) 판중량 주교는 ‘지하교회의 대부’로 불리던 상징성 있는 성직자였다.

역대 상하이교구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박해는 연원이 깊다. 앞서 상하이 교구장이던 궁핀메이(龔品梅) 추기경은 1955년에 체포돼 1960년에 반혁명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86년 석방돼 가택 연금됐다가 1988년에 해외 출국이 허용됐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그를 ‘가슴에 품은 추기경(cardinal in pectore, 비밀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진루셴 주교도 1955년에 궁핀메이 추기경 사건 때 수백 명의 동료 사제와 더불어 체포된 적이 있다.

이 가운데 중국 정부가 임명한 선빈 상하이교구장은 중국천주교주교단 주석이다. 2022년 8월 열린 제10차 중국천주교 전국대표회의에서 선출됐다.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천주교 주교의 대표라 할 수 있다.

4월 4일, 중국천주교애국회 지도자 등 200명가량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상하이교구장 착좌식에서 선빈주교는 “상하이교구에서의 훌륭한 애국주의 전통, 천주교회의 사랑을 계속 실천할 것이며 중국 천주교회의 독립과 자치 원칙, 중국 천주교회에 대한 국가의 지도를 따를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선빈을 신임 상하이교구장에 임명한 것은 종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천주교 관련 매체들은 해석했다.

중국은 시진핑 장기 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그의 민족주의적 방침에 따라 모든 종교의 ‘중국화’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왕양(汪洋) 당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새로 선출된 자국 천주교 단체 지도자들을 만나 “외세의 침입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라.”며 “종교의 중국화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당의 지도력을 굳건히 지지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