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물급 CEO들, 왜 이른 나이에 경영에서 손떼나

강우찬
2022년 05월 9일 오후 5:59 업데이트: 2022년 05월 9일 오후 6:19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민간 기업가들이 공개석상과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모습만 감춘 것이 아니라 줄줄이 현직에서 물러나는 실정이다.

중국 공산당이 ‘공동부유’를 내세워 특히 대형 기술기업(빅테크)을 중심으로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업가들이 도피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만 싱크탱크 대만도략책진학회(台灣韜略策進學會·이하 도책학회)는 중국 민간 기업가들이 돈과 목숨 중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대부분 목숨을 선택해 퇴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빅테크 기업 총수들의 퇴직은 현재 중국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틱톡 라이벌 ‘콰이서우'(快手) 공동창업자 쑤화(宿華·40)가 “장기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놨고, 얼마 뒤에는 ‘틱톡'(TikTok)으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바이트댄스 창업자 장이밍(張一鳴·39) CEO가 퇴임했다.

앞서 같은 해 3월에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拼多多) 창업자 황정(黃崢·42)이 CEO직에서 물러났고, 9월에는 징둥(京東) 창업자 류창둥(劉強東·48) 회장이 퇴임했다.

빅테크 CEO 사퇴의 첫 주자였던 알리바바 그룹 회장 마윈(馬雲·58)은 사퇴를 선언한 2018년 당시 나이가 54세에 불과했다.

시장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마윈은 오히려 최고령자가 됐다. 이후 사퇴 대열에 합류한 중국 CEO들은 대다수 40대였고 틱톡 창업자 장이밍은 30대 후반에 사퇴했다.

도책학회 우젠중 대표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제2의 도전을 하고 싶다’, ‘새로운 경영전략을 구상하겠다’며 저마다 다른 이유를 댔지만, 중국의 대형 민간기업 CEO들 줄사퇴의 본질은 급류용퇴가 아니라 명철보신이다”이라고 말했다.

급류용퇴(急流勇退)는 배가 급류를 건널 때 과감하고 신속하게 물러난다는 뜻이다. 벼슬자리에서 제때에 용기있게 물러나거나, 인생의 고비에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은 <시경> 대아 증민편에서 비롯된 말로 이치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적절한 행동으로 자신을 잘 보전한다는 뜻이다. “급류용퇴해서 명철보신했다”는 식으로도 사용된다.

우 대표는 “그들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압적인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사퇴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실제로는 퇴행적 집단이지만,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하면서 개혁과 진보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일부 사람을 먼저 부유하게 한다’며 기업가들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마윈, 류창둥, 마화텅(馬化騰·텐센트 창업자)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다시 더불어 잘살게 한다는 ‘공동부유’를 표방하며 기업가들에게 이에 호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는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이를 눈치챈 CEO들은 자신이 일군 것을 내던지며 젊은 나이에 목숨을 살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 대표는 “이전까지 중국은 실력과 창의력을 갖춘 민간기업을 통해 국제시장에 진출하고, 투자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년간 민간기업을 규제하고 국영기업을 밀어주는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제 먼저 부유하게 해준 이들에게 공동부유를 위해 가진 것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세계 시장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피땀 흘려 이룬 것들이지만, 당에서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중국 공산당 중앙이 직접 개입하고 있다. 2015년 증시 폭락 후 금융시장 감독을 강화하고, 사교육 시장과 IT 기업 규제를 강화한 것도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한 조치다. 동시에 독과점이나 부정부패를 추방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오는 11월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청렴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마윈, 마화텅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행운인 수준이다. 하지만 언제든 부패 척결이라는 이유로 숙청당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여러 기업은 과거 지방정부와 유착관계로 특혜를 얻은 경우가 많아, 당국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판 카톡인 웨이보에는 ‘침묵하고 있는 기업가들’이라는 게시물이 유행하고 있다. 한때 중국 젊은 세대의 영웅이었던 마윈, 마화텅, 장이밍, 쑤화 등이 두문불출하고 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특히 장이밍은 과거 웨이보에 올렸던 모든 게시글을 삭제했다. 중국 최대 배달 앱 업체 메이퇀(美團)을 창업한 왕싱(王興) CEO 역시 과거 게시물 1만7천 개를 삭제했다. 마윈은 소셜미디어를 끊은 지 오래됐다.

대만의 시사평론가 황스충(黃世忠)은 중국의 유명 기업가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스충은 “중국 공산당은 올해 11월 제20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 주요 인사들의 과거 발언이 재평가되며 문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벌 간 다툼에 따라, 장쩌민(江澤民) 파벌과 가까이 한 발언이 부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가들은 정치와의 관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분쟁을 일으키거나 휘말려 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일선에서 물러서면 최소한 직접적인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마윈은 너무 나섰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탄압 대상이 됐다”며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혹은 주요 지도자보다 대중의 인기를 더 많이 얻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말살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황스충은 “과거 중국 공산당은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허용해줬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기업들은 특혜를 얻기 위해 정부나 당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했다”며 “하지만 이제 공산당은 기업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업과 유착 관계를 청산해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다. 기업가는 살기 위해 가진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완전히 떠난 이도 있고, 주식 의결권만 유지한 이도 있다. 시장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와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목숨은 물론 기업을 살리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 편집 남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