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부산에 짓겠다는 ‘바이오’ 연구소…“투명성 확보 필수, 인재·기술 유출도 대비해야”

이윤정
2020년 09월 29일 오후 1:57 업데이트: 2020년 10월 12일 오후 2:36

이달 한 국내언론 보도로 중국 ‘민간단체’가 부산에 바이오·백신 연구소 건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역 여당 의원이 연구소 부지를 양산시로 옮기자는 제안을 내놓은 가운데 야당 의원과 지역 주민들은 “바이러스를 다루는 연구소를 한국에 지으면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외교 전문가인 이지용 계명대 국제학부 교수(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민간단체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배후에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있으며,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이용한 이미지 세탁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문제 삼은 것은 우선 이 사업이 지난달 열린 ‘2020 북방경제 포럼’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점이다.

이 교수는 “중공(중국 공산당)이 개최하거나 참여하는 포럼은 거의 다 ‘일대일로’ 전략”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아래에 묶어두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포럼 같은 기업 간 협력·교류의 장에 ‘일대일로’ 사업을 끼워넣기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공이 쓰는 대표적 수법이 처음에는 포럼 같은 형식을 빌려 운을 떼고 물밑 작업으로 관련자를 타진한다. 한 번 떠보고 여론을 살펴서 강한 반발이 없으면 밀어붙이는 식”이라고 했다.

이번 ‘바이오’ 연구소 역시 민간차원의 협력사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당에서 하는 사업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 민간 조직이나 민간차원의 협력사업이 없다. 간혹 민간사업이라고 하는 경우도 사실상 당이 조직하고 당이 자금을 대고 당이 명령해서 진행하는 거다.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 이상은 다 공산당 소유다. 따라서 순수 민간 차원의 대외교류라는 게 없다.”

연구소 건설을 부산 지역 기업가들에게 제안한 중국 측 단체인 ‘중화해외연의회'(중화연의회)에 대해서도 단순한 민간단체가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교수는 “중화연의회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이하 통전부) 산하 기구”라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업이 문제시되면 ‘민간에 넘겼다’는 식으로 형식적인 눈가림을 하기도 한다. 공자학원이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중국어·중국문화 보급기관을 표방하는 공자학원은 중국의 ‘국가한반’이라는 기구에서 운영한다. 그런데 ‘국가한반’은 소속이 통전부다.

최근 몇년 사이 국제사회에서 ‘공자학원은 스파이 기지’라는 비판이 일면서 보이콧 움직임이 일자, 중국 공산당은 국가한반을 폐쇄하고 공자학원 운영을 중국 민간단체인 ‘중국 국제 중문교육기금회’에 위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단체 고위 관계자들이 국가한반이나 통전부 간부들임이 드러나면서 ‘간판만 바꿔단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에 ‘중화연의회’가 제안한 바이오 연구소는 정체성도 논란에 휘말렸다.

핵심은 바이러스 연구소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당초 해당 사건을 최초 보도한 국내언론과 전화통화에서 연구소 부지를 양산으로 제안했던 지역 여당 의원도 “바이러스 연구소”라고 했다가 이후 바이오 연구소라고 해명했다.

이 교수는 “바이오 연구에는 바이러스가 포함되고 당연히 백신과도 연결된다”며 “만약 바이러스 연구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연구분야에서 바이러스를 제외해야 한다. 국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연구 분야와 범위를 투명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8천억원에 이르는 연구소 사업비 전액을 중국 측에서 부담한다는 점도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교수는 “미국과 서방 세계가 여러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중공이 우회 전략을 쓰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 압력과 시선을 돌려보려는 것이다.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인프라 기반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으로 좋은 이미지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상징성을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중국 청산 강철이 국내업체와 합작법인을 세워 부산에 스테인리스 냉연 생산 공장을 지은 것과 중국 알루미늄 2위 기업 밍타이가 전남 광양에 공장을 건설한 사례도 같은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두 중국 기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에 진출한 것을 놓고 지난해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고관세를 피하기 위한 우회 수출이라는 비난이 제기됐었다.

중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을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미국은 물론 한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는 분석도 나왔었다.

그러나 중국의 바이오 연구소 건설 제안에 대해 부정적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연구에 유리할 수 있다는 환영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교수는 “코로나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공동으로 힘을 합쳐 백신을 하루라도 빨리 개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면서 “그러나 중국이 제안한 바이러스 연구소를 유치하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이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앞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선진국과 협력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중국의 인재 빼가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지금도 중국은 ‘천인 계획’으로 해외 인재와 연구 성과를 빼가고 있고 스파이까지 이용해 기술을 절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사업비까지 부담해서 연구소를 설립한다면 우리의 세금과 우리나라 인재의 노력이 들어간 연구 성과와 지식재산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